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하면 안 되는 일(4) - 멘토 찾기
혹시 인생의 멘토가 있나? 인생의 코치는? 아니면 인생의 트레이너는?
우리는 흔히 멘토링과 코칭 그리고 트레이닝을 혼돈하여 사용하곤 한다. '그게 그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어차피 다 귀찮은 거? 정도.
하지만 멘토링과 코칭, 트레이닝은 엄연히 다르다. 그래서 그것들을 헷갈리면 안 된다. 왜냐면 잘못하면 쓸데없는 희망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멘토의 어원은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오디세우스의 충실한 조언자의 이름인 Greek Mentor에서 유래했다. 조언자의 이름의 '멘토'였던 것이다.
그렇다! 멘토는 조언자다. 조언자는 무엇인가? 감독인가? 코치인가? 트레이너인가?
멘토는 코치나 트레이너와는 좀 다르다. 멘토는 살짝 추상적인 개념이다. 멘토는 특정 전문 분야에서의 많은 경험과 풍부한 지식을 가진 사람을 지칭한다.
그러한 멘토가 아직은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멘티의 모든 종류의 성장을, 비공식적이고 관계 지향적인 방법으로, 장기간에 걸쳐서, 함께 경험하면서 알려주는 것을 멘토링이라고 한다. 멘토링은 멘토와 멘티가 맺는 관계를 나타내는 말인 것이다.
그냥 말로 보기만 해도 멋지지 않나? 이런 멋진 관계라니! 멘토 앞에 '인생의'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이유를 알 것만 같지 않나?
그런데 이런 의문도 든다. 정말 이런 관계를 회사에서 맺을 수 있을까? 실제 존재하는 일이기는 할까?
멘토가 있다는 것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회사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혜택이다.
회사에서 얻는 최고의 혜택은 월급이 아니다. 만약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말릴 생각은 없다. 그건 자유니까.
하지만 인생은 길다. 생각보다 엄청 길다. 월급 몇 개월 더 받는 게 다가 아니다.
그리고 지금 월급을 주는 회사는 당신에게 투자하는 대신, 당신보다 더 나은 조건 그러니까 더 싸고, 더 젊은 경력자를 찾아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회사에 있는 동안 보다 확실한 혜택을 얻을 필요가 있다.
보통은 업무 경험을 혜택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특정 업무 경험이 혜택이 되는 경우는 많지는 않다.
그 업무의 중요도와 난이도가 높고, 그 업무를 경험한 사람이 적을 때나 가능하다.
업무 성과를 혜택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직접적인 혜택이 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보통 성과는 여러 명이 나눠 먹는다. 내가 다 했어도 숟가락을 얹는 사람이 수십 명이다. 실제로 내가 시작부터 끝까지 혼자 다 한 일에 대해, 수십 명의 이력서에 성과로 올라가 있는 것을 본 경험이 있다.
그래서 성과 자체보단 그 성과를 반복해서 만들어 낼 수 있는 역량이 있는지가 중요하다. 단순히 성과에 참여했거나 담당을 했다고 성과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성과가 왜 필요한지, 어떤 방식으로 성과를 내고, 그것을 기존의 성과와 어떻게 섞고,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이 있어야 어떤 상황에서든 반복해서 성과를 창출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오늘날 회사에서는 이런 고민은 사장님들만 하신다. 대리 과장이 해야 할 고민을 사장님들이 하고 있고, 대리 과장은 그냥 시킨 것만 한다. 심지어는 '이걸 왜 이렇게 하지?'라는 생각을 가진채 일을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그래서 성과를 낼 기회를 얻는 것조차도 쉽지 않다. 그저 시키는 일을 내 천직인 마냥 하는 수밖에 없다.
그마저도 순수한 차원이 일이면 감사하다. 뭔가 정치적인 의도가 숨은 일이라면 골치 아프다. 누군가가 득세를 하기 위한 배수진이라거나, 누군가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일이라면 나중에 이력서에서 이 업무를 메이크업할 단어를 찾는 것도 큰 노동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월급이나 업무 경험, 업무 성과보다는 보다 높은 차원의 혜택을 얻을 필요가 있다. 그것이 바로 멘토다.
