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yrics] 3: 한로로 -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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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 한로로 - 정류장
작년 초, 데뷔곡인 '입춘'으로 입문한 뒤 나에게 최고의 뮤즈가 되어준 한로로.
김윤아 님을 떠오르게 하는 보컬의 매력만으로도 대중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지만, 나에게 한로로의 곡들이 특별했던 건 가사 였다. 그 중에서도, 모든 곡을 통틀어 한로로를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곡은 화해라고 생각한다.
[거울 - 화해 - 생존법]으로 이어지는 자아성찰 시리즈에서 알 수 있듯이, 지금의 내가 다른 시점의 나에게 전하고자 하는 가사가 많다(이번 EP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인 '재' 역시 마찬가지). 그렇기에 청자는 자연스레 '다른 나' 혹은 '실제의 나'를 투영하며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스스로를 돌보자고, 돌아보자고 말하는 마음이 따스하다. 아늑하고 안식감을 준다.
한로로가 나에게 귀감이 되었던건, 한동안 내 안의 나를 대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헤맸던 순간들이 투영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오랜 시간동안, 인간은 극단(extreme)을 이해해야만 극단을 몸소 실현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해왔다.
죽도록 힘들어본적 있는 사람만이 타인에게 상냥할 수 있고, 끝없는 어둠을 내면에 가져본 사람만이 타인의 마음에 빛을 밝혀줄 수 있고, 주는 사랑의 따스함을 아는 사람만이 받는 사랑의 온도를 느낄 수 있다.
그렇지만 나라고, 그리고 그 누구라고 한들 스스로 본인이 고통스러울 것을 알면서도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이들이 몇이나 될 것인가. 순간순간마다 고통스러운, 숨 쉬기도 힘들 정도로 몸과 정신을 조이는 생경한 촉감은 항상 낯설다.
분명 이상(ideal)의 나는 저 멀리 있는데, 현실을 살아가는 지금의 나는 왜 항상 제자리에 맴도는 것일까, 그리고 과거의 나를 마주하지 못 하고 있는 것인가.
거울 속의 나는 여전히 과거의 나와 화해하지 못 했고, 이 세상을 살아갈 생존법을 깨우치지 못 했다.
그리고 그 때, 한로로의 노래가 나에게 위안이 되어주었다.
화해 MV는 '한지수 씨의 가장 어두운 마음에 관해 이야기해 줄 수 있나요?' 라는 질문과 함께 시작한다.
그리고 지수는 '나의 어둠을 덮어버리기 위해서 푸르고 투명한 하늘을 가져왔던 나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로 노래를 시작한다. 타인에게 보이기 싫은 나의 과거, 잘못, 치부, 혹은 스스로가 마주하고 싶지 않은 나의 성격이나 성향을 이쁘게 포장하곤 했던 본인의 모습이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깊고 농밀한 곳에 위치한 어둠이었던 모양이다. 인정하기보다, 변명하기 급급했던 모습들 말이다.
하지만 이는 결국 먹구름을 불러오는 시간들일 뿐이다. 푸른 하늘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어둠 속에 갇혀있는 나와 달리 빛나고 있는 이들을 보며, 창피하게 동경을 느끼는 나는 그저 하늘 높은 곳으로 도망쳐버린다.
하지만 먹구름의 시간을 받아들인 것일까? 구름이 되어 빗물에 털어내겠다는 다짐을 통해 투명한 하늘을 끌어오는 것이 전부라고 믿었던 나를 떠나보내고, 새살이 돋아나 차가운 세상을 녹이겠다는 꿈으로 나의 과거와 작별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노래는 끝이 난다.
누구에게나 존재할 숨기고 싶은 치부, 과거, 그리고 마음들. 우리는 이들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맞이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변을 '화해'라는 곡을 통해 풀어내고 있다.
