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프로젝트] 2500 rpm

by Maama

나는 뭐든 잘한다. 그냥 다 잘한다. 남들은 머리가 좋단다. 내 생각엔 그저 눈썰미가 좋고, 남들은 간과하는 정보들을 짜깁기해서 전체를 유추하고, 그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시뮬레이션하고 실행하는 것을 잘한다. 그랬더니 그게 머리가 좋은 거란다.


그런 내가 유독 힘들어하는 게 하나 있다. 바로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모른다. 난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잘하는 건 알겠는데, 좋아하는 건 모르겠다.


모든 게 다 시시하다. 마치 세상 모든 좋은 것을 다 해본 듯이 무관심하다. 뭐든 해보면 그 나름의 재미가 있다. 그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게 '절대적'이지 않다.


클래식, 뮤지컬, 발레, 연극, 영화 같은 문화 공연 좋다. 연출과 연기를 감상하고 토론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때문에 설레고, 흥분되고, 짜릿하고, 행복하진 않다. 그 정도까진 아니다. 볼 때뿐이다.


음식 좋아한다. 맛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안다. 먹어보면 뭣 때문에 맛있는지, 어떤 걸 의도했는지도 알겠다. 그걸 평하고 표현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막 그 음식이 먹고 싶어 죽겠다거나, 지금 꼭 그걸 먹어야겠다거나 하는 건 없다.


운동 좋아하고 잘한다. 이제는 마음 같이 몸이 움직이진 못하지만 운동 감각이 없진 않다. 구기종목도 잘하고, 인라인, 스키도 탄다. 자출(자전거 출퇴근)도 해봤다. 수영도 독학으로 배웠다. 골프도 독학으로 배워서 필드까지 갔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장비를 사고 늘리는 일에는 관심이 덜하다. 하고 싶어 미칠 거 같은 운동도 없다.


쇼핑도 좋아 하지만 못한다고 '송신증' 나는 수준은 아니다. 명품이나 브랜드에도 크게 관심이 없다. 있으면 좋은데 없어도 그만이다. 명품과 브랜드가 주는 감동이 덜 하다. 명품이나 브랜드 자체보다 '어떤 몸'에 착장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음악도 장르 안가린다. 클래식, 재즈, 판소리, 팝, 가요, edm, 최근엔 힙합을 듣는다. 따라 부를 수 있는 힙합도 있다. 다 좋다. 그런데 특정 가수가 미친 듯이 좋고 그러진 않는다. 당연히 덕질은 없다.


여행도, 취미도, 음식도, 대인관계도 할 땐 다 즐겁다. 근데 '뭘 하고 싶다'라고 막 머릿속을 휘젓고 다니는 것은 없다. 못해서 짜증 나고 안달 나고 삶이 팍팍해지는 것이 없다. 아니면 모르는 것인가?


그래서 '좋아하는 것' 찾기는 지금도 내 숙제다. 이게 참 어려운 숙제인 게 '벤치마킹'을 하기도 어렵다. 누가 대신 찾아주는 것도 어렵다. 그건 남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고민은 한지 꽤 된 거 같은데 아직도 명쾌한 답을 못 내리고 있다.


어쩜 내 뇌가 '파괴'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좋아하고, 갈망하고, 쾌락하는 부위에 손상을 입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특정한 쾌락에만 반응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만 이렇게 사는 게 아닐 거'라는 '놀부 심보'로 위안을 얻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야겠다는 의지는 불태우고 있다. 그래서 하나씩 도전해보고 행복한 마음을 얻는 포인트들을 찾고 있는 중이다. 도대체 나란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는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에게는 15년 된 SUV가 있다. 뽑기와 관리를 잘한 탓에 멀쩡한 외관과 성능을 유지하고 있다. 주행거리가 짧으니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짧은 거리를 반복 운행하는 가혹 환경임을 고려하면 상태가 나쁘지 않다.


남들은 몇 년마다 차를 교체한다는데 나는 차에도 별로 관심이 없다. 청명한 엔진 소리를 듣게 되면 그나마 생기는 교체 의지도 사라진다.


나는 이 차를 운전하면서 주로 2000 rpm 이하로 운행을 했다. 이 차는 2000 rpm에서 최대 토크가 생긴다. 이렇게 운전하면 차는 좀 굼뜨게 된다. 엔진에 비해 덩치가 큰 한국차의 특징이다. 하지만 시내와 도시고속도로에서는 큰 불편은 없다. 2000 rpm 이하에서도 93km/h까지는 속도가 나기 때문이다. 요즘 나오는 8단 미션의 자동차들은 1500 rpm에서 100km/h 변속이 된다. 15년 된 4단 미션의 차임을 감안하면 훌륭하다.


