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난리입니다. 작년 '지리산'으로 주가를 지리산 계곡에 파묻은 에이스토리가 제작과 IP(지적재산권)를, 해외 방영권은 넷플릭스가, 국내 방영권은 KT 계열사인 ENA가 가지고 있고, 웹툰으로도 연재를 한다고 합니다. 난리 난 이유는 다들 아실 테고 아무튼 전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작품이나 배우 연기에 대한 이야기는 각자 취향이니 언제나 취존 합니다. 오히려 제가 재밌게 느낀 점은 의외의 캐릭터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입니다. 전 세계에서 아주 핫하게 추앙을 받고 있는 극 중 인물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정명석 변호사입니다.
글로벌 시청자들이 정명석을 추앙하는 이유는 '존경할 만한 상사'라는 점 때문입니다. 그만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상사에 대한 나쁜 인식이 얼마나 지배적인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물론 정말 나쁜 상사들이 현실 세계에 많이 존재한다는 의미도 되겠습니다. 그러니 정명석처럼 능력 있고, 권위적이지 않으며, 공정하고, 편견이 없고, 잘못을 인정할 줄 알고, 인간적이고 따뜻한 상사의 모습을 보면서 추앙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죠.
정명석은 로펌 한바다의 14년 차 시니어 변호사로 나옵니다. 제가 로펌의 상황은 잘 모르니 일반 회사로 치환을 해서 보겠습니다. 14년 차면 대기업 기준으로 과장 말년 차거나 차장 정도 되겠네요. 성과가 좋다면 1~2년 후엔 부장도 달 수 있겠습니다. 중소기업은 승진이 빠른 편이니 한 직급 정도 더 위라고 보면 될 듯합니다.
전 여기서 재밌는 상상을 한번 해봅니다. 제 상상이 거의 100000% 맞을 겁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상사나 시니어들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면서 자신이 '정명석 같다'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심지어 일부 오너나 대표이사들도 자신이 정명석 같은 사회생활을 해오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정명석이라는 캐릭터가 인기가 많은 이유는 존경받을 만한 상사를 잘 그려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캐릭터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니어 시청자들은 '추앙'의 의미로, 시니어 시청자들은 '자신에 대한 투영'의 의미로 정명석 캐릭터를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회생활의 주니어들이 보는 정명석은 그야말로 '갓명석'이라 할 만합니다. 지시에 대한 배경 설명부터 업무 분장까지 아주 명쾌합니다. 일을 주고 함께 과정을 챙기며 멘토링을 해줍니다. 자신의 책임을 외면하지 않고 실수를 인정합니다. 마지막으로 부하 직원들의 장점을 잘 찾아서 칭찬을 해줍니다.
현실은 어떻습니까? 설명 없이 일 던지는 것은 다반사일 테고, 어떻게 하면 좋은지 알려주지도 않죠. 알려줄 역량이 있기는 한 건지 의심스럽고요. 힘들게 해다 주면 어찌나 빨간펜을 해대는지 짜증 나죠. 그리곤 빨간펜을 했다는 이유로 자신이 한 것으로 포장을 합니다. 인정은 안 해주면서 대접은 받고 싶어 하고, 어찌나 예의범절을 따지는지 청학동이 따로 없죠. 그러면서 자기는 반말을 하죠. 특정인만 편애하고, 갈라치기 하고, 팀워크는 본인이 다 깨면서 팀워크 운운은 어찌나 하는지 모릅니다. 회의 시간에 말은 혼자 다하고, 할 말 있으면 해보라고 한 후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며 일은 자기만 하냐며 짜증을 내고 나가죠. 책상보단 라운지에 더 자주 가있고, 일보단 정치질을 더 중요시합니다. 뭐 아주 일부만 묘사해 보면 이 정도 일 것 같습니다.
현실이 이런 똥밭이니 드라마 속 정명석의 모습은 주니어들에겐 '갓명석'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저도 신입 시절에 저런 멘토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혼자서 생존형 업무를 하다 보니 효율과 성과위주의 뾰족함만 남게 되더군요. 물론 그래서 사회생활의 거의 절반 가까이는 정반대로 살긴 했습니다만 돌아보면 정명석의 반열에는 오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랬다면 지금 이런 모습은 아닐 테니 말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실제로 정명석은 존재할수 있을까요? 완전 불가능 하진 않습니다. 일반 회사에서 정명석이 존재하려면 일단 오너나 대표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극 중 6화에 보면 정명석의 팀이 증인을 잘못 세워 고객사를 잃고 수십억을 놓치는 일이 발생을 합니다. 이런 일이 일반 회사에서 발생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보통은 임원회의에 끌려가서 너덜너덜하게 까였을 것입니다. 다음번 승진 누락은 떼어 놓은 당상이고요. 전폭적인 신뢰와 지지가 없었다면 현실에선 6화 이후엔 등장하기 어려웠을 듯합니다.
