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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ama Nov 20. 2023

불명확한 변수에 대응하는 방법

#리그오브레전드 #월드챔피언십2023 #페이커 #LCK #T1 #승리기념


    흔히 '롤'이라고 부르는 리그 오브 레전드의 '월드 챔피언십 2023'이 오늘 막을 내렸습니다. 한국 리그 LCK 소속의 T1이 우승을 했습니다. 3:0의 완승이었습니다. 상대는 중국 리그 LPL 소속의 웨이보였습니다. 감독과 출전 선수 1명이 한국인으로 구성된 팀입니다. 그렇습니다. 롤에서는 한국 리그 LCK가 축구로 치면 프리미어 리그입니다.



    '중꺽마'라는 말을 들어보셨을까요?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의 줄임말입니다. 월드 챔피언십 2022의 우승팀인 LCK의 DRX 소속 데프트가 한 말입니다. (사실은 아니지만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작년엔 LCK 소속팀인 T1과 DRX가 결승전을 치른 집안 잔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한국팀들 겁나 잘합니다.



    롤은 1팀 5명으로 2팀이 경기를 합니다. 총 10명이죠. 이 10명이 선택할 수 있는 '챔피언'은 165개입니다. 상대팀이 고르지 못하도록 5개의 챔피언을 밴(ban) 합니다. 즉, 165개 중 10개가 밴이 되고, 10개의 챔피언을 골라서 게임을 합니다. 벌써부터 머리가 아픕니다. '스타크래프트'는 종족이 3개뿐이었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이건 약과입니다. 플레이어는 총 6개의 아이템을 장착할 수 있습니다. 아이템의 개수는 212개나 됩니다. 거기에 챔피언에게 특별한 특성을 부여하는 '룬'이라고 하는 것이 5종류가 있고, 각 종류마다 3~4개의 각각 다른 선택지가 있습니다. 말로 설명하려니 엄청 복잡해 보입니다. 물론 실제 해봐도 복잡합니다. 더 놀라운 건 많은 내용들을 애들 외우고 있답니다.



    롤의 매력은 '변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롤을 플레이해보면 무한대에 가까운 변수가 작동한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같은 팀 5명 간의 호흡, 실력차, 컨디션, 마인드 등이 영향을 줍니다. 상대팀의 호흡, 실력차, 컨디션, 마인드 등도 변수가 됩니다. 거기에 상대팀에 밴(ban)한 챔피언이 무엇인지, 우리 팀이 픽(pick)한 챔피언이 무엇인지에 따라서도 변수가 생깁니다. 각 챔피언이 어떤 룬을 세팅하는지도 변수가 되고, 어떤 아이템을 장착하는지도 변수가 됩니다. 뿐만 아니라 챔피언마다 궁합이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챔피언 사주가 다 다릅니다. 그래서 잘 맞는 챔피언이 있고, 아닌 챔피언이 있고 그럽니다. 그리고 그 경기의 작전과 물리적으로 마우스와 키보드를 컨트롤하는 능력도 변수로 추가가 됩니다. 듣기만 해도 어질어질한데 이게 재밌냐고요?



    무한의 변수를 가진 롤이란 게임은 그래서 항상 새롭습니다. 지겹지가 않습니다. 매번 모르는 사람과 게임을 합니다. 팀 구성에서 생기는 변수가 매번 생깁니다. 똑같은 챔피언으로, 똑같이 플레이하고 싶어도 그게 그렇게 되질 않습니다. 나 혼자 하는 게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챔피언 수도 많습니다. 챔피언 간의 상성이 다 다르기 때문에 한 가지 챔피언만 고집할 수 없습니다. 일단 해봐야 하는 게임입니다. 최대한 많은 챔피언을 경험해 보고, 최대한 많은 아이템 구성을 해봐야 하는 것입니다. 인생사의 축소판 같은 게임입니다.



