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하면 안 되는 일 (6) - 자기 상식 고집하기
우리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서 살길 희망한다. 열심히 잘하면 잘 살고, 죄지으면 벌 받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나도 피해를 받지 않는 삶을 원한다.
상식적인 욕망과 상식적인 갈등을 상상한다. 상식적인 소득과 상식적인 소비를 꿈꾼다. 모두가 이렇게 살 수만 있다면 진정한 유토피아가 따로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의 삶은 상식적이지 않다. 남의 상식은 나에겐 비상식으로, 나의 상식은 남에게 비상식으로 받아들여진다.
상식의 충돌이 일상에서 매 순간 일어난다. 상식의 헤게모니를 두고 벌여지는 치열한 권력 행사와 다툼이 난무한다.
가장 도드라진 상식의 전장 중 하나가 바로 회사다. 왜냐고? 회사는 서로 다른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상식이란 무엇일까? 상식은 집단지성의 사고와 성찰을 통해 수렴된 일종의 추론이다. 즉, 상식은 나와 너와 우리가 인지하고, 이해하고, 공유하고 있는 공통의 판단 행위다.
그런데 사회가 다원화되고 다양해지면서 판단과 행위의 방식이 잘 수렴되지 않는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 많은 방법으로, 너무 많은 영향을 끼치면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서비스 종사자가 손님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은 상식이다. 그럼 손님이 서비스 종사자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은 상식인가?
당연하다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상식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서비스 이용료에는 손님이 행사할 수 있는 모든 권리가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다.
서비스 종사자 입장에서 이런 사람들을 비상식적이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 만약 그가 단골이라면? 유명 맛집 블로거라면? 맘 카페 영자라면? 그가 주변 기업의 식권을 관리하는 담당이라면?
다양한 이해관계에 따라 오늘날 상식은 더 이상 기존의 정의로 보호받지 못한다. 다른 이의 비상식이 상식적인 내 삶에 너무나도 큰 영향을 준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곳이 바로 회사다. 회사는 상식이 충돌하기에 딱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
사람도 많고, 어떻게든 엮여있고, 연차나 직급과 같은 위계가 있고, 강제하진 않지만 누구도 쉽사리 벗어나기 쉽지 않다.
상자에 구슬을 넣고 흔드는 것처럼 회사라는 틀 속에서는 상식들이 충돌할 환경이 조성된다. 어떤 경우는 운 좋게 충돌을 피하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엔 강력한 충돌로 내 상식이 깨져나가기도 한다.
회사는 일방의 욕망이 지배하는 곳이다. 아무나 욕망을 가질 수도, 펼칠 수도 없다.
그러다 보니 모든 행동 준칙은 하나로 통일된다. 상식도 마찬가지다. 우월한 상식이 존재하고 그것만이 상식으로 인정된다. 그러니 내 상식이 충돌해서 깨져나가는 것이다.
여러분의 상식은 회사 내에서는 상식이 아니다. 일단 여러분의 사고는 집단의 사고와 성찰이 녹아난 것이 아니다. 집단이 고민한 것이 아니니 수렴도 없다.
당연히 다른 사람들이 인지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고 공유되지도 않는다. 상식의 충돌이 없으면 감사한 일이고, 만에 하나 충돌을 하게 되면 그저 '몰상식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위치다.
이런 척박한 환경 속에서 자신의 상식을 꿋꿋하게 드러내는 사람이 있다. 흔히 '요즘 애들'이라고 불리는 신입사원 여러분들이다. 그래 당신이다!
상식은 세대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상식을 이루는 집단이 나이를 기준으로 분화한다. 그리고 집단 간의 공감과 이해와 공유의 정도가 나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아직까지 회사는 세대와 직급과 직책이 비슷하게 일치한다. 순혈주의 연공서열이 많이 파괴되었다지만 주류는 여전하다. 그래서 여전히 회사 내에서는 직급에 따라 상식이 다르다.
