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독립출판물 '만년청춘'을 읽은 나의 어른들
어릴 때 어른에 대한 호불호가 있었다.
특정한 행동을 싫어하기보다는, 자주봐도 피하게 되는 동네 어른과
가끔봐도 편안한 어른이 있었다.
그 중에, 내친구 H의 엄마와 나의 셋째 고모는 내가 좋아하는 어른 중 상위권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공통된 특징은 부담스럽지 않게 나를 좋아해주는 어른들이었고,
평범하지 않던 웃음소리와 소녀같지 않은 거친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시고
내가 티내지 않는 나의 장점(이를 태면, 책임감과 도덕적이고 현명한 ㅋㅋ )들을 인정해주신다고 느꼈다.
우선 나는 나를 보면서, 자기 자식과 비교를 하는 어른을 싫어했다. 자기 자식이 더 잘났다도 별로지만
자기 자식이 나보다 못난 점에 대한 토로도 별로였다. 나의 부모님은 누군가와 나를 비교하거나, 남의 자식이야기를 내게 잘 하시는 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유독 그런 태도에 대한 반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를 소재로 이야기하면서, 나에게 관심있는 말들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만 줄곧 해대면서 자기자랑을 늘어놓는 어른도 별로였다. 좀 밥맛이라 해야하나. 그런 어른들은 자꾸만 나를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는 말을 늘어놓고, 심지어 말도 길었다. (호응해주기 너무 피곤한 스타일)
어쨋든 그런 예민한 티 내지 않으면서 속으로 엄청 여러가지 잣대로 호불호를 나누는 내게 '호'의 감정만 남아있는 어른은 사실 몇 되지 않았다. 그마저도 대학을 서울로 가면서, 그 어른들을 만날 기회는 드물었고, 몇년에 한 번 얼굴을 보면 다행인 관계가 되었다.
2016년 겨울, 독립출판 워크샵을 들으면서 그동안 써왔던 글과 사진들을 담아 책을 만들었다. 사실 지금 돌아서 생각해보면 책을 만들만큼의 퀄리티있는 글은 없었는데, 약간 자아도취에 빠져 썼던 글들로 도배를 한 그런 책이었고, 200부 찍어서 개인적으로도 팔고 130부 정도는 독립출판서점에 입고를 했다. 모르니까 용감했다.
그 소식을 들은, 내 친구 H의 엄마와 셋째 고모는 딸들에게 부탁해 책을 주문했다. 그녀들에게 책을 낸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 생각되었을 수 있다. 사실 독립출판물은 별거 아닌데 말이다. 진지하게 축하를 받으며 머쓱하게 책을 보냈고, 20살 이전의 나에서 30살이 넘어 아이엄마가 된 나의 삶을 이 책 한권으로 전할 수 있다는 것으로 꽤 재밌는 메세지를 담은 물성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 겨울, 12월 31일에 친구 H가 우리집에 가족들과 함께 놀러왔따. 다음날 있는 남편회사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서울에서 하룻밤 자야했다. 그날 우리집에 놀러온 친구가 엄마랑 통화하다, 내게 그 전화가 넘어왔다. 실로 오랜만에 (한 4년 쯤) 듣는 목소리였다.
그녀는 책을 읽었노라고, 그동안 서울에 가서 대견하게 잘 크고 멋지게 살고 있는 것 같아서 뭉클하다고 이야기 하다가 "왜 눈물이 나노." 라며 목이 메인 목소리를 내었다. 그 순간 나도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는 것을 꾹 참았다. 앞에 친구와 친구가족, 그리고 나의 가족이 너무도 개걸스럽게 떠들고 있었기 때문에.
그 전화를 받고 뭉클한 마음은 꽤 오래 마음을 흔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어른들에게 내 감정적이고 구체적인 언어들이 가 닿을 일은 없다. 그러나 그 어른들은 가끔 내가 잘 지내는지, 어떻게 살아가는 지 궁금하기도 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자주 연락을 하는 부모님에게 조차 하지 못하는 말들, 언어들이 , 나의 경험들이 거기 담겨있었다. 그리고 그 책은 매개체가 되어 나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가 닿았고, 어른으로서 나의 곁에서 튼튼한 숲같이 존재했던 이유와 효능감을 조금 느끼게 되었을까?
고모에게도, 뭉클한 매세지와 함께 제주 한라봉 한박스가 배달이 왔다. 책 잘 읽었다고. 잘 커주어 고맙다고.
책을 만들 땐, 꼭 책을 내야지 하는 목적보다 호기심에 만들었고, 이 책이 이런 기능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나와 약간의 거리가 있는 지인, 내가 좋아하지만 자주 만나지 못하는 어른, 친하지만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엔 멀리있는 친구에게 꽤 진지하게 나의 이야기를 이 책 하나로 전달 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책은 전국 서점(제주도까지) 가서 가끔 일면식도 없는 어떤이의 sns에 올라오곤 했다. 어떤 한 페이지라도, 한 메세지라도 그들에게 가 닿아 마음을 울린 구절이 있다면 그 책의 탄생은 의도보다 더 멀리 잘 간 것 같았다. 제주도와 경주에 있