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하면 안되는 일(5) - 과정을 중시하기
여러분은 상사고 여러분 밑에 두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한 사람은 9시 땡 출근과 6시 칼퇴근을 한다. 평소 진중함과는 거리가 멀고 업무에 대해서도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다.
또 한 사람은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한다. 매사가 진지하고 모든 일에 꼼꼼하고 적극적이다.
상사인 여러분은 누구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겠는가? 일반적으론 후자일 것이 틀림없다. 워라벨이 어쩌고 저쩌고 해도 아직도 농업적 근면성을 높게 평가하는 사람은 존재하니까.
그런데 만약 첫 번째 사람은 주어진 업무에서 내세울 만한 성과를 뽑아내고, 두 번째 사람은 과정에 노력이 듬뿍 들었지만 내세울 만한 성과가 없다면?
그래도 같은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정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칭찬할 수 있겠는가?
상사들은 논리적이다. 하루 종일 그것만 연구한다. 그들이 가진 논법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일을 왜 해? 성과를 내기 위해서지! 성과를 내기 위해선 과정이 필요하지! 어떤 과정이 필요할까? 성과를 내는 과정이 필요하지. 그러니까 과정을 위한 과정은 필요 없어. 성과를 내라고!'
이해했나? 회사에서 과정이란 성과 없이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과정 그 자체로는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과정이 의미를 갖는 곳은 배움의 장소다. 배움의 장소에서는 과정에 의미를 두고, 실제로 의미가 있다.
잘못된 과정을 개선하면서 배움은 커져간다. 실패의 과정과 성공의 과정을 경험하면서 이해와 지식은 단단해진다.
하지만 회사는 배움의 장소가 아니다. 꼰대들은 회사를 '전쟁터'라 일컫는다.
회사에 감정이입을 해보면 전쟁터라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회사라는 정체불명의 존재는 돈과도 싸우고, 사업 환경과도 싸우고, 소비자와도 싸운다.
경쟁자의 전략도 파악해야하고, 소비자의 트렌드도 미리 읽어야하고, 법과 제도도 활용해야 한다.
그래서 이래저래 중요하게 신경 쓸 일이 많다. 자기 입장에서 불만을 늘어놓은 담당자들의 기세에 눈도 깜짝 안 하는 이유가 이거다. 불평 불만보다 중요한 게 많기 때문이다.
회사는 배움의 장소에서와 달리 기회가 별로 없다. 기회를 놓치는 것은 곧 손실이다.
실패의 과정을 반복할 여유가 없다. 이것이 매사에 들들 볶아대는 이유다.
회사에서 성과를 얻지 못하면 대가가 따른다. 일단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연봉 인상률이 준다. 인센티브도 적게 나온다.
스마트 워크와 워라벨의 자리에 농업적 근면성이 치고 들어온다. 심지어 누군가는 일자리를 잃는다.
물론 특정인의 실패에는 후한 기회가 주어진다. 그들을 기득권이라도 부르고, 오너라고도 부른다. 다 알고 들어온 거니 이 문제는 패스.
그렇다면 과정을 중시하는 상사는 없을까? 왜 없겠는가! 어디에나 항상 이상한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
간혹 과정을 중시하는 상사가 있을 수 있다. 이건 뭔가를 가르쳐 주겠다는 일념이 매우 큰 경우다. 그렇지 않고서는 성과를 언급하지 않고 무작정 과정만 중시할 순 없다.
그게 아니면 이 상사는 일을 할 줄 아는 상사일 수 있다. '성과는 내가 책임질 테니 니들은 이것저것 한번 해봐!' 이런 마인드를 탑재했을 수 있다.
흔하지 않은 부류의 상사다. 이런 상사를 만나면 매우 운이 좋은 것이다.
이런 상사를 오래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성과를 만들어다 주는 것이다.
일의 성과란 것은 만들기 나름이다. 성과는 직접적인 결과물이 될 수도 있지만 논리와 명분으로 단단하게 뭉친 것일 수도 있다.
기회를 주는 상사 밑에서 꿀을 빨고 싶다면 기회를 직접적인 성과로 연결하거나, 성과로 보일 수 있게 포장할 꺼리를 만들어주면 된다.
