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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fulness Mar 15. 2021

소유하지 못한 것에 대한 그리움

[영화] 5: 먼 훗날, 우리

[영화] 5: 먼 훗날, 우리 (Us and them, 2018)


샤오샤오와 젠칭의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 그리고 먼 발 치에서 묵묵하게 젠칭과 샤오샤오를 걱정했던 아버지의 헌신. 


두 가지의 속성은 영화의 본질적 가치이자,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인 소유하지 못한 것에 대한 그리움으로부터 출발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제작된 영화 '먼 훗날 우리'를 개봉한 지 3년 여 만에 접하게 되었다.


  영화 초반부에는 특유의 드센 성조를 받아들이는 것에 애를 먹기도 했으나, 주연 배우를 연기한 '정백연(젠칭 분)'과 '주동우(샤오샤오 분)'의 풋풋하고 담백한 모습에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뿐만 아니라 젠칭과 샤오샤오의 관계만을 그려내고 있을 것이라 짐작했던 나의 예상과 달리, 젠칭의 아버지와 둘의 관계에 대한 서사까지 풀어냈던 영화 후반부의 장면들은 영화가 끝난 이후까지도 시청자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영화 '먼 훗날 우리'의 주연, 젠칭과 샤오샤오


  영화 초반 연대기 순으로 진행되는 서사를 보며 다소 작위적인 연출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중반부까지 별다른 흥미를 갖지 못했던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기인한 것이리라. 고향으로 향하는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젠칭과 샤오샤오, 그리고 친한 친구 사이였던 둘 사이에서 피어난 젠칭의 짝사랑. 이들만 보더라도 영화를 안 본 채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에게까지 다소 식상한 서사로 받아들여질 법한 일상적인 소재들이다.


  허나 출세를 위해 강박적으로 부와 권력을 가진 남자만을 만나곤 했으나 껍데기만 남았던 연애를 마친 샤오샤오와 그를 항상 품고 있었던 젠칭은 결국 서로의 곁에 둘 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고, 젠칭의 출소 이후 서로를 품에 안는다.


  둘의 만남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 먼 훗날 우리는 전혀 다른 감정선을 가진 영화로 흘러간다. 



  세상을 모두 가진 듯한 둘의 사랑은 너무도 싱그럽고 풋풋했다. 둘만 있으면 세상 두려울 것이 없었으며, 단칸방 안에서 나누던 서로의 감정에 대한 교감은 진하고도 담담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일었던 사소한 갈등의 불씨는 걷잡을 수 없는 다툼의 씨앗이 되었고, 서로에 대한 감정의 골이 깊어진 둘은 여느 연인과도 같은 방식으로 헤어짐을 마주하게 된다.


'함께하는 공간'이 갖는 일차원적 속성은 그들에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영화 속에서 젠칭은 샤오샤오에 대한 사랑을 일반적인 연인의 형태로 표출한다. 연애를 지속하던 시기에는 그녀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고, 비디오 게임 따위에 정신이 팔려 샤오샤오를 놓치는 설정의 남성을 연기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너무도 일반적이고 평범한 젠칭이라는 인물의 설정은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과거와 동일시하는 과정을 수월하게 하고 자연스레 깊은 몰입을 가져온다. 


하지만 샤오샤오가 떠난 이후 '삶의 쉼표'를 찾게 되었다고 말하는 젠칭은 스스로를 한계에 몰아붙이며 오랜 세월 자신의 목표였던 게임 개발이라는 꿈을 이루게 된다.


그리고 젠칭이 만든 게임의 트루 엔딩이자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이언은 켈리를 영원히 사랑해"라는 메시지를 통해, 관객은 영화의 결말에 다다르게 된다.




"이 게임에서 남자가 여자를 못 찾으면 어떻게 ?"


...


"이언이 켈리를 끝내 못 찾으면

세상은 무채색으로 변하게 되지"


무채색의 그들과 함께, 미묘한 감정과 여운이 드리운다.


  필자가 가장 몰입했던 장면은 무채색의 해변가 씬이었다. 무채색의 그들이 해변가에서 이별의 순간을 떠올리며 다 하지 못 했던 말을 이어가는 장면은 영화 전체를 지탱하는 가장 깊고 무거운 호흡이며,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영화의 서사를 이어가있기에 관객들로 하여금 새로운 여운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끊임없이 우연한 가정을 던지는 젠칭의 모습과 필연적인 이별의 결과를 이야기하는 샤오샤오의 모습이 교차하는 장면, 그리고 어둠 속 고요에 섞이지 못하던 그들의 대사 속에서 마치 그들이 엇갈렸던 과거의 순간을 재현해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들이 존재했음에도,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공허하기 때문에.


  고요 속에서 탈출하고자 했던 젠칭은 호텔 로비에서 회사 동료에게 샤오샤오와 손잡고 있는 모습을 내보였고, 동료의 시야에서 어느새 내연녀로 둔갑해버린 샤오샤오와 함께 자동차를 타고 베이징으로 향한다. 