급출발, 추월, 언덕 등에서 빵빵 쏘고 다니지 않으면 2000 rpm 이하 운행은 충분히 가능하다. 시내에서 안전, 방어 운전도 할 수 있다. 기름도 세이브된다. 차도 무리를 하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을 했다.




최근 자동차 정기검사를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하고 장거리를 뛰었다. 상태를 수치로 확인한 후여서였는지 차가 힘이 넘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 문제가 없다는 얘기도 듣고, 이제 작별을 고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좀 '막 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평소에 고수하던 2000 rpm 대신 조금 더 높은 rpm에서 변속을 시켜 보기로 했다.


평소보다 엑셀을 더 지긋히 밟았다. 그랬더니 저속에서 굼뜨고 느릿했던 차에 힘이 넘쳤다. 아~ 이것이 2500 rpm의 위력인가? 단지 rpm을 살짝 올린 것뿐인데 차는 나에게 완전히 다른 경험을 하게 해 주었다. 이래서 다들 성능 좋은 차를 사려는 것인가?


얼마지나지 않아 엔진은 마치 갇혀 있던 '야수'처럼 으르렁댔다. 굼뜬 느낌 하나 없이 민첩하게 반응했다. 신기했다. '너 꽤나 괜찮은 차였구나!'


2500 rpm은 운전의 새로운 재미를 알려주었다. 교통 흐름을 더 잘 맞출 수 있게 되었다. 그 덕에 더 안전하게 운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전에는 나를 추월하겠다는 차들의 곡예운전을 지켜 보는 게 조금은 살 떨렸었다.




'아끼다 똥 된다'라고 했던가. 그저 애지중지, 소중하게, 아끼는 것은 '똥'을 만드는 일이다. 제대로 아끼는 것은 제대로 '활용'하는 것이다.


골고루 잘 먹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먹은 것은 결국 똥으로 나온다. 좋은 음식이 똥이 되기까지 그 시간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냥 '똥을 만드는 시간'일 뿐이다. '난 뭘 아끼면서 똥을 만들고 있을까?'


2500 rpm 구간을 활용하게 된 차는 '가치'가 높아졌다. 500 rpm의 여지는 많은 것을 '행복'하게 했다. 또한 내가 뭔가를 아낀다며 허비했던 많은 '시간''재능'에 대해서 다시 돌아보게 했다.


이 차를 꿈뜨고 느릿한 차로 활용한 건 나였다. 이 차가 똥이 아니라 활용법이 똥이었다. 더 많은 가치가 있는 것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틀에 가둔 것은 나였다. 더 다양한 가치와 경험과 기쁨과 행복을 얻을 기회를 스스로 놓친 것이다.


성장도 했고, 번식도 했고 이제는 잘 죽기만 하면 되는 시점에서 매우 귀중한 깨달음을 얻었다.




아낀다는 이유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던 것의 가치를 다시 알게 되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게 기계던, 몸뚱이던, 시간이던 말이다.


죽지 않을 것처럼 구는 것도 '아끼는 짓'이다. 미래만 보고 사는 것도 '아끼는 짓'이다. 그렇다! 오늘도 제대로 활용을 못하면서, 오늘 즐겨야 할 것도 제대로 못 즐기면서 뭘 아낀다는 것일까?


아끼는 것은 '잘', '제대로' 활용하는 것이다. 그게 진짜 아끼는 것이다. 기계도, 시간도 잘, 제대로 활용해야 한다.


사람이라면 '솔직'하고, '진실'되게 소통해야 한다. 억지로 맞춰주고, 이해해주고, 말하지 않는 것은 아끼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똥'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한없이 굼뜨기만 했던 내 차가 보여준 500 rpm의 행복이 너무도 감사하다. 제 성능으로, 제 수명이 다 할 때까지 2500 rpm으로 잘 아껴줄게! 멀쩡한 너를 내가 똥으로 만들고 있었구나!


그렇다고 '도로의 양아치'가 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뭐든 무리를 하는 건 좋지 않으니까.


내가 똥으로 만들고 있던 것들을 찾아야겠다. 아무 생각 없이, 일상적으로, 반복적으로 하던 것들의 일부만 바꿔도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 이거구나.' 업무는 잘 비틀어 보면서 내 일상은 비틀어 볼 생각을 못했다. 업무는 남들이 안 하는 방식으로 잘하면서, 내 일상과 내 행복은 다른 방식을 찾아볼 생각을 못했다.




15년 지기가 알려준 2500 rpm의 달리는 행복에 감사한다. 이별하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해서 활용해 줄게! 네가 가진 모든 것을 극대화해서 느껴줄게! 너의 가치를 즐겨줄게! 너의 최대치를! []


*공감,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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