알다시피 모든 업무가 프로세스로만 진행되진 않는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감정이 섞이기도 한다. 때론 부정한 탐욕이나 음흉한 노림수가 섞이기도 한다.
사람이 사는 곳이니 어쩌면 당연하다 할 수 있다. 회사는 기계처럼 일을 시키고 싶어 하지만 그렇게 잘 되진 않는다. 한 쿠션 먹고 온갖 추상적이고 감상적인 것들이 녹아난 후에 기계처럼 일을 시킨다.
이런 상황에서 각 업무에 대한 상황을 설명해주고, 어떤 템포와 리듬으로 업무에 임해야 되는지를 알려 줄 수 있는 사람이 멘토다.
전체적인 상황에서 현재 필요한 것과 조금 나중에 필요한 것을 구분하고, 미래의 것에 대해 미리 준비할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 멘토다.
시나브로 올라가는 멘티의 레벨에 맞춰서 더 높은 수준의 주문을 하는 것도, 힘들고 과하다는 멘티의 비난을 감수하는 것도, 왜 모두의 멘토가 되지 않느냐는 주변의 질책을 감수하는 것도 멘토다.
오로지 멘티의 성장을 함께 경험하는 것이 유일한 대가인 것이 멘토이고 멘토링이다.
멘토가 누릴 수 있는 또 하나의 대가는 성장한 멘티와 함께 꾸려가는 미래를 꿈꿔보는 것이다. 그것이 또 다른 업무이든, 사업이든 말이다.
왜 멘토를 얻는 것이 직장에서 얻는 최고의 혜택인지 알 수 있겠는가?
문제는 멘토를 얻기 어렵다는 것이다. 원한다고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상호 관계다 보니 서로가 원해야 가능하다.
그런데 오늘날 회사의 상황이라는 것이 상호 관계를 구축하기에 참 어렵게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직장은 8시 30분~10시 사이에 특정한 곳에 모여, 특정한 목적으로, 특정한 업무를 함께 보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함께 일을 하는 사람들을 가족보다 더 자주, 오래 마주하게 된다. 그들은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가진 사람들인데, 어쩌다 우연찮게 한 곳에 모여 함께 업무를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더 자주, 더 오래 보는 사람들인데 그들의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는 것은 생각보다 매우 힘들다. 왜 그럴까? 이건 다 이유가 있다.
우선은 같은 팀이지만 경쟁자여서 그렇다. 서로를 경쟁자로 인식하는 상황은 평가 제도에서 기인한다.
회사의 평가는 모두 상대평가다. '절대적 상대평가'를 운운하는 곳도 있지만 결국은 상대평가의 사탕발림 버전일 뿐이다.
이 말은 한 팀의 누군가가 S를 받으면 누군가는 C를 받아야 한다는 소리다. S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고 해도 누군가는 분명 C를 받아야 한다는 소리다.
평가는 연봉과 인센티브가 연결이 되어 있다. 기분이나 자존감 문제보다 더 큰 '삶의 질'의 문제다.
그래서 민감하다.
그럼 평가를 제대로 하면 되잖냐고? 알면서~
20년 전 평가제도나 지금의 평가제도나 별반 다르지 않다. 예비 승진자에서 고과를 몰아주는 것도, '어르신'에게 잘 보인 사람에게 고과를 몰아줘야 하는 것도, 반대로 '어르신'에게 밑 보인 사람을 저평가해야 하는 것도 같다.
웬만큼 소신이 있는 팀장이 아니라면 '어르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고과를 매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스스로 자신의 고과를 깎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회사에 선후배가 없어질 수밖에 없는 주된 이유 중 하나가 평가제도다. 이런 평가제도는 인력 구조와 권한 구조에도 상호 영향을 준다.
원래 연차와 직급 수는 '피라미드' 모양이다. 신입이 가장 많고, 주무 대리가 그다음, 과장이 그다음 순으로 점점 적어지는 것이 정상적이다.
반대로 그들이 가진 업무의 범위는 '역피라미드' 모양이어야 한다. 고위 간부의 업무 범위와 권한이 가장 넓고 방대하고, 신입의 업무는 명확해야 한다.
이런 구조라면 신입이 윗사람에게 배울 것이 있게 된다. 몇 안 되는 차부장님들 통해서 그들의 넓은 업무 범위와 처리 노하우를 알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오늘날 많은 회사들은 이런 구조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인력 구성과 권한 구성이 서로 상이하다.
