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선수들 사이에 하는 말 중에 '돈이 줄줄 샌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 회사를 경험했지만 돈을 아예 안 쓰는 경우는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의 회사가 돈을 허투루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돈이 나가는 모든 부분에서 눈에 뜨이는데, 흔한 유형은 오너나 의사결정권자의 지인(또는 오랜 거래처)에게 돈이 새는 경우고 또 다른 하나는 몰라서 돈이 새는 경우입니다.
쥐뿔도 몰라서 돈이 줄줄 새는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마케팅' 영역입니다. 일단 마케팅이 뭔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주변에 아는 척하는 사람은 많고, 뭔가 딱히 답도 없는 거 같고, 하긴 해야 할 것 같으니 하긴 하는데 할 줄 모르니 돈이 줄줄 샐 수밖에 없습니다. 오너 회사가 특히 더 심하고요, 마케팅의 이해도가 낮은 전문 경영인도 오너만큼은 아니어도 몰라서 많이 샙니다.
일단 마케팅에 대한 이해가 일천합니다. 마케팅은 학문적으로도 정의하는 것이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마케팅은 현재 시점과 약간의 미래를 기반으로 작동되면 가장 좋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케팅은 과거 데이터나 자료나 지식으로만 알기가 어렵습니다. 짧은 시간에 성적을 올릴 수 없는 '국영수' 과목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업에 대한 이해와 현재의 고객행태에 대한 이해 그리고 고객 커뮤니케이션 채널에 대한 이해가 동시에 이뤄져야 합니다.
그래서 오너의 이해 수준 또는 오너 근처에 있는 사람들의 이해 수준에 맞게 마케팅이 시행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때 돈이 줄줄 샙니다. 대행사를 쓰고, 전화기에 대고 소리를 지르는 게 마케팅 업무의 전부인 경우가 많습니다. 당연히 효율적인지도 모르겠고, 효과적인지도 모르게 됩니다. 이때 오너는 마케팅 무용론을 언급하며 예산을 줄이곤 뭔가를 했다는 뿌듯함에 빠지게 됩니다. 이때쯤 마케팅 인력들은 자괴감을 느끼며 이탈을 하게 됩니다.
전략이 없이 마케팅이 실행되는 경우에도 돈은 줄줄 샙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업에 대한 이해나 고객행태에 대한 이해는 마케팅 담당자 수준에서만 이뤄지면 곤란합니다. 이 부분은 회사 전체가 전략적 차원에서 컨센서스를 이루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게 안된 회사가 있을 리가...'라고 생각하시나요? 의외로 많은 회사가 이 부분을 오너나 책임자의 개인적 경험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현실의 바닥을 기고 있는 실무자들과는 생각이 서로 사맛디 아니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돈이 줄줄 새는 회사는 자기 객관화가 거의 안되어 있습니다. 자기 회사가 벨류체인의 어느 부분에 위치하고 있는지 모르는 오너들도 많고, VOC는 가족들에게서만 듣는 오너들도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마케팅도 고객 지향이 아니라 오너의 취향 지향이 되고, 고객 서비스도 오너 가족의 심기 서비스가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고객이나 제삼자의 객관적 평보단 사적 이익 관계로 얽혀 있는 사람들의 사탕발림에 익숙한 오너는 그것만이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오너들은 마케팅을 '그냥 돈만 쓰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연히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죠. 오너 주변의 지인들 탓이 큽니다. '이걸 해야 한다! 저걸 요렇게 해야 한다!' 이런 식의 얘기를 듣고 와선 마케팅 담당자에게 '넌 왜 이렇게 안 하냐? 이것도 몰랐냐?'라고 얘기를 합니다. 하지만 마케팅은 그냥 돈 내고 사다 쓰는 기성품이 아닙니다. 자기 회사의 전략과 고객의 행태에 맞는 실행 방안을 찾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마케팅에는 테스트와 최적화가 필수입니다.
저는 마케터에게 필요한 필수적인 자질로 '호기심'을 꼽습니다. 비즈니스에 대한 호기심, 인간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 마케팅을 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새로운 가설을 수립하고 그걸 테스트할 수 있는 능력은 마케터에게는 필수입니다. 그래서 참신하고 독특하고 괴상하고 야릇하고 또라이 같은 가설을 수립하고 그걸 검증해내는 것을 즐기는 성향을 가진 사람이 마케팅 업무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냥 통계분석 좀 하고, SNS 감성 충만한 글 한 줄 쓰는 걸로는 부족합니다.