첫 화에서 정명석은 한선영 대표가 자신에게 똥을 던진 것으로 간주하고 찾아갑니다. 물론 극 중에서는 매우 아름답게 우영우에게 기회를 주고 잘못된 자신의 인지 편견을 수정하는 것으로 마무리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선 어떨까요? 일단 대표가 보냈으니 좋게 좋게 넘어갈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왜냐하면 거부나 못마땅한 의사를 밝히면 '당신 리더십에 그렇게 자신이 없어요? 리더가 하기 나름 아니겠어요?' 같은 공격받을 요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제가 잘 사람 만들어 보겠습니다'와 같이 선수를 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드라마에서처럼 찾아까지 갔다면 어떻게든 우영우의 무능함을 증명했을 겁니다. '거 보십시오. 제 말이 맞지 않습니까?' 이 한마디를 하기 위해서 말이죠. 현실의 어른들은 체면을 상하는 걸 죽기보다 싫어합니다. 그래서 현실에선 상대의 면을 상하게 하는 일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그렇게 되면 보복을 받게 됩니다. 마치 MLB에서 고의사구를 던지는 것과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누군가의 면을 상하게 하는 일을 한 거 같은데 아직 보복을 받지 않았다면 그건 둘 중에 하나입니다. 아직 호감이 있거나, 보복을 준비 중이거나...
극 중의 정명석은 업무에 함께 참여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줍니다. 하지만 일반 회사에서 정명석 정도의 짬이라고 한다면 하루의 2/3은 회의를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업무 회의냐고요? 아니죠. 보고죠! 영업 보고, 업무 보고, 결산 보고, 대책 보고, 인사 보고, 월례 회의, 분기 회의, 팀장 회의, 임원 회의와 같이 이름은 다양하지만 결국 다 보고입니다. 참석자도 비슷비슷하고요. 회사와 같은 절대적 독재 시스템은 모든 정보와 지시가 한 곳으로 흐를 수밖에 없습니다. 권한이 있는 곳도 있다고요? 네 그럼 책임도 져야 할 겁니다.
마지막으로 현실에 정명석이 존재할 수 없는 이유는 우영우, 최수연, 권민우 같은 팀원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시니어 편드는 게 아니고 현실이 그렇습니다. 극 중에서 세 명은 모두 신입으로 등장하는데 신입치고는 일을 겁나 잘합니다. 전문직임을 감안해서 대리급 경력직이라고 쳐줘도 일을 엄청 잘하는 겁니다. 회의 때 의견을 내는 것이나 업무에 대한 책임감 같은 게 엄청납니다. 이게 정명석이 잘해서 그런 것인지, 그런 애들이라서 정명석이 잘할 수 있는 것인지 선후 관계는 모르겠습니다.
현실에서 정명석 팀처럼 일하면 애들이 며칠 만에 너덜너덜 해집니다. 말을 붙이기 조차 민망할 정도로 에너지가 바닥이 납니다. 민심이 흉흉해집니다. 워라밸도 생각 안 하는 꼰대라는 소리 듣기 딱 좋습니다. 저는 본부장으로 있으면서도 보고서나 기획안을 직접 작성했습니다만 본인들의 고정 업무만으로도 벅차 하는 게 사실입니다. 뭔가를 새롭게 생각해야 하는 뉴프로젝트의 경우는 '제발 니들이 결정해서 시켜줘~' 이런 표정이 역력합니다.
현실이 어떻든 '우영우'는 우리에게 힐링을 줍니다. 누군가는 아름다운 멘토와의 관계를 추앙하며, 누군가는 능력 있었던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며, 누군가는 열정 넘치는 팀원과의 관계를 부러워하며 힐링합니다. 그런 모습에 힐링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어찌 보면 비극 같습니다. 먹고살려고 웃음을 파는 건 장터 주모뿐만이 아니라 매일매일의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걸 인정하고 살기 비참하니까 그냥 합리화해버리는 것일 뿐입니다.
우리는 OECD 통계의 중간 따위는 잘하지 않는 치열한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과거부터 지독한 사계절과 지척에 보이는 수없이 많은 산에 둘러 쌓여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척박함과의 경쟁을 하다못해 이제는 눈앞의 모든 것과 경쟁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 덕에 다들 먹고살고 있기는 합니다만. 그래서 우리나라는 드라마나 영화가 현실보다 항상 순한 맛입니다.
대놓고 달달한 드라마인 '우영우' 속의 정명석은 어찌 보면 직장인들이 이르러야 할 이상향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그가 극 중에서조차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한 초엘리트 전문직인 점은 아이러니하긴 합니다.
어쩌다 보니 존경할 만한 상사가 없고, 신뢰할 만한 팀원이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먼저 존경해 주는 팀원도 없고, 먼저 인정해 주는 상사도 없습니다. 수직적으로도, 수평적으로도 경쟁만 남아 있습니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은 없고 '니가 가라 하와이'만 있습니다. 인위적으로 조장된 공포 속에서 자신을 지키려다 보니 생긴 일일 겁니다.
부디 일반 직장과 공직에서도 '정명석'과 같이 존경받는 상사가 많아지길 기원해 봅니다.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와 봄날의 햇살 최수연 같은 멋진 신입들도 함께 많아지길 기원해 봅니다. 그리고 창작의 산물이 더 매워지는 그날도 빨리 오길 기원해 봅니다.
현실의 매운탕 속에 계신 많은 직장인 여러분들! 단기적인 이익에 너무 휘둘리지 마십시오. 결국 사람이 자산입니다. 인생은 길고, 뒤통수 칠 사람은 많습니다. 좋은 자산을 보는 안목을 갖게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파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