인력 구성은 '팽이' 모양인 경우가 많다. 소수의 고위 결정권자가 있고, 소수의 신입사원이 있다. 부서에 신입을 해마다 받는 건 옛날 얘기다.
개나 소나 과차장이고, 팀장인 경우도 태반이다. 팀의 역할을 할 수 없는 업무 파트 단위의 팀들도 많다. 그러다 보니 중간층이 어벙벙하다.
차라리 미쳐 날뛰는 대리들이 많으면 좋으련만 과장이 더 많은 경우도 많다. 경력직을 많이 선호하기 때문이다. 보통 대리를 과장으로 모셔 오는 경우가 많다.
왜 이럴까? 업무의 범위와 권한이 '압정'같은 모양이라서 그렇다. 최고 결정권자만이 모든 업무에 대한 정보과 권한을 갖는다. 나머지는 모두 정해진 일정한 일만 하면 된다.
그러다 보니 신입사원이 맡고 있는 한 꼭지나 과장이 맡고 있는 한 꼭지나 그냥 한 꼭지일 뿐이다. 어느 게 더 중요하고 말고는 코에 붙이면 코걸이, 귀에 붙이면 귀걸이 수준이다.
그러니 위에서 시키는 일만 할 사람들이 중구난방으로 생긴다. 그래서 뚱뚱한 팽이 모양의 인력 구조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또한 상대평가의 불만을 없애려면 누구나 공평한 일을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업무 범위나 권한의 범위가 압정의 핀 같아졌다.
그래서 공평은 해졌는데 모두가 같은 레벨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원이 대리 업무의 일부를 하고, 대리가 과장 업무의 일부를 하고, 과장이 차장 업무의 일부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각자가 자기 업무를 한다.
언뜻 보면 회사 입장에선 더 좋을 수도 있다. 그래서 아예 직급을 파괴하는 회사도 생긴 것이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
연차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노하우는 1도 없다. 예전엔 퇴사자의 컴퓨터는 신줏단지였다. 요즘은 퇴사 당일 바로 포맷한다. 그걸 아무도 아까워하지도 않는다. 나중에 누군가가 다시 하거나, 할 줄 아는 경력직을 뽑으면 되니까.
또한 업무 간의 연계가 1도 없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왼쪽 차장이 하는 일과 오른쪽 대리가 하는 일은 몇 단계를 거치면 만난다. 그런데 차장과 대리는 만날 생각이 전혀 없다. 그냥 각자의 일만 한다. 이런 단점들이 존재한다.
상황이 그러다 보니 특정한 업무가 생길 때마다 경력직을 즉시즉시 충원한다. 그러다 보니 인력 구조가 이상해져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사업부나 팀을 보면 엄청 이상한 곳들이 많다. 아무 상관없는 일들이 중구난방 흩어져 있다.
왼쪽 파트 차장과 오른쪽 파트 대리는 업무가 완전히 다르고, 권한은 비슷하다. 이거 평가는 어찌하면 좋을까?
원칙대로 한다면 팀의 올해 비전에 가장 부합하는 결과를 낸 업무의 담당자가 최고 고과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상이한 두 업무의 목표를 일치시키기도 어려울뿐더러, 목표를 수치화하라는 회사의 일괄 지침에 따르다 보면 결국은 그 사람이 맡은 '업무만으로도' 고과를 예상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입으로 똥을 싸는 사람들도 수두룩 하고, 상이한 경험과 노하우를 자신의 필살기 마냥 숨기고 있는 사람들도 수두룩 하고, '아몰랑~ 난 내 업무만 할 거야'라고 담치고 벽치고 적대적으로 일하는 사람들도 수두룩 하다.
이런 와중에 아직은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나'의 모든 종류의 성장을, 비공식적이고 관계 지향적인 방법으로, 장기간에 걸쳐서, 함께 경험하면서 알려줄 사람을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다른 외행 변수를 빼고 회사의 프로세스만 가지고 봤을 때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신입들은 멘토링 관계를 형성하는 것보다 고과를 잘 받고, 업무 범위와 권한을 침범 받지 않을 업무로의 전환을 꿈꾸는 것이 현실이다. 매우 합리적인 적응이라 아니할 수 없다.
