쿨하지 않은 '쿨피플'

by 강명재

'쿨하다'가 한 시대의 정신으로 각광받으면서 윤리적 노팬티 상태가 패션인 양 포장되며 쏟아지는 무례한 독설들...'

김혼비 작가님의 '다정소감'에 나오는 구절이다. '캬~!' 탄식과 환호가 뒤섞인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평소 '쿨피플'들과 얘기하며 느꼈던 당혹감이 떠올랐다.


'쿨피플'이 추구하는 라이프 스타일은 어떤 것일까? 첫 째, 매사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인생을 관조적으로 바라볼 것. 이런 점에서는 중용과 절제를 중요시하는 '스토아학파'적인 느낌이 있다. 둘째, 타인의 잘 못이나 실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길 것. 이 부분은 '관용'이라는 미덕을 떠올리게 한다. 셋째, 세련된 매너와 유머러스한 화술을 갖출 것. 이는 호감을 주는 '신언서판'이라 할 수 있다.


스토아 철학을 가지고 관용을 베풀며 호감 가는 신언서판을 지니고 있는 람. 이런 사람은 복숭아맛 쿨피스처럼 시원하고 상쾌하다. 하지만 주변에는 상한 우유처럼 우리를 병들게 하는 '민폐형 쿨피플'이 적잖게 있다. 그렇잖아도 힘겨운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를 더욱 힘 빠지게 만드는 민폐형 쿨피플. 이들은 어떻게 우리를 괴롭히는가.




첫 째,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다. 한국인들이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경향이 있어서인지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마!'라는 충고가 널리 퍼져있다. 하지만 우리는 남의 시선을 신경 써야 한다. 타인의 시선에 갇히는 것도 곤란하지만 타인의 시선을 완전히 벗어나는 것도 그 못지않게 곤란한 태도다.


사회를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매너, 에티켓은 모두 남의 시선을 의식할 때만 작동한다. 시도 때도 없이 "그들이 뭐 라건 난 내 멋대로 살 거야"라고 내뱉는 순간, 매너나 에티켓이 증발해 버리는 것은 물론이고 김혼비 작가님이 얘기했듯 '윤리적 노팬티'가 되어 버릴 수 있다.


둘째, 솔직을 빙자하여 타인에게 상처를 준다. "솔직히 말할게. 너 저번에 그렇게 얘기할 때 좀 재수 없었어.", "솔직히 지난주에 그 보고서는 논리가 좀 허술하더라." 이런 얘기를 들으면 잠시 멍해진다. 상사에게 잔소리를 들을 때 보다 12배쯤 기분이 나빠진다. 민폐형 쿨피플은 솔직함이 미덕인 줄로 착각한다.


'정직'은 미덕이지만 '솔직'은 악덕인 경우가 많다. 정직은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진실을 말하는 용기다. 그에 비해 솔직은 타인의 감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미숙함의 결과물이기 일쑤다. (모든 솔직한 발언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민폐형 쿨피플은 마치 자신은 천부적인 권리가 있다는 듯 '솔직한 발언'을 쏟아내지만 정직하게 자신의 잘 못을 인정하는 경우는 좀체 없다.


셋째, 뒷 끝이 없다고 한다. 이 부분은 위에서 애기한 '솔직한 발언' 뒤에 이어지는 내용이다. 민폐형 쿨피플은 상대에게 상처 주는 말들을 잔뜩 쏟아내고는 뒷에 이렇게 덧붙이곤 한다. "난 뒷 끝은 없어. 금방 잊어버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이것은 위로인가 자화자찬인가. 자신이야 할 말, 안 할 말 다 쏟아냈으니까 무슨 뒷 끝이 남겠는가? 뒷 끝은 그 말을 들은 사람에게 남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 스스로를 '대인'라고 선언하는 이 부조리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넷째, 정당한 항의를 '예민하다'라고 몰아간다. 이 역시 위에서 이어지는 부분이다. 아닌 밤 중엔 복부를 가격 당한듯한 아픔과 혼란을 간신히 수습하고 민폐형 쿨피플에게 항의를 한다고 치자. 그럼 그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아니, 왜 그렇게 예민해? 요즘 뭐가 잘 안 풀려?", "웃자고 하는 애기에 죽자고 달려드네."


순식각에 가해자를 '쿨하지 않은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쿨하든 말든 계속해서 항의를 이어갈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자신의 성미를 못 이기는 무례한이 되어가고 쿨피플은 말 그대로 침착한 쿨피플이 되어간다. 복부 가격에 이어 뒤통수까지 제대로 맞은 것 같다. 그렇잖아도 가라앉은 기분이 지하 밑까지 추락하는 듯하다.


다섯째, 밑도 끝도 없이 냉소적이다. 개인적인 인생이든 우리를 둘러싼 세상이든 해결해야 할 과제가 한가득이다. 사람들끼리 모이다 보면 어떻게 이 문제들을 풀어나갈 것인가를 얘기할 수밖에 없다. 잠시 얘기를 듣던 민폐형 쿨피플은 이렇게 한 마디 툭 던진다. "그런다고 되겠어?"


"해 봤어?"라는 '고장 난 불도저'스러운 말이 우리를 가능한 일을 안 하려고 하는 무기력한 사람으로 만든다면 "해 봤자 되겠어?"라는 '쿨스런' 말은 우리를 불가능한 일에 덤벼드는 어리석은 사람으로 만든다. '냉소'와 한 세트를 이루는 '양비론'도 빠지지 않는다. "그것도 나쁘고 이것도 나빠.", "세상 사람은 다 나빠. 다 이기적이야. 아직 그것도 몰라?"


민폐형 쿨피플은 대안을 제시하지도 않고 선택이라는 리스크를 감수하지도 않는다. 그냥 전도서 1장2절을 되뇌일 뿐이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이들은 사람들이 자신의 남다른 통찰(?)을 듣고서는 '내가 어리석구나'라고 반성하거나 '이 사람, 날카로운데!'라고 감탄할 것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 모두는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심정이 된다.


여섯째, 일체의 감정을 구질구질한 것으로 여긴다. 고대 그리스 철학적으로 애기하자면 파토스에서 해방되는 것이 아레테(탁월함, 빼어남)를 획득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애인이랑 헤어졌어? 집착하지 마. 회사에서 승진했어? 뭐 그런 것으로 호들갑이야. 전쟁고아가 안 쓰럽다고? 가식 떨지 마. 차라리 - 감정이 없는 척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감정이 없는 - 쳇 GPT랑 얘기하는 것이 나은 것 같다.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데 그렇다면 이들의 목표는 '성불'인가.


마지막으로 이들은 스스로 '쿨'하다고 화자찬한다.

"내가 좀 쿨 하잖아."

이것이야말로 가장 쿨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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