    롤을 접하긴 전엔 수많은 변수를 가진 게임이 재밌을 리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전 게임을 즐겨하는 헤비 유저가 아닙니다. 그러니 변수가 많은 게임은 복잡하고 재미없는 게임이라고 더 강하게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게임 열기가 식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엔 트렌드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게임을 해봤습니다. 게임을 시작한 초반엔 재미가 없었습니다. 변수가 주는 중압감이 여전했더랬죠. 그래서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게 왜 재밌을까?



     변수가 많은 것은 불확실성을 높입니다. 많은 변수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건 저에겐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변수를 줄이고 명확해지기 위해서 애를 썼습니다. 변수로 인한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 참으로 많은 에너지를 썼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참 어리석은 짓이었습니다. 나에게 10개의 변수가 있는데 이 가운데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어떻게 추려내겠습니까? 그리고 다른 변수가 생기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어딨 습니까? 근데 전 겁부터 내고 있었던 거죠. 이런 태도가 특정한 업무에선 통하지는 몰라도 인생을 사는 태도로는 별로였다고 생각합니다.



    삶에서 겪게 되는 수많은 관계와 그 관계를 대하는 나의 태도를 정하는 것은 항상 어려웠습니다. 관계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변수를 줄여 나가려고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모든 변수는 통제할 수 없었고 예기치 못한 변수가 발현이 되었을 땐 난감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계속 같은 실수를 반복했습니다. 오기 같은 것이었을까요? 온전한 나로 그 관계에 대해서 부딪히고 거기서 발생하는 변수에 대응하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온전한 내가 변질되는 것이 가장 큰 변수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게임의 세계관에서도 말하고 있는 이 사실을 저는 롤을 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축구도 롤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축구는 무려 22명의 선수와 추가로 2~3명의 교체까지 있는 무한 변수의 끝판왕 같은 스포츠입니다. 거기에 둥근 공을 찹니다. 주식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천만 명이 수천종목을 두고 거래를 합니다. 주식은 시간도 깁니다. 축구나 주식이나 룰은 간단합니다. 골을 넣으면 되고, 싸게 사서 비싸게 팔면 됩니다. 이 두 가지 모두 '나의 방식'으로 먼저 움직이지 않으면 '나의 방식'이 변질됩니다. 깨져도 나의 방식대로 해서 깨져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습니다. 변수를 찾고 이해하고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본질을 최대한 살려서 부딪혀 봐야 하는 것입니다. 위대한 선수나 투자자들은 항상 그래 왔습니다. 문제는 그런 이들을 보고도 항상 겁에 질려 살았던 스스로에게 있었던 것이죠.



    오늘 우승한 T1은 4번째 우승입니다. 마지막 우승으로부터 7년, 최초 우승으로부터 10년이 되는 해에 4번째 우승을 했습니다. 페이커(Faker)는 이 4번의 우승을 모두 견인한 세계적인 플레이어입니다. 페이커는 모든 챔피언과 모든 아이템을 모두 숙지하고 있고, 이것들 사이의 상성과 가중치, 시간 등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거기에 상황을 파악하는 판단력, 그 판단력을 그대로 실행시켜주는 놀라운 컨트롤 능력까지 보유하고 있습니다. 마치 설명만 보면 위대한 스트라이커를 묘사한 것과 유사합니다. 페이커는 롤 세계관에 존재하는 수많은 변수들 속에서 움추려들지 않고 가장 페이커다움을 유지하며, 상대에게 가장 변수가 된 위대한 선수입니다.



     세계화가 유행했던 시절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입니다'라는 캠페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전혀 그렇지 않았으니까 캠페인까지 했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이 실제가 되었습니다. 가장 나다운 것을 유지하고, 적용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큰 경쟁력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예측 불가능한 수많은 변수들 속에서 두려워할 바엔 나로, 나의 본질로, 나의 근본으로, 나의 기본으로 먼저 대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롤이나 한 판 하고 자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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