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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안 Sep 02. 2020

9주 년 결혼기념일

축하 대신 통곡



오후 쯤, 어머님이 문자를 보냈다.
[민정아, 결혼기념일 축하한다.예쁘게 살아줘서 고마워]
아 오늘이 결혼기념일이구나. 남편이 잠시 뒤 문자가 왔다. 뭐 열심히 살자 어쩌구. 이미 한발 늦었다. 어머님이 남편에게도 문자를 보내셨겠지. 그걸 보고 우리 둘다 알아챘다. 축하한다고 우리 둘이 말하기도 웃긴거 아닌가. 나의 9년 전 결혼을 축하할 일인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해봐야겠다. 그리고 이미 자정이 지났다.


같이 맛있는거라도 먹기는 커녕, 울음바다로 마감한 9주년 결혼 기념일.

아이들 재우다가 호르몬의 노예가 된 나는 한시간째 깐죽대며 안자고 버팅기는 아이들에게 혼쭐을 내고는, 갖은 으름장을 늘어놓다가, 첫째 아들을 껴안고 엉엉 울었다.



잘먹지만 골고루 안먹고 티비도 1시간만 보기로 하고 약속 안지키고 더 봤다는 이유로 혼낸 건 너무 바보같다는 생각이 밀려와서, 아이에게 미안해서 엉엉 울었다.  


야채를 선호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이에게 계란이나 참치 같은 것만 지속해서 주는 돌봄 선생님에게도, 남편에게도 화가 났다. 반찬을 아무리 만들고 시켜놓고 준비해놔도 챙겨주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이가 안먹는다고 해서. 그래서 이젠 너무나 익숙하게 같은것만 주는. 지속해서 챙겨놓고 지시하지 않으면, 내가 몇일만 바쁘고 소홀하면 아이들은 똑같은 걸 매끼니 먹고 있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면 나는 나의 빈자리의 크기를 느끼다 화가 났다.



아이는 사실 너무나 잘 크고 있었다. 키도 몸무게도 큰 편에, 운동도 잘하고 한글도 수학도 시키지않아도 알아서 떼고서 학교에서도 선생님이 학교를 처음 다니는 아이 같지 않게 다 잘하고 있다고 하셨다. 동생도 예뻐하고, 잘 챙기는 너무 예쁜 아이에게, 잠을 늦게 잔다고 해서 내가 그렇게 까지 화를 낼 일인가( 오늘 둘째날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좀 화를 많이냄)


하루종일 할일을 쳐내느라, 화장실도 제대로 못가서  만신창이가 되어 집에 돌아왔고, 바로 씻고 싶은데 아이들은 내가 오자마자 이것저것 요구하고 먹을걸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샤워 직전 내 모습은 좀 비참한 모습이었다.



[엄마가 없는 동안 훤이가 잘 먹고 잘 놀았으면 좋겠는데 그러지 못하면 엄마는 너무 속상해. 엉엉]



터져나오는 울음을 그냥 흘러 내버렸다. 참지 않았다. 남편은 저 멀찍이서 우리들의 멜로를 그냥 보고 있었다.


자기보다 엄마가 더 많이 크게 우니까 아이는 당황하면서도 뭔가 미안한 마음이 생겨 같이 나를 껴안고 울었다.


[ 엄마, 그래서(내가 잘 못챙겨 먹어서) 속상해? 나 이제 골고루 먹을게]



그말을 듣고 보니, 그렇게 골고루 잘 안먹는 것도 아닌데, 몇가지 가리는게 있고, 생야채를 즐겨먹지 않을 뿐인데, 나는 뭐가 그렇게 억울하고 더 못챙겨줘서 안달인가.




하루종일 업무로 시달리다가 집으로 바로 오면, 그 여파가 고스란히 내 몸에 남아 잘못 방출되기도 한다. 그게 아이들이 대상이 되지 않아야 하는데, 그러니까 아이들이 일찍이라도 자줘야하는데, 코로나로 활동반경이 줄어들고 체육관도 못가니 자기전에 몸부림을 치는거다. 나는 내 몸에 남아있는 긴장감이 참다참다 결국 잘못 터지는 것이다.




아이랑 껴안고 오분정도 서로 내가 더 미안하다고 토닥이며 울다가, 같이 손잡고 세수하고 물마시고, 코가 막혔다고 왼쪽으로 누웠다 오른쪽으로 누웠다 바꿔가면서 남은 이야기를 했다.



학교에 오늘은 5명만 왔고, 아이들이 많이 안와서 조금 실망했지만, 그래도 온 친구들과 재밌었다고. 친구가 자기 공을 못줍는 곳으로 던져버려 속상해서 울었는데, 친구들이 위로 한다고 내일 자기에게 선물을 하나씩 가져다 주기로 했다고 좋아했다.



[훤이가 얼마나 잘 해내고 있고, 예쁘고 기특한데 엄마가 미안해. 넌 잘하고 있어. 아들]



엄마의 한섞인 울음소리가 너무 슬퍼서 아이 마음에 조금 오래 머물까봐 뒤늦은 후회가 또 밀려온다.

8살에게 엄마의 통곡은 어떤 모양으로 마음에 남게 될까. 이미 벌어져버린 일, 엄마도 자기처럼 펑펑 우는 같은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사과와 반성은 엄청 빨리 하는 사람이라는 것, 엄마는 울 때 목소리가 무지 큰 사람이는 것, 엄마도 나처럼 마니 울면 코가 막힌다는 것, 내일 아침이면 많이 울고나서 자면 눈이 팅팅 붓는 다는 것을 알게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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