이 질문을 동일하게 나에게도 해본다면, 나의 가장 어두운 마음은 무력감에서 출발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누군가 도움이 필요할 때 도울 수 없거나, 중요한 순간에 실패를 경험하는 것.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목격하면서도 그것을 바꿀 수 없다는 느낌. 소중한 사람들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것.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잊어가고 잃어가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무력감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나는 가장 먼저 자책한다. 감정적으로 내려앉고, 이유를 내 안에서 찾고자 끊임없이 시도한다. 그리고 '화해의 나'처럼 스스로를 포장한다. 그럴 수 있었다며, 처음엔 누구나 그렇다며, 나의 실패나 실수를 스스로 아름답게 포장한다. 변명하기에 급급하다. 그리고 어두운 마음, 나의 실패, 나의 치부를 마주하는 것은 무력감을 겪는 순간만큼이나 힘이 들기 때문에,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고 꺼내어 보지도 않는다.
하지만 과거의 나와 화해하지 않은 내가 발버둥을 칠수록 심연은 깊어지고 상황은 극단으로 내딛으며 타인을 대하는 이해심과 포용력만 극한으로 길러진다. 문제는 해결되지 못하고, 올바른 가치판단과 의사결정이 어려워진다.
그 속에서 '나'를 끌어올려줬던 것은 언제나 희망이었다. 내일은 달라지겠지, 5년 뒤에는 이런 모습이겠지, 먼 미래의 나는 이렇겠지. 스스로를 끌어줬던 것은 그 무엇도 아닌 나의 희망이었다.
한로로의 생존법이 '사랑'이라면, 나의 생존법은 '희망'인 것이다.
한로로의 자아성찰 시리즈
#1. 거울 (인식) - #2. 화해 (이해) - #3. 생존법 (해소)
자아성찰 시리즈로 명명하자니 조금 거창하지만, 내가 유독 좋아했던 3가지 노래들을 관통하는 소재가 있었다. 바로 '자아'에 대한 고찰이다.
거울에서는 자아의 인식으로부터 출발하고, 화해에서는 자아를 이해하는 단계, 마지막으로 생존법에서는 과거의 나를 해소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을 이야기한다.
#1. 거울
거울에서 등장하는 한로로는 어둡고 외롭다. 거울 속에 비친 '맞은편 앉았던 친구'는 현실의 내가 진심 없는 어색한 웃음을 보일 때 마치 자신의 이야기인 듯 울음을 쏟아낸다. 이는 자신의 내면에 쌓인 슬픔과 고통, 부정적인 마음을 거울에 비친 모습이 솔직하게 표현해주고 있음을 의미한다.
일상 속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려 하지만, 거울 앞에서 마주하는 자신은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과 내면의 괴리 속에서 어느새 현실과 거울 속 모습의 경계는 흐려지고, '맞은편 앉았던 친구'는 '맞은편 앉았던 나'로 변한다.
그 친구는 사실 나 자신이었던 것이다.
즉, 거울에서는 스스로가 억누르고 있던 진실된 감정과 상태를 가진 진짜 자신과의 대면이 핵심적으로 다뤄진다. 인식하는 것에서 모든 상황은 출발한다는 진리를, 한로로는 날이 서지 않은 부드럽고 담백한 문체로 전달한다. 마치 오랜 친구나 연인이 서로에게 조심스럽게 건네는 위로처럼.
#2. 화해
맞은편에 앉아있던 나로 인해 스스로를 인식하기 시작한 나는, 과거의 나를 돌아보며 어떤 방식으로 나의 가장 어두운 내면을 덮어뒀는지 회상한다.
포장하고 변명하기에 급급했던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어두웠던 나와 화해함으로써, 새살이 돋아나고 차가운 세상을 녹이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아마 생존법의 모티브이자 지수가 항상 역설하는 '연대'의 출발점이 되었으리라.
#3. 생존법
드디어 오롯이 나를 마주하게 된 나.
이제는 꿈을 품고 있는 나는 생존법을 통해 이를 직설적으로 풀어낸다. 곡 중에서 '넌 나를 사랑해줘야 해', 그리고 '난 너를 사랑해' 라는 메시지를 수없이 반복하며 말이다.