그래서 테스트와 최적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오너들은 마케팅에 헛돈을 씁니다. 이런 오너를 클라이언트로 둔 대행사들은 흔한 말로 꿀을 빨게 됩니다. 0.5명 이하의 인력으로 수수료를 쏠쏠하게 챙기게 되죠. 아~ 어떤 오너들은 대행사의 대행수수료를 본인들이 주는 줄 아는 경우도 많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대행사는 정확하게 표현하면 '채널 영업 대행사'입니다. 예를 들면 광고주를 잘 꼬셔서 네이버 채널에 광고를 하게 만들고 네이버로부터 영업 수수료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니 네이버 입장에선 이걸 광고주가 내게 할 수 있으면 이익이 엄청 커지겠죠? 근데 일부 오너들은 이미 자기들이 대행사 수수료를 주는 줄 알고 있으니 네이버가 잘하면 큰 이익을 남길 날이 올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이미 대행사 없이 직 광고를 하는 경우 5%를 할인해 준다고 꼬시고 있으니 잘 계산을 해봐야겠죠?
돈이 들어가니 마케팅을 영업 부서로 인식하는 회사들도 많습니다. 개념적으로는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마케팅에 무지한 오너만큼 마케팅에 무지한 담당자들도 많습니다. 돈만 쓰고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월급루팡들도 많으니깐요.
하지만 마케팅은 영업 부서라기 보단 전략부서가 맞다고 봅니다. 회사에 존재하는 영업 채널의 메시지를 통합 관리하는 역할을 해야 하고, 비즈니스의 next step에 해당되는 단계로 가기 위한 자산을 만드는 역할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당연히 현재의 사업적 성과, 브랜드, 고객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이뤄져야 하고, 그것에 대해서 오너부터 신입사원까지 컨센서스가 이뤄져야 합니다. 이 단계에서 오너의 가오 때문에 흐지부지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문제는 이 단계에서 흐지부지 돼버리면 마케팅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습니다. 왜냐하면 마케팅엔 '방향성'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마케팅의 방향성을 이해 못 하는 오너들은 마케팅에 바라는 바가 많습니다. 돈을 쓰니까 그런 요구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매출도 올리고, 회원수도 늘리고, 객단가도 높이고, 브랜드 가치도 높이고, 재구매율도 높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쯤 되면 '네가 해라~'하고 나오고 싶죠?
마케팅은 우선순위가 높은 방향성을 찾고, 그에 맞는 실행을 하고, 최적화하는 일을 반복해야 합니다. 문제는 방향성 간에 모순이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 할인 행사를 하죠. 그럼 매출은 올라가죠. 문제는 1회성 회원과 1회성 구매자도 같이 증가합니다. 쓰레기 회원이 늘고 재구매율 관리에 혼선을 겪게 됩니다. 할인을 안 하면 반응을 안 하기 때문이죠. 또 할인은 브랜드 가치를 훼손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익률을 떨어뜨리죠. 단기적 행사가 제조나 물류에 부하를 주기도 합니다. 마케팅이 전략기획 부서여야 하는 이유를 아시겠죠?
많은 오너들도 알고 있는 키워드 광고도 활용하는 법이 여러 가지입니다. 배너나 리타켓팅 광고도 전략에 따라서 활용법이 다릅니다. 이런 사실을 모르면 그냥 대행사한테 꿀을 빨리게 됩니다. 대행사는 말 그대로 대행만 합니다. 이사 대행이랑 똑같습니다. 옮기라는 짐만 옮기라는 장소에 옮겨놓는 역할을 합니다. 심지어는 그것도 잘 못하죠. 그래서 이사 후엔 항상 정리를 새롭게 하지 않습니까? 대행사가 전략을 기획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전략을 기획하려면 회사를 속속들이 알아야 합니다. 그런 대행사도 그런 대행사 담당자도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일을 하는 것을 '컨설팅'이라고 부릅니다.
최근에 자기 객관화가 전혀 안되어 있는 회사 하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런 회사들의 특징은 마케팅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독특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회사가 앞으로 어떻게 될까를 지켜보는 일은 항상 재밌습니다. 결과를 아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습니다.
마케팅은 TV광고나 키워드 광고하고 GA 분석하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왜 그걸 지금 해야 하는지를 전략적으로 분석하고 기획하고 모두의 공감을 얻어서 그 전략을 테스트하고 실행하고 최적화하는 업무가 마케팅입니다.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냥 대행사에 던져주고 심리적 자기 위로만 하시면 됩니다.
많은 마케터분들이 현업에서 많이 답답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기업의 업종, 규모, 브랜드의 완성도, 현재 업황, 매출, 이익률 등에 따라서 마케팅의 방향성이 너무 많이 다르기 때문에 어떨 때 뭘 해야 한다는 정형화된 테이블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힘든 시기지만 호기심 잘 유지하시고 어리석은 오너와 너무 오래 있지 마세요. 인생은 길고 할 일은 많으니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