연봉, 인센티브 → 상대 평가 시스템 인력 → 구조, 권한 구조 왜곡 → 경쟁구조 심화 → 상호관계 형성 불가 → 멘토와 멘티의 만남 불가
우리가 회사에서 멘토를 찾을 수 없는 또 다른 외행 변수도 존재한다.
첫 번째 이유는 IMF 이후 달라진 직장 환경과 문화를 들 수 있다. IMF 이전에는 이렇지 않았다고 하니 그렇다 쳐주고, 그 이후 지금까지를 쭉 지켜봤을 땐 환경과 문화가 멘토를 찾기 어렵게 되어있다.
이제 곧 20년 차가 되어가는 본 작가조차도 사수, 부사수의 관계가 무너져 가는 시점에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IMF 이후 '고용 유연성' 강화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들의 삶을 팍팍하게 만들어가는 제도가 생겼다. 이런 류의 제도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명확한 차이를 알게 해 준 제도로 사람들로 하여금 정규직을 지켜야겠다는 굳은 다짐을 불러일으켰다.
동시에 '수평적 조직문화'와 같은 아름다운 명칭을 가진 효율성을 증대시키기 위한 조직문화 개선의 노력들도 있었다. 이런 회사 단위의 노력은 '인당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것으로 인간을 마른 수건화 시켜서 짜내는데 활용되었다.
이렇게 평생직장의 개념은 사라지고 직장 내 경쟁은 날로 치열해지다 보니 알게 모르게 스스로 '알아서 기는' 풍토도 생겼다. '알아서 기는'것에 위아래가 어딨겠는가?
윗사람은 윗사람의 사정으로 알아서 기고, 아랫사람들은 아랫사람들의 사정으로 알아서 기는 상황이 고착화되어가기 시작했다.
관리자가 되어 권한을 가지면 권한을 써서 자리 지키기에 바빴고, 그 와중에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어떤 불만과 불편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면평가에서 아랫사람의 평이 안 좋은 관리자를 높게 평가하는 회사도 있었다.
반대로 관리자가 아닌 사람들은 관리자를 적대적 또는 무관심으로 대한다. 그 사람이 어떻게 되던 내 알바 아니기 때문에 그저 시키는 일만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들은 각자 '알아서 기는' 것에 대한 개개인의 수치심을 희석시켰고, 직장인이라면 서로 '익스큐즈'가 되는 그런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와중에 선후배가 어딨고, 멘토가 어딨고, 코칭이 어딨겠는가? 심지어는 혹독한 트레이닝 조차도 없다. 왜냐하면 나보다 잘난 사람을 만들어서 좋을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실제 나도 '왜 호랑이 새끼를 키우냐?'는 말을 참 많이 들었었다. 이것이 외부의, 3자의 시각이다.
그러다 보니 '회사엔 결국 역량이 부족한 사람들만 남는다.'라는 이런 자조 섞인 말들이 생겼다. 이런 말이 듣기 싫은 연차는 금방 온다. 회사를 쉽게 떠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잘못된 기대에서 비롯된다. 입사를 하면 회사에선 누군가 당연하게 멘토링이던, 코칭이던, 트레이닝이던 해줄 줄 안다.
회사는 교육 제도를 가지고 있지만 그 목적과 효과가 불분명하다. 그래서 교육을 받는 사람도 싫어라 하고, 그 주변 사람들도 싫어라 한다.
직무별 교육이라고 하지만 맘에 들지 않는다. 마치 법과 주먹의 간극 같은 것이 교육에서도 느껴진다.
실무 현장에서 필요한 것은 실무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제일 잘 안다. 강사들도 실무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겠지만 당장의 현업만 하겠는가?
그래서 직무별 교육에 가장 적합한 사람은 해당 팀의 사수나 팀장들이다. 그래야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가르칠 수 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직접 나서는 일은 별로 없다. 업무 공백도 생길 뿐 아니라 그들도 그닥 원하지 않을 것이다. 호랑이 새끼 키울 일 있나?
그래서 요즘 간부들의 자세는 '어디 니 맘대로 한번 해봐! 단, 사고는 치지 말고' 정도의 수준이다. 뉘앙스는 '어떻게 하는지 보자!'이지 절대 기회를 주는 건 아니다.
