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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ama Dec 09. 2019

#116. 체형은 변하는 것일까?

[누만예몸][극사실 실천법] 체형을 바꾸고 싶다고? 그럼 다시 태어나야지

    살다 보면 우리 주변의 참 많은 것이 변한다. 도시나 도로도 변하고, 정권에 따라 정책이나 제도도 변한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도 변한다. 


    참 많은 것이 변하지만 우리 마음처럼 많이 변하는 것이 있을까? 우리 마음은 왜 이렇게 자주 변할까?


    '심리적 면역'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는 스스로가 고집하는 것을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나쁘지 않다'라고 결정하고, 기억을 바꿔서라도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예를 들면 무엇인가에 반대했지만, 기억의 내용을 바꿔 반대의 정도를 낮춘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전부 괜찮아'라고 자신을 설득하는 방법을 찾는다. 상황에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바꿔버린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부정적으로 봤던 것과 평화롭게 지낸다.


    이렇게 우리는 거지 같은 인간관계와 최악의 환경 속에서 살아남는다. 계속해서 마음을 바꾸면서 말이다. 






<체형의 기준 따윈 없다!>


    우리 몸의 모든 것은 유니크하다. 백인백색의 유니크함을 가졌다.


    그러므로 평균적인 체형이나 전형적인 체형이란 것이 존재할 수 없다. 애초에 전부 다 다르게 태어났는데 도대체 무슨 평균이나 기준이 존재하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머릿속에 평균적인 체형과 전형적인 체형에 대한 이미지가 존재한다. 왜냐하면 우리 몸이 가지는 각각의 차이점을 약점으로 인식시키는 문화의 영향 때문이다. 


    이 문화는 약점이라 규정한 것으로부터 도피하거나, 수정하라고 강요한다. 그리고는 숨기지 못하거나, 수정하지 못한 사람을 '루저' 취급한다.


    이런 취급을 받은 사람은 자신의 몸이 남과 다른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이라고 인식한다. 그리고 '그 잘못'에 대해 습관적으로 모니터링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부끄럽고 불안한 존재로 여기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애써 가졌던 '동기'마저 잃는다. 그리고 마침내 건강함의 실제적 지표인 내 몸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관심이 사라진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자연스레 평균적인 체형과 전형적인 체형에 대한 이미지가 형성된다. 그리곤 내 몸도 아닌 다른 몸을 추앙하게 된다.  


    그렇게 자신의 이미지 속에 있는 가상의 평균 체형에 이르기 위해 많은 희생을 하지만 행복하지 않다. 왜냐면 체형에 기준 따윈 원래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체형의 우상화에서 벗어나라>


    우리가 이미지화하고 있는 체형은 주로 미디어로부터 온다. 요즘엔 특히 소셜 미디어로부터 많이 온다.


    우리가 소셜 미디어에서 '좋아요'로 추종하는 '그분들'은 딱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첫 번째는 타고났거나, 두 번째는 죽도록 노력하는 경우다. 


    그분들은 '타고났다'는 말을 끔찍이도 싫어한다. 왜냐면 타고난 사람조차도 적잖은 노력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노력이 폄훼되는 것을 참지 못한다. 


    그러던가 말던가 이 두 가지 경우 모두 우리가 따라 할 수도 없고, 따라 해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현재 모두의 마음속에 이미지화되어 있는 '기준 체형'은 타고난 사람조차도 노력을 해야 하는 수준이다. 그러니 같은 체형이 아닌 사람이 그렇게 되려면 얼마나 힘들겠는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는 서커스를 보면서 누구나 저런 기술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절대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못한다고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소셜 미디어에서 보는 실존 불가능한 체형은 왜 가능하다고 여기고, 못 가진 것을 부끄러워하는가? 이건 분명하게 우리에겐 불가능이고 불필요다. 