상식이 다른 사람들은 같은 사안에 대해서 서로 다른 판단과 행동을 한다. 그래서 입사를 하고 처음 겪은 멘붕은 대부분 다른 상식 간의 충돌에 관한 것이 많다.
회사의 상식은 하나다. 오너나 오너에게 권한을 위임받은 자의 상식이 그 회사의 상식이 된다.
'그분'들이 농업적 근면성이 젤 중요하다고 하면 그게 업무의 상식이 된다. 끈끈한 팀워크가 젤 중요하다면 그게 조직의 상식이 된다.
그래서 영화와 디너 정찬으로 회식을 하는 팀에 불쑥 방문하여 '삼배주'를 돌리는 것이다. 그게 그분의 상식이고 곧 회사의 상식이니까.
'그분'들과 가장 비슷한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 그 하위 직급을 구성한다. 상식의 일치도와 직급/직책은 일치하는 경향이 있다.
임원이나 부장, 차장들은 각자의 상식이 없어서일까? 아니다. 자신의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아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상식을 주장하지 않는다. 그게 얼마나 줏대 없고 무기력해 보이는지 스스로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주장하지 않는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최고 결정권자와 자신의 상식이 다른 것을 확인할 때마다 자신의 상식을 뜯어고친다. 그런 사람들을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바로 신입사원이다. 그래 당신들!
몸이 가볍고 생각이 얇은 사원들은 그런 행동을 '아부'라고 폄훼한다. 스스로는 월급루팡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면서 그들의 생존법은 권력에 아첨한다고 치부해 버린다.
이게 쿨한 듯 여겨버리면 되는 간단한 일일까? 안타깝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여러분의 상식대로 상사들을 줏대 없는 아첨꾼으로 치부해 버리면 안 된다. 그들도 신입사원 시절을 겪은 사람들이다.
상식의 충돌을 여러 차례 겪었을 테고, 자신의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 황당한 상황도 많이 겪었을 것이다.
여러분들의 상식은 주로 같은 직급 내의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많은 충돌을 겪는다. 그 외로 번져나가겠지만 확률은 낮은 편이다.
그다음 많이 상식의 갈등을 겪는 사람이 상사다. 그 상사는 최고 결정권자의 상식과 여러분의 상식이 충돌하지 않도록 해주는 완충지대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 상사를 적대시하는 경우가 많다. 그건 완충지대를 점점 줄여가는 행위다. 완충지대가 사라지면 여러분은 듣도 보도 못한 상식과 만나게 된다.
상사가 선량한 완충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든 아니면 최고 결정권자를 존경하여 동일시를 하는 것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여러분이 편을 먹어야 하는 사람은 상사다. 그래야 여러분에게 여러 가지 기회가 생긴다.
하늘 꼭대기에서 우박을 던지는 사람(최고 결정권자)이 있고, 그 우박을 바로 맞는 사람(상사)이 있다. 깨진 우박은 비가 돼서 내리고 그 비를 맞는 사람(여러분)이 있다.
이게 회사의 모습이다. 이런 구조에서 비 좀 맞는다고 우박 맞아주는 '호도르' 같은 사람을 등 뒤에서 찔러봐야 맞이하는 건 '긴 겨울' 뿐이다.
상사의 상식은 최고 결정권자가 보면 여러분의 상식과 같아 보인다. 여러분이 보면 최고 결정권자의 상식과 같아 보인다. 회사 내에서 가장 외롭고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상사의 상식이다.
그런데 회사의 상식은 누구의 상식이라고? 최고 결정권자다. 그렇다. 여러분의 상사가 아무리 애를 써도 절대로 최고 결정권자는 상사를 자신과 동일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어차피 최고 결정권자는 여러분의 상사에게 말도 안 되는 목표와 예산과 기한을 주고 닦달할 것이다. 그 닦달을 받는 건 상사다.
그럼 누구와 편을 먹는 게 합리적인가? 그렇다. 상사와 여러분이 편을 먹어야 한다.
