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사실 실천법] [과체중인] 40대 과체중人을 위한 운동법
가난한 사랑 노래
-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 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서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 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신경림 님의 시 '가난한 사랑 노래'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해석으로 시작해보려 한다. 시에서 정답을 찾아야 하는 수험생들은 보고 잊으라. 이건 그냥 나의 개인적 감상과 분석일 뿐이다.
이 시에는 청년과 화자가 등장한다. 이별한 청년의 시와 그를 안쓰러워하는 화자의 시가 섞여 있다.
청년은 오늘 헤어졌다. 보름달이 뜬 추운 겨울. 산동네 골목길을 걸으며 불안정한 시국이 펼쳐지는 도심을 바라본다. 그 불안정한 도심 속에는 오늘 이별한 그녀도 있으리라.
시국에 괴롭고, 이별에 괴로운 청년은 순간 현실을 외면하고 싶었다. 엄마와 고향이 그리웠다. 황량한 가지에 처량하게 남은 까치밥을 스치는 고향의 바람 소리까지 그리웠다.
그리고 오늘 헤어진 그녀 입술의 촉감을 떠올린다. 울면서 '사랑한다'라고 말하는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도 떠올린다. 끝내 참지 못하는 그녀의 어깨 떨리는 울음소리도 떠올린다.
청년은 느꼈으리라. 그 입맞춤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표정도 다르다는 것을. 모를 수 없었다. 신기하게도 이별을 앞둔 남자에겐 그런 것들이 너무도 또렷하게 다가온다. 마치 본능처럼 직감한다.
화자는 달빛 쏟아지는 추운 겨울 골목길에 서있는 청년을 보았다. 동네가 동네인지라 청년은 물질적으로 가난한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유독 오늘따라 청년은 더 가난해 보였다. 이별한 청춘임을 직감한다.
화자는 청년보다 가난한 상태는 아니다. 청춘의 이별을 경험해본 연륜도 있다. 그래서 화자는 청춘의 이별이 가난에서 기인했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화자는 냉혹하게도 청춘에게 외로움, 두려움, 그리움, 사랑이 '호사'라고 말한다.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말한다. 화자는 '가난하면 다 버려야 해! 너 가난 때문에 다 버릴 거야?'라고 거친 말로 청춘을 다독이는 셈이다. 꼰대다!
물론 '가난'을 미완성의 민주화/민주화를 위한 투쟁, '그녀'를 민주화의 완성, '골목, 방법, 기계'를 차가운 독재 현실, '어머님, 집 뒤, 바람소리'는 안정/안전, '입술, 숨결, 울음'을 민주화의 실체라고 할 수도 있을 듯하다.
아직 민주화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은 힘들게 투쟁 중이기 때문에 민주화에 대한 아쉬움이나, 독재 치하에서의 두려움이나, 투쟁을 하지 않았던 시절의 안전함에 대한 그리움이나, 민주화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잠시 접어 두어야 한다라고 이해할 수도 있겠다.
과한 체중의 노래
'과체중'은 '체중'이 과하다는 뜻이다. 다른 표현으로 '질병의 위험이 코 앞에 있다'라고도 할 수 있다. 아니면 '일상생활을 하는데 몸 때문에 불편하다'라고도 표현된다.
보통 과체중인에게 정상인들은 쉽게 말한다. '살 빼'라고. 또는 '운동해'라고. 아주 쉽게 말한다. 가난 때문에 연인을 잃은 청춘에게 '가난 때문에 다 버릴 거야?'라고 거칠게 채근하는 식이다.
마음은 안다. 그 '애끼는 마음'은 안다. 그런데 실상 과체중인에게는 도움이 안 된다. 전혀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과체중인은 안다. 살을 빼야 하고, 운동을 해야 하는 것을 안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아서 문제다. 그냥 몸이 약한 것과는 또 다르다. 과체중인 중에서는 운동을 꽤나 잘하는 사람들이 많다.
소싯적부터 쭉 과체중의 삶을 산 사람도 있다. 고3을 지나면서 과체중인으로 거듭나는 사람도 있다. 보통 많은 경우는 결혼을 하면서 과체중인으로 많이들 거듭난다. 할렐루야
뭐니 뭐니 해도 임신-출산만큼 많은 과체중인을 배출하는 시기도 없다. 개인의 의지를 뛰어넘는 호르몬의 장난과 생전 첨 겪는 일들의 콤비네이션이 '영구 과체중인'을 수두룩하게 배출해 낸다.
이렇게 과체중의 삶을 살게 된 사람들은 앞에 붙은 '과'라는 한 글자를 떼내기 위해서 많은 애를 쓴다. 알기 때문에 애를 쓴다. 끊임없이 시도하고 도전한다. 물론 끊임없이 실패하고 좌절한다.
이런 과체중인에게 '운동을 해서 살을 빼라'는 말은 마치 돈이 없어 여친한테 차이고 왔더니, 옆집 발코니에서, 담배 물고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는, 별로 대단해 보이지 않는 노친네의 얘기를 듣는 기분인 것이다. 귀에 안 들어온다.