뿐만 아니라 회사가 교육을 대하는 자세에도 변화가 있는 것 같다. 회사에는 신입사원이나 재직자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있다. 회사는 이런 교육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
수많은 다른 업종의 회사들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솔직히 내가 경험한 회사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즉 최근에는 그닥 신경 안 쓰는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대부분 교육과 관련된 프로그램들은 명목상 존재하는 경우가 많았다. 더 재밌는 것은 교육을 받는 사람의 기대치도 매우 낮다는 것이다.
그냥 1~2일 맘 불편하게 쉬는 시간? 어차피 해야 할 일은 계속 차곡차곡 쌓이고 있으니 맘이 편할리 없다. 그나마 외부에서 하는 합숙 교육이면 사무실을 떠날 수 있으니 조금 낫다고나 할까?
그런 사람들을 교육하는 사람들도 힘들다. 그러다 보니 서로 눈치껏 시간을 때우는 상황이 연출되고 마지막에 눈치껏 때운 시간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설문 조사를, 갑자기 후해진 마음으로 마치게 된다.
그래서 외주 교육이 아니라 회사 내에 코칭이나 멘토링 프로세스를 가지려고 하는 회사도 있다. 하지만 역시 잘 운영되진 않는다.
코칭이나 멘토링을 받고 싶지도, 해주고 싶지도 않아하는 분위기다. 싫다는데 해주기도 뭣하고, 해달라고 하기도 뭣하다. 그러다 보니 차 한잔, 식사 한 번의 증거 제출로 프로그램은 가느다란 생명을 존속하게 된다.
이것이 작금에 내가 느낀 회사 내에서의 교육 프로그램이다. 물론 업종이나 기업 규모, 기업의 비전이나 미션에 따라서 다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입의 경우는 존경하는 선배를 만나고 싶고, 뭔가 따라 배우고 싶은 선배를 찾고 싶은 마음이 조금은 있다. 그럴 시기다.
취업 준비가 잘 되어 있는 사람일수록 이런 기대에 대한 포기가 빠르다. 이상적 멘토에 대한 꿈은 포기한다 쳐도 그렇다고 월급만 받으며 시간을 보낼 순 없지 않겠는가?
이런 구조적, 환경적 이유로 회사 내에서 멘토를 만나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멘토가 있다면 당신은 정말 행운아인 것이다.
멘토를 찾아 헤매고, 멘토와의 관계를 맺기 위한 노력은 각자 해나가자. 기회는 준비된 사람이 잡는다는 말을 멘토를 찾는 일에 쓰면 좋을 듯하다.
아무런 준비도, 의지도 없는 사람을 멘토링 하겠다는 멘토는 없다. 그건 자식이라 해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 인생의 동반자 또는 아군이 되어 줄 사람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앞서도 말했듯이 잘못된 기대가 있다. 회사의 놀라운 프로세스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
하지만 회사에 기대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바로 우리가 멘토링과 혼돈에서 자주 생각하는 '코칭'과 '트레이닝'이다.
코칭의 어원은 마차를 만들었던 헝가리의 마을 이름에서 유래했고, 마차라는 뜻으로 쓰였다. 1800년대 옥스퍼드 대학에서는 시험을 통해서 학생들을 '캐리'한다는 의미의 속어로 쓰였다고 한다.
마차(코치)를 ing 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아주 쉽게 가가오택시를 생각하면 쉽다.
가가오택시를 타야겠다고 결심하고 부르면 집 앞에서 대기해서 싣고, 목적지까지 최단시간 내에 데려다준다. 더울까 봐 에어컨도 켜주고, 시끄러우면 음악도 꺼주고, 불편해하면 룸밀러도 돌려준다.
그렇다! 코칭은 누군가에 의해서 관리 감독되어 짧은 시간 내에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트레이닝은 트레인이 어원이고, 중세 프랑스어와 라틴어에서 '뽑아내다', '당기다'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고, 패션 용어로도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기차라는 의미로 널리 쓰였다.
그렇다면 기차를 뜻하는 트레인을 ing 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아주 쉽게 기차 시스템을 생각하면 된다.