처음 곡을 들었을 때는 단순한 사랑이야기라는 생각이 먼저 스쳤다. 투쟁과 갈등 속에서 세상에 지친 나의 생존을 위해서, 연인에게 나를 사랑해달라는 이야기구나하고 말이다.
그리고 몇 십번이고 되뇌어보던 나는 그제서야 뒤늦게 생존법의 의미를 깨달았다. 이는 아마 자신의 내면에 있는 다른 자아, 아마도 더 취약하고 상처받은 나를 사랑해주길 당부하는 편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즉, 나만큼은 세상과 싸워 멍든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따뜻함을 스스로에게 보내달라는 것이다. 내가 나를 이해해온 과정에서 품었던 꿈을 실현하자는, 세상 사람들의 사랑을 통한 '연대'를 이뤄가자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 스스로 나를 생존시켜달라는 의미로서 말이다.
불타오르는 절정의 별 혹은 가장 빛나는 내일을 맞이할 내가 아니더라도, 나만큼은 나에게 가늘고 꾸밈없이 사랑을 전하자는 꿈은 어찌나 소탈하고 간결한가. 거울 속의 나, 화해하던 나, 언젠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 모든 나의 생존을 위해 사랑을 바란다는 지수의 꿈 속에서 자아성찰 시리즈는 완결된다.
[Lyric] 한로로 - 화해
난 나의 어둠을 변명하려
저 푸른 하늘을 끌어왔어요 창피하게
부러움 속에서 피어나는
동경을 안고서 날아갈래요 아주 높이
아 동정은 마요
잠시 내게서 벗어날 뿐야
차가운 바람에 부서진대도
무너지진 않을 테니
가끔 떠오르던 얼굴들이
흐려져 가는 건 당연할까요 그렇겠죠
또 낯선 것들로 쉴 틈 없이
채워진 도시를 벗어날래요 아주 멀리
아 동정은 마요
잠시 내게서 벗어날 뿐야
차가운 바람에 부서진대도
무너지진 않을 테니
오늘까지만 나를 머금은 구름 되어
빗물에 털어낼래요
아 난 행복해요
붉은 눈가 언저리 새살이 돋았으니
차가운 세상도 녹여내고 싶단
꿈을 가득 품어냈으니
인간이 살아가는 원동력을 단 하나만 꼽자면, 나는 단언컨대 희망이라고 답할 것이다.
무너지고 쓰러지고,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인간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나아가는 것은 희망이라는 한 줄기 빛을 마음 속에 항상 간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불빛을 꺼지지 않게 가꿔나가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아들과 딸의 인생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 인생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을 머릿속에 떠올려보자.
만일 이들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진다면, 아들과 딸이 한순간 사라진다면, 인생의 목표를 평생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이 확정된다면 이들은 어떤 마음을 갖게 될 것인가? 그리고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
우리는 항상 희망을 담보로 현실을 희생하며 살아간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필연적으로 그렇게 설계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우리는 '꿈'이라는 희망을 좇으며, 단 한 번뿐인 우리의 삶을 그토록 벼랑 끝까지 몰아넣는 것이 아닐까.
과거의 나를 덮어버리고서는 보여지는 것들에 집중하기 급급했던 소극적인 과거의 나를 뒤로하고, 내 삶의 목적인 '사랑'을 설파하며 적극적으로 생존해내겠다는 한로로의 메시지에 깊이 공감하고, 위로를 얻는다.
그리고, 화해의 부제목이 'I am happy'인 이유를 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받아들일 수 있었다.
과거의 나를 피하거나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차가운 세상을 녹여내자는 꿈을 품어냈기 때문에, 내 삶의 목적이자 지향점을 스스로에게 다짐했기 때문에, 인생의 '희망'을 가졌다는 인식 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역시,
행복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온다는 말은 틀린 것 하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