하체비만, 상체비만
우리 과체중인들은 이런 말을 한다. '난 하체비만이야!' 또는 '난 상체비만이야!' 이 얘기는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얘기는 '내 상체는 좀 괜찮지?' 또는 '내 하체는 나쁘지 않아!'라고 얘기하는 것이다. '그러네 넌 하체만 비만이네'라고 답하면 죽는다
말뜻은 이러하다.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그냥 과체중, 비만이다. 왜냐면 살은 특정 부위에만 찌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남자는 배에, 여자는 엉덩이와 허벅지에 지방을 저장하는 '경향'이 있다.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부위에만 지방을 저장하진 않는다. 배나 엉덩이, 허벅지에 살이 쪘다면 다른 곳도 찐 거다.
우리 몸은 몸 구석구석을 저장소로 이용한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배다. 그나마 피하지방으로 쌓아주면 고맙다. 피하지방은 그나마 특정한 역할이라도 하는 쓸모 있는 지방이다. 반면 내장에 쌓으면 다방면으로 힘들어진다.
그 외 엉덩이, 허벅지, 종아리, 겨드랑이, 등, 옆구리에 지방을 쌓는다. 손바닥, 발바닥, 귓볼, 눈꺼풀 정도 빼고는 다 쌓는 셈이다. 그러니 특정 부위만 과체중, 비만 일리 만무하다.
한 글자를 떼는 방법
'과'를 떼기 힘든 이유가 있다. 몸이 이미 과한 몸상태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과한 몸 상태에 최적화가 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 몸은 항상성을 '신앙'처럼 지킨다. 환경이 바뀌는 것을 너무 싫어한다. 싫어하면 안 바꾼다고 버티면 좋으련만 바뀌는 족족 재빨리 대처한다.
과체중이 된 이유는 명확하다. 많이 먹었기 때문이다. 혹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슨 이유이건 둘 중에 하나다. 특별한 질환이 아니라면
따라서 과체중에서 벗어나는 방법도 둘 중 하나다. 적게 먹거나, 많이 움직이거나. 적게도 먹고 많이도 움직이는 건 힘들다. 몸을 아프게 할 수 있다.
해법은 아주 간단하지만 과한 상태에 맞춰진 몸의 '항상성'을 지키려는 본능과 싸워야 한다. 이기면 '과체중 탈출', 지면 오히려 '비만', 이겼다고 파티하면 '요요' 되겠다.
안다. 억울할 수 있다. 난 잠시 휴식이 필요했을 뿐이고, 난 잠시 애를 낳았을 뿐인데 '원상회복'이 안 되는 것이다.
문제는 나에게는 '원상회복'이라 부르는 '과거의 특정 지점'이 존재하지만, 우리 몸은 '오늘만 사는 놈'이라서 그걸 모른다. 그러니 돌아간다는 개념 자체가 없는 것이다.
쌓는 건 몸이 자동으로 했지만, 빼는 건 몸과 전쟁을 벌여야 한다. 그래서 빼는 게 상대적으로 엄청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다.
어쨌든 지방흡입술을 제외하고 '과체중'에서 '과'를 떼는 방법은 덜 먹거나, 더 움직이는 것 밖에는 없다. 복잡하지 않고 심플해서 좋다. 이제 고르기만 하면 된다.
극사실적 실천법
몸은 이미 적응을 끝내서 딱히 '과체중이 아니어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려울 수 있다.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니고, 생활에 크게 불편한 게 있지도 않다.
그래서 막연하게 연예인처럼 멋지고 예뻐지는 것을 소망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있다. 유튜브 보고, 인스타 보고 환상을 키운다. 그런데 이 정도의 동기로는 추진력을 얻기가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 처음에 시작하는 게 어렵다. 그러니 꼭 '과체중 판별'을 해보기 바란다. 과체중이다 싶으면 일단 무조건 시작하는 거다. 일종의 시작 버턴을 누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할 수 있어야 한다. 한 달 만에 문가비가 되겠다거나, 권상우처럼 되겠다고 하는 것은 실천 불가능하다. 실천할 수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래서 막연한 동기보다는 내 삶을 더욱 활기차게 하는 구체적인 청사진이 좋다. 그래야 실천도 가능하다.
적게 먹는 법
시작을 했으면 '계획'은 짜지 마라. 절대로! 네버 에버! 계획은 삐쩍 마른 것들에게나 줘버려라. 계획은 필요 없다. 오히려 실천만 방해한다.
가장 단순한 룰 몇 개만 있으면 된다. 1) 배 고프기 전에 2) 배 터지기 전까지 3) 배 부를 수 있는 음식을 먹자. 이게 가장 중요하다. 절대 잊지 말자! 이건 양보하면 안 된다.
배 고프면 그게 어디든 먹자! 누구 앞에서든 먹자! 배 고픈 것보다 낫다. 허기가 느껴지는 순간 혼돈의 카오스에 빠진다. 그러니 절대! 네버 에버! 배고프지 말자!