그런데 회사에선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상사는 최고 결정권자와 편인 양 굴고, 여러분은 상사를 최고 결정권자의 클론처럼 여긴다.
그래서 여러분의 회사가 아비규환인 것이다. 같은 편끼리 편을 못 찾고 있는 것이다.
'상사가 개또라이인데 어떻게 편을 먹나요?' 진짜 개또라이라고 해도 그건 개또라이 축에도 들지 못한다.
아무 생각 없는 듯이 헤벌레 웃는 그 상사도 지금 나름의 완충지대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게 상사의 역할이기 때문에 하기 싫어도 할 수밖에 없다.
배알도 없는 무능한 상사라고 쫒아내버리면 개또라이 같아 보이던 상사를 순한 댕댕이처럼 보이게 해 줄 사람과 직면하게 된다. 직급이 높을수록 타격은 클 것이다.
이 포인트가 권력 투쟁이 많이 일어나는 지점이다. 나름 준비가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청해서 상사의 자리로 뛰어든다. 스스로 쌍욕이 도달하는 거리를 줄여본다.
항상 그렇듯이 준비는 언제나 부족하다. 그래서 엄청나게 힘든 시간을 겪게 된다.
부족한 완충자가 들어오면 여러분한테까지 충격이 갈 것이다. 아비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여러분의 상식 기준으로 회사에 있는 사람들과 사내에서 일어나는 일을 판단하고 행동하면 안 된다.
사람도 많고, 어떻게든 엮여있고, 연차나 직급과 같은 위계가 있고, 강제하진 않지만 누구도 쉽사리 벗어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다양한 케이스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 회사다.
경험을 통해서 회사 내에서 통용되는 상식을 다시 익혀야 한다. 현재의 대한민국 회사에서는 어쩔 수 없다.
이런 걸 파괴하자는 회사도 있다. 기업문화를 혁신하겠다고 하는 회사들이 있다. 말은 매우 간단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바뀌어야 할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보통은 수십억을 쓰고, 몇십 년이 걸려서도 정확히 원하는 방향으로 되지 않는다. 간단한 기획안의 수사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글로벌한 선도 기업의 사례도 많이 알고, 정의감도 불타오를 나이라는 거 잘 안다. 그렇다고 그 상식이 바로 수용될 수 없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상식으로 회사를 다니지 말길 바란다. 오히려 회사에 있는 수많은 상식을 만나면서 얼마나 많은 상식들이 존재하는지를 배우는 게 낫다.
그리고 그 회사에 오래 남아, 가장 효율적이고 보편적인 상식을 여러분이 상사가 되었을 때 주장해라. 그게 여러분이 원하는 상식을 통용시킬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상식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상식은 실제로 18 세 이전에 마음속에 놓여있는 편견의 저축에 지나지 않는다."
상식은 개인적이고 상황적 조건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자신의 것을 절대시 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상식이 가장 보편적이라는 믿음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게 통용되는 사람을 만나고, 통용되는 곳에 있고 싶어 한다. 그래야 그 믿음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는 매우 특수한 곳이다. 여러분의 상식은 수많은 소수 상식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소수끼리의 연대다. 그래야 몰상식의 상황을 상식적으로 견뎌낼 수 있다.
그리고 연대의 대상에는 여러분의 상사도 포함된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상사의 상식을 이해하려고 할수록 당신은 회사에서 적응하기가 쉬워질 것이다.
혹 상식적인 상사를 만나게 되면 절대로 그를 외롭게 하지 마라. 그래야 우박을 가랑비로 만들 수 있다. 우박에 맞아 죽지 않도록 그의 상식을 따라주고 지지해주어라.
절대 당신의 상식을 고집하지 마라. 그러면 권력에 의한 상식의 이동이 보인다. 그러면 비를 좀 덜 맞을 수도 있다. 그러면 고립되지 않는다. 그러면 좋은 내 편이 생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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