그냥 꿀만 빨고 싶다고? 그렇다면 그 상사는 금세 사라지고, 성과를 낼 줄 아는 상사라고 여겨지는 사람으로 바뀌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봄날은 가고 영원한 혹한이 시작된다. Winter is coming.
성과를 중시하는 상사에겐 과정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뭐가 어찌 되었건 성과만 있으면 된다.
물론 인간은 간악하여 성과를 주면 과정을 찾기도 한다. 하지만 성과를 낸 사람은 그 성과를 전가의 보도처럼 쓸 수 있는 찬스가 있다. 그러니 안 쫄아도 된다.
오히려 더 큰 문제는 지속적인 성과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만족은 끝이 없고, 성과를 내는 사람은 소수이기 때문에 그 욕심은 소수의 사람에게 향한다.
그래서 회사 생활에서는 강약 조절이 필요하기도 하다. 물론 이건 성과를 내고 싶을 때 낼 수 있는 자신만의 비기가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신입사원이나 대리 나부랭이들은 함부로 하찮은 비기를 꺼냈다가 닳고 닳은 무림의 고수에게 깨지는 수가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어쨌든 성과를 좋아하는 상사는 많고, 그들은 성과 혹은 성과에 준하는 무언가를 주는 사람을 원하고 높게 평가한다.
딱히 성과는 없는데 상사 옆에 기생하며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이 있다고? 맞다. 그런 사람들 있다.
어째서 그들은 성과도 없는데 평가도 잘 받고, 과정이나 성과에 대한 스트레스도 없는 걸까?
그들이 생존 가능한 이유는 그들이 상사에게 여러분을 어떻게 쪼라고 알려주기 때문이다. 여러분에게서 뽑아낼 수 있는 성과를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보통 그들은 성과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린다. 마치 사기꾼들이 판을 디자인하듯이 회사 내에서 어떤 성과를, 언제, 어떤 방식으로, 어떤 크기로 낼지를 고민한다.
업무의 우선순위가 이런 사람들 때문에 뒤죽박죽 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업무를 앞에 끼워 넣기도 하고, 성과가 안 나올 듯하면 슬그머니 뒤로 빠지기도 한다.
일을 잘해놨는데 티가 안나는 건 그들의 성과가 메인이 되고 여러분의 성과는 들러리가 됐다는 뜻이다.
그리고 갑자기 뒤처져 있던 여러분의 업무가 부각되어 보고가 되었다면 그들이 슬그머니 빠진 것이다. 그럼 당장에 성과 날 일이 없는데도 여러분들이 성과 재촉을 받게 된다. 제대로 환장할 일이다.
빨판상어처럼 상사에게 붙어서 사는 사람이 보이면 주의를 해야 한다. 조심하지 않으면 피곤한 회사 생활이 더욱 피곤해진다.
성과를 싫어하는 상사는 없다. 과정까지 아름다우면 120점짜리 성과다.
하지만 상사들은 과정이 아름답지 않으면 성과만 볼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이다. 어찌 되었건 성과나 성과로 인식될 무언가가 필요한 사람들이 상사다.
그들도 임원이나 오너에게 성과에 대한 압박은 받는다. 그들이 받는 압박은 더 비논리적이고 뜬금없고 무자비하다.
그 상황을 그대로 전달하는 상사도 있을 것이고, 순화하고 재해석해서 전달하는 상사도 있을 것이다.
임원이나 오너의 압박에는 반드시 피드백이 있어야 한다. 성과로 피드백을 하면 모두가 좋은 평가를 얻게 된다.
반대로 과정의 불합리나 잘못된 전략적 방향성을 운운하는 순간 상사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회복 불가능한 완전한 나락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과를 달라는 상사에게 과정을 보여주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래서 평소에 성과에 대한 강력한 지향성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과정에서 실수가 있어도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상사가 원하는 성과가 무엇인지도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성과에도 낄끼빠빠가 필요하다.
절대로 잊지 말자. 회사에서 언급되는 과정은 성과를 전제로 한다는 것을. []
* 공감, 댓글, 질문은 항상 감사합니다.
* 도움이 되셨다면 많은 공유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