  젠칭에게 'I miss you'라고 말하는 샤오샤오를 보며, 젠칭은 '나도 보고 싶었다'는 지극히 평범한 답변을 이어간다. 허나 샤오샤오가 읊었던 대사가 '보고 싶었다'는 의미가 아닌 내가 너를 놓쳤다는 의미임을 관객들에게 전하는 순간, 서로의 과거에 존재했던 공허함애틋함이 되어 관객들에게 피어오른다.


  결국 이루어질 수 없는 그들은 무채색이다. 그들이 흑과 백의 세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그려내는 과거에 더 이상 한 줄기의 색채도 투영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사실 나에게는 젠칭과 샤오샤오의 서사보다 아버지와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한 사가 전하는 울림이 더욱더 깊게 스며들었다. 


 

부모에겐 자식이 누구와 함께하든 성공하든 말든 그런 건 중요치 않아.

자식이 제 바람대로 잘 살면 그걸로 족하다.

건강하기만 하면 돼.


한 번은 기차역에서 내가 네 손을 잡은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다른 사람이더구나.


그때 깨달았다.

너희 둘이 함께하지 못해도, 넌 여전히 우리 가족이란다.


밥 잘 챙겨 먹고,

힘들면 언제든 돌아오렴.


- 아버지의 편지 中 




  2015년 섣달그믐 기차역에서 젠칭을 마주한 젠칭의 아버지는 젠칭의 옆에 선 여성을 샤오샤오라고 칭하며, 어서 집에 가자는 이야기를 전한다. 하지만 그는 전혀 다른 여성이었으며, 그제야 아버지의 눈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된 것을 알게 된 젠칭은 자신의 삶에 대한 회한 속에 빠지게 된다.


  자신을 찾는 이들이 점차 줄어드는 상황 속에서도, 아버지는 그저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항상 젠칭과 샤오샤오가 행복하기만을 진심으로 바라며 말이다. 


  언젠가 가정을 이루게 된다면 나 역시 가장의 한 사람으로, 그리고 아버지의 한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렇기에 젠칭의 아버지가 전해준 헌신과 젠칭이 보인 후회의 교차에서 피어오르는 울림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자신으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가족과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는 젠칭의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어린 시절의 아버지와 나에 대한 순간들이 한 폭의 영화처럼 오버랩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아버지의 독백은 너무도 먹먹하고 애틋했다. 어바웃타임의 엔딩씬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어릴 적으로 돌아가 해변을 거니는 장면처럼.


눈이 부실 정도로 그들의 해변은 반짝였다 ⓒ About time, 2013



  모든 이는 떠나고 나서야 후회한다. 그리고 너무나 어리석게도 함께 있을 때는 상대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한다. 후회는 결코 선행할 수 없는, 후행적 속성이기 때문이다. 


  무채색의 젠칭은 아마도 과거의 자신이 소유하지 못했던 샤오샤오를 향한 진심 어린 사랑, 그리고 아버지를 위한 마음을 눈을 감게 되는 날까지 그리워하며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젠칭이 샤오샤오에게 진심 어린 사랑을 다 했거나 아버지를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고 한들, 그러한 삶 속에서 상쇄되는 소유하지 못하는 대상에 대한 박탈감을 차치할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은 서로를 택했더라도 분명 후회 속에 살았을 것이다. 


 인간은 너무도 많은 것을 소유하며, 동시에 소유하지 못 한 채 살아가도록 설계되었다. 그렇기에 세상으로부터 끊임없이 비워내고 채워낼 것을 요구받는다. 인간관계의 영역이든, 업무나 학업의 영역이든, 혹은 소소한 일상의 영역이든 offset의 상태를 유지하도록 말이다. 각자의 미래에 남아있을 우리들의 기억은 결국 소유하지 못한 것에 대한 원초적인 그리움으로부터 피어오를 테지만, 그리움을 소유하는 길을 택했더라도 우리는 분명 반대급부를 그리며 살아갈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저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저마다 주어지는 순간들 앞에서 묵묵히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뿐이다. 어떤 길을 택하더라도 우리에게는 한 치 앞도 예견할 수 없는 미래가 존재하고, 무한한 삶의 경우의 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스스로를 믿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힘을 갖는 것이야말로, 복잡하고도 혼란한 세태 속에서 각자도생을 위한 중심축이 되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무채색의 그들은 한 폭의 하얀색으로 귀결되었다. 


  백색의 길을 따라 서로의 끝으로 향했던 젠칭과 샤오샤오는 비로소 서로에게 진심 어린 작별 인사를 고한다.


  덤덤한 모습으로 서로를 놓아주던 무채색의 끝에서, 젠칭과 샤오샤오는 소유하지 못 한 그리움을 한편에 묻어둔 채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화려한 색감이 아름다운 이유는 무채색이 존재하기 때문임을 말하는 듯한 그들을 보며, 그렇게 우리 모두는 마음속에 무채색의 꽃 한 송이를 틔워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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