눈치 보지 마라. 내 몸 위해서, 내 삶 행복하자고 하는 일인데 눈치 볼 일이 뭐가 있나! 이렇게 안 하면 죽는다고 생각해 봐라. 눈치 볼 일이 아니다.
근데 배 고프지 않게 먹는 것과 적게 먹는 게 무슨 상관인가요?라는 의문이 생기지 않나? 아주 좋은 질문이다.
우리 과체중인들이 '오버 칼로리'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가 폭식이고, 두 번째가 간식이다. 이 모두 배가 고플 때 자기도 모르게 저지르는 행동이다.
기본적으로 먹는 양을 줄이는 것은 힘들다. 우리가 수도승도 아니고 기본적으로 먹는 즐거움으로 사는데 그걸 줄이면 동기부여가 안된다.
그래서 추가적으로 먹는 양을 줄여야 한다. 이런 얘기 아무도 안 할 것이다. 이건 40대에 몸을 만들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얘기다. 특허를 내야 하나?
더 움직이는 법
더 움직이기 위해서 목적지 한 정거장 전에 내려서 걷고,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는 짓하지 마라! 절대로! 네버 에버!
걷는 건 소파에 누워 있는 것보단 몸을 더 많이 움직일 순 있다. 계단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것도 침대에서 인스타그램을 하는 것보단 몸을 더 많이 움직일 순 있다.
그런데 우리 몸 상태를 이해해야 한다. 우리 몸은 몸 전체에 지방을 깔아 놓고 운영 중이다. 그래서 조금만 움직여도 쉬 피곤하다.
관절도, 인대도, 힘줄도 버거운 상태다. 그래서 일상생활에서 움직임을 확 늘려버리면 몸은 피곤함을 이기지 못한다. 그리고 걷거나 계단을 오르는 건 칼로리 소모나 체력을 증진시키는 목적으로는 그다지 효율적이진 않다.
따라서 기왕에 힘이 드는 것이니 만큼 제대로 힘이 드는 게 낫다. 즉, 생활의 피곤함을 줄여서 제대로 된 운동에 집중하는 것이 실천과 성공의 확률을 올려준다. 아마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도 나 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 역시 40대에 몸을 만들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얘기다. 이것도 특허를 내야 하나?
운동 시간을 확보하자. 언제? 그런 계획 세우지 말자. 그냥 간단한 원칙이면 된다. 그래야 실천이 가능하다.
1) 준비물도 필요 없고, 효율도 좋은 스쿼트를 2) 매일 3) 20개씩 3번 하자. 스쿼트 하는 법은 찾아봐라. 강도가 높지 않으니 쉬는 날 따윈 없다. 매일매일 하는 거다. x개 y번은 스스로 정하는데 x 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숫자보다 높은 목표로 하자. y번은 최소 3회보단 커야 한다.
언제? 아무 때나! 아침에 일어나서 하든, 저녁에 자기 전에 하든, 점심시간에 하던 상관없다. 언제 운동을 하는 게 효과가 좋다더라 이런 얘기하지 마라. 스테로이드 맞고 대회 나갈 거 아니면 의미 없다.
어디서? 아무데서나! 침대 위던, 화장실이던, 회의실이던, 공원이던 상관없다. 플라잉 요가나 기구 필라테스나 짐에 가야 한다는 이런 얘기하지 마라. 그렇게 해봐야 가는 날보다 빠지는 날이 더 많다. 사물함에서 운동복이 썩어가게 된다.
과체중이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우리가 과체중인 이유가 있다. 그건 지난 일이니 탓해봐야 의미가 없다. 현재 우리가 과체중인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 몸은 과체중 상태에 맞게 우리 몸의 곳곳에 지방을 저장해 놓고 몸을 유지하고 있다. 그게 나름의 최선이기 때문이다.
그런 상태에서 우리는 몸에 가장 싫어하는 일을 해야 한다. 바로 '변화'다. 그래서 몸의 본능적인 저항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첫 번째가 먹는 것이다. 몸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문제이니 추가되는 것부터 줄여 나가는 것이 몸의 저항을 덜 받는다.
두 번째가 움직이는 것이다. 최적화해서 유지하는 있는 몸에 추가적인 움직임이 들어가면 몸은 피로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피로를 최소화해서 집중해서 운동을 해야 한다.
이렇게 심플하고 핵심적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실천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보통 사람이 몸짱 되는 거랑은 다르다. 과체중인이 몸짱 되는 건 실천적인 접근이 핵심이다.
'과체중이라서 이 모든 걸 버릴 거냐'는 일반인의 거친 관심 따위는 가볍게 넘기자! 왜냐면 우리가 더 오래 산다. 우린 이렇게 행복한 삶, 예쁜 몸을 위해서 실천을 하니까!
특히 40대 과체중인들은 다른 사람의 관심이나 시선에 신경 쓸 시간이 없다. 물리적인 시간도 없고, 먹는 거 움직이는 것에 대한 효율이 좋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조금 더 적극적으로 실천해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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