서울역에 기차를 타러 갔다 생각해보자. 표를 끊고, 플랫폼에 가서, 정해진 객차에, 정해진 자리에 앉게 된다. 아무 곳에서 타거나 내릴 수 없다. 티켓에는 출발지와 목적지가 명확하게 명시가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각 역마다 도착하는 시간도 정해져 있다. 조금 일찍 도착했다고 일찍 출발하지 않는다.
그렇다! 트레이닝은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유용한 특정 역량을 가르치는 것이다.
우리가 회사에 바랄 수 있는 것은 1차적으로는 '트레이닝'이다. 회사는 회사의 시스템과 교육 프로세스를 통해서 '트레이닝'을 제공할 수 있다.
물론 두루뭉수리한 집합 교육이 아니라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특정한 역량'의 확보할 수 있게끔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다.
트레이닝은 회사가 공식적으로 측정 가능한 학습 과정을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업 스킬링과 멀티 스킬링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거나, 업무 스케일을 넓혀 준다거나,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트레이닝이다.
그런데 보통은 이 트레이닝을 그냥 실무를 하면서 익히라고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실무 현장에는 구체적 목표도 있고, 특정한 필요 역량도 존재하긴 한다. 하지만 문제는 실무 현장에서는 구체적 목표나 특정 역량보다 타임라인에 맞춰서 일하는 것이 우선된다.
어쨌든 트레이닝은 회사에 요구할 수 있는 것 중에 하나다. 실제 사례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살펴보자.
팀장이 당신에게 '역량' 운운을 하거나 혹은 낮은 고과를 줘놓고 뭔가 구구절절 설명을 한다 하자. 그럼 이렇게 말해주면 된다.
"저는 회사나 팀장님으로부터 목표 달성에 필요한 트레이닝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팀장님이 생각하시는 부족함은 제 역량의 문제가 아니라 제대로 된 트레이닝을 제공하지 않은 회사와 팀장님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어머! 정말 이렇게 말해도 되나요?'싶겠지만 된다. 공과 사만 잘 구별하면 함께 지내는데 문제없다. (이런 조언을 해주는 게 멘토다!)
그다음 우리가 쬐금 기대를 해볼 수 있는 게 '코칭'이다. 코칭은 트레이닝보다 더 목표지향적이다. 그래서 기간도 짧고, 목표도 더 뚜렷하고, 관리도 더 타이트하다.
매우 업무 중심적이고 성과 중심적이다. 그리고 폭도 좁다. 트레이닝이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통한 전체 대상의 교육이라면, 코칭은 특정 업무를 수행하는 소수를 대상으로 한다.
가장 비근한 예로 '면접관 교육'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간부를 대상으로 한, 짧은 기간의 교육을 통해서, 채용이라고 하는 업무에 투입하여, 인재를 선별하는 업무를 수행하게 하는 것이 바로 '코칭'이다.
특별한 프로젝트를 수행한다거나 임원 승진자에 대한 교육도 코칭의 방식으로 이뤄지는 게 좋다.
사실 코칭은 받는 사람 입장에서 가장 힘든 교육 방식이다. 목표도, 평가 방식도 좁다. 시간도 짧다. 사적인 요소가 1도 없고 성과와 연동이 되어 있기 때문에 코칭의 효과를 바로 알 수 있다.
그래서 부담스럽다. 본인이 코칭이 대상이 되었다면 정말 열심히 하지 않으면 티가 날 수 있다.
회사가 코칭의 기회를 주었다면 그것은 100% 회사를 위한 것이다. 물론 트레이닝도 회사를 위한 것이긴 하지만 코칭은 아예 대놓고 코 앞에 있는 과실을 따길 바란다는 점에서 트레이닝보다 부담감이 크다.
물론 역으로 생각하면 좋은 기회를 잡았다는 뜻도 있을 수 있겠다. 좋게 생각하자면 말이다.
코칭은 좋은 일에만 쓰이진 않는다. 말이 예쁘고 좋아 보이면 주로 안 좋은 일에 가져다 붙이는 경우도 많다.
회사에서 자르고 싶은 저평가자들이나 처치 곤란한 사업 철수 후 인력 처리에도 '코칭'이란 말이 사용된다. 이런 경우는 회사가 노력을 했다는 증거로 많이 사용된다.