    '무엇'이 불가능을 강요하는지를 봐야 한다. 무엇이 자꾸 불가능을 당연시 여기게 하여 스스로의 문제로 자책을 하게 만드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래야 우상시되는 체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래야 진정한 몸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체형을 결정하는 요소>


    첫 번째는 골격이다. 키나 다리 길이, 골반 크기, 뼈의 굵기, 비율 등은 체형을 결정짓는 요소이다. 골격은 타고난다. 이건 바꿀 수 없다. 


    두 번째는 유전이다. 유전에 따라 지방이 쌓이는 부위가 다를 수 있다. 볼륨 있는 가슴과 엉덩이는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는 것이다.



    세 번째는 호르몬이다. 스트레스에 의한 코티솔과 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은 복부지방과 연관이 깊다. 


    네 번째는 노화다. 40+ 분들은 점차 체감을 하게 되는 부분이다. 점차 근육이 감소하고 지방이 증가한다. 폐경과 같은 변화 역시 체형을 변화시킨다. 


    다섯 번째는 라이프 스타일이다. 환경적인 요인으로도 체형은 변한다. 예를 들면 하루 종일 자리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다거나, 서 있을 수밖에 없다거나, 스트레스를 지속해서 받는다거나, 과식이나 폭식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그렇다.


    이 중에 우리가 노력해서 바꿀 수 있는 건 딱 하나뿐이다. 바로 라이프 스타일이다. 그 외 골격, 유전자, 호르몬, 노화는 내가 컨트롤할 수 없다.


    결국 [극사실적 실천]의 관점에서 우리의 체형을 결정하는 요인은 '라이프 스타일' 딱 하나인 셈이다. 그러니 당연히 스스로의 라이프 스타일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체형의 다양한 분류>

    보통 외배엽형, 중배엽형, 내배엽형으로 구분한다. 하지만 그 사이에는 인구수만큼의 세분화된 척도가 있다고 보면 된다. 


    보다 세분화한 체형 분류도 있다. 물론 이 경우에도 각각의 분류끼리의 경우의 수와 그 경우의 수 사이의 수많은 세부 척도가 존재할 것이다. 즉, 크게 분류는 했지만 결국 세상의 모든 몸은 전부 다를 뿐이다.


    당연히 모든 몸에는 장단점이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체형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가졌을 때 매우 건강하고 행복해진다.


    완벽한 체형 따윈 없다. 우리 모두는 모두 개별적인 신체적 특징에 따른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안고 살아간다. 


    더 좋고, 더 나쁜 건 없다. 나는 배에 식스팩이 안 보여도 열정적이고 스마트하게 사는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다.


     

<체형은 바꿀 수 없나?>


    그 어떠한 노력으로도 체형은 바꿀 수 없는 것일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바꿀 수 있다.


    다만 다른 체형처럼 보이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을, 더 강한 강도로, 더 오랫동안 지속해야 할 뿐이다. 더 철저한 운동과, 더 철저한 식습관과, 더 철저한 생활관리가 필요하다. 


    우리는 그것을 직장을 다니거나, 육아를 하거나, 일상의 수많은 개인사를 겪으면서 하지 못할 뿐이다. 그리고 딱히 할 이유도 없다. 


    할 이유가 있고,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여건이라면 해도 된다. 그건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미디어로부터 정형화된 체형이 '절대선'도 아니고, 우리 몸이 지향할 '최고선'도 아니기 때문에 모두가 그래야 할 이유는 1도 없다.


    당연히 개인사가 배제된 몸 관리에 대한 비난은 잘못된 것일 뿐 아니라 매우 폭력적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결정적으로 천박하고 무식한 행동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체형을 추앙하고 싶다면 하면 된다. 그리고 느껴보면 된다. 그게 자연스럽고 행복한지를. 그게 나의 라이프 스타일에 적합하고, 행복한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게 하는지를.



<그럼 생긴 대로 막살면 된다?>


    그렇다면 생긴 대로, 타고난 대로 살면 되는 것인가?


    그것 역시 그렇지 않다. 왜 그리 극단적인가? 


    각자 타고난 체형에는 각각의 약점이 존재한다. 그 약점을 적당히 보완하며 살아야 건강하고 행복 해 질 수 있다. 