근데 너무 깊게 생각할 필요 없다. 의외로 트레이닝이나 코칭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 없이 여기는 경우도 많다. 의례 하던 일이니까 하는 경우도 많다.
멘토는 찾는다고 찾아지는 게 아니다. 노력과 운이 얽히고설켜서 찾아지고 만나 진다.
개인과 일, 인생의 전반에 대해서 조언과 염려와 공감을 아끼지 않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이상적인 만남이 아닐 수 없다.
멘토링과 코칭의 가장 큰 차이는 멘토링은 함께 경험을 한다는 것이다. 했던 경험을 알려주는 게 멘토링이 아니라 함께 경험을 하면서 알려주는 게 멘토링이다.
멘토나 멘토링에 대한 흔한 오해가 바로 이것이다. 늙은 꼰대가 자신의 무용담만 늘어놓는 것은 멘토도 멘토링도 아니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하나 있다. 훈련소 조교는 평소의 훈련에선 소리치고 갈구기만 한다. 그런 지랄 같던 조교가 행군 때가 되면 전 과정을 함께 걷는다. 같은 길을 걷고 있을 때 느껴지는 동질감. '아! 저 사람은 말만 하는 게 아니라 나와 함께 걸어주는구나!'라는 느낌.
코칭은 채첨표를 들고 소리치는 것이고, 멘토링은 함께 걷고 뛰는 것이다. 아주 큰 차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때때로 멘토링을 코칭과 헷갈려하는 경우도 있다. 멘토의 조언을 코치의 가이드처럼 생각하는 경우다. 일과 삶을 넘나드는 멘토가 던져주는 '생각할 거리'들을 '숙제'나 '간섭'으로 여기는 경우다. 멘토가 함께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한다고 느끼는 경우다. 장기간의 상호 신뢰와 존중에 대한 믿음이 흐려지는 경우다.
이럴 때 멘토는 멘티에 의해서 코치가 되어 버린다. 그리고 멘토가 코치로 변했다며 떠나 버린다. 흔히 볼 수 있는 클리셰다. 진부하다는 것은 그만큼 일상에서 흔하다는 뜻이 아닐까?
여러 가지 연유로 우리의 회사 생활에서는 좋은 멘토와 좋은 멘티를 찾기 어려워져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사회생활은 지속되어야 하고, 그 가운데서 긴 인생을 조금이라도 담보하고 도움 줄 수 있는 것을 얻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가 알아서 다 해줄 거라는 순진한 생각도 빨리 거둬들여야 한다. 저절로 멘토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도 좋지 않다.
오히려 현실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을 얻는 것이 우선이다. 회사에 다양한 트레이닝 프로세스를 요구하고, 트레이닝을 통한 역량 개발로 코칭의 기회까지 잡도록 하자.
나중에 충분한 경험과 지식이 쌓이면 누군가의 멘토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다 보면 그전에 멘토를 만날 수도 있다.
누군가가 진심 어린 표정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알려주고 싶다 하면 주의 깊게 살펴보자. 말만 하는 사람인지, 함께하는 사람인지 말이다.
멘토가 함께하는 것은 여러분의 일을 뺏으려는 것도 아니고 선을 넘으려는 것도 아니다. 함께 하고 싶은 것이다. 물론 쓸데없는 지자랑이나 오지랖과는 구별이 좀 필요하긴 하다.
회사엔 여러 사람이 모이므로, 좋은 사람을 만날 확률도 있다. 그래서 멘토와의 만남에 대한 희망을 접진 말자.
다만, 보다 확률이 높은, 회사의 시스템을 이용한 역량 개발의 기회를 많이 얻도록 하면 좋다.
거듭 말하지만 생각보다 인생은 길다. 직장에서 20~30년 배운 걸로 나머지 인생을 다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물고기가 아니라 낚시법을 배우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게 필요하다. 그래서 월급보다 무언가를 쉽게 익히는 법이라던지, 무언가의 핵심을 파악하는 법이라던지, 벨류체인을 구성하는 법이라던지를 배우거나, 배울 수 있는 방법을 알아가는 시간으로 사용하면 좋을 듯하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사회초년생들에게 인생의 멘토가 나타나길 기원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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