    당연히 적당한 노력의 지점이 존재한다. 체형을 바꿀 정도의 '고생'도 아니고, 생긴 대로 사는 정도의 '방치'도 아니다. 


    예를 들면 내배엽 체형, 라운드 체형, 스푼형 체형은 살이 찌기 쉬운 체형이다. 잠깐의 나태함과 폭식으로도 살이 찔 수 있다. 


    그래서 생긴 대로 살려고 해도 자꾸 약점이 강화되는 체형으로 변한다. 잘못된 체형의 변화는 생활의 불편을 초래하고, 최종적으로는 병을 유발한다. 


    다양한 체형의 일반적 특징에 개인적 요소(골격, 유전, 호르몬, 나이)의 가중치가 더해지면 일반적으로 설명을 할 수 없는 개인만의 유니크한 체형의 특성이 나타난다. 


    이런 사람에게 '넌 내배엽이니 굶어라!'라고 하는 것은 그냥 막살겠다는 것만큼이나 잘못된 처방이고 조언이다. 그러니까 함부로 다른 이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면 안 된다.


    그리고 나와 다른 체형을 가진 사람을 경외시 할 필요도 없다. 물론 폄훼할 필요도 없지만 작금의 시국에서는 폄훼보단 경외가 더 많으므로 경외시를 더 조심해도 된다.


    정말 조심할 것은 '나태의 방패'로 삼는 것이다. 특정 체형을 강요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와지는 것이 나태의 명분이 되어서는 안 된다.


    다시 반복하지만 양 극단 사이에 개개인의 체형에 맞는 효율적인 노력의 지점이 존재한다. 그 지점이 [누만예몸]이 추구하는 지점이고, 자연스러운 행복감을 느끼는 지점이다.



<나의 체형에도 심리적 면역을>


    이상적인 체형은 없다. 그건 허구다. 누군가가,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 낸 것이다. 


    특정 체형이 더 우월하지도 않다. 더 위대하지도 않다. 당연히 목표가 되어서도 안된다. 


    예를 들면 수영이 유리한 체형이 있고, 체조가 유리한 체형이 있고, 마라톤이 유리한 체형이 있을 뿐이다. 서로 다른 체형을 무시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허상의 이미지를 가지고, 그 이미지를 추구하려고 애쓴다. 심지어 추구하지 않는 사람을 비난한다. 


    그리고 그 노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엄청난 시간과 돈과 에너지가 낭비된다. 그럼에도 오아시스처럼 잡히지 않는다. 결국은 일상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부자연스럽고 불행하게 만든다.


    우리 몸의 변화는 공부와 비슷하다. 그럴 수밖에. 공부는 뇌로 하는 운동이니.


    제대로 해 본 사람은 안다. 공부를 제대로 해본 사람은 전국 1등의 오답 노트가 꼴등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공부는 각자만의 수준과 이해법이 존재한다. 남의 공부가 내 공부가 되지 않는다.


    몸의 변화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의 몸은 절대로 내 몸의 지향점이 될 수 없다. 타고난 것이 다르고, 현재 처해져 있는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무시하고 특정한 체형을 찬양하는 것은 어리석고 슬픈 일이다. 


    자신의 몸에 대해서도 심리적 면역을 만들어 보자. '나쁘지 않다'라고 합리화하고, 어제 먹은 피자는 잊어버리자. 오늘 못한 건 내일 하면 되고, 어제도 잘했노라고 생각하자.


    다른 기술이나 스킬이 없는 것은 아무렇지 않으면서 왜 체형은 부끄러워하는가? '이것도 좋지만...'이라고 생각하고 약간의 노력으로 갈 수 있는 양 극단 사이의 '해피 포인트'를 찾아보자.


    비정상의 체형은 없다. 당연히 이상적인 체형도 없다. 쫄지 말자. 


    '내가 뭐? 너나 하던 대로 하던지!'라고 심리적 면역의 예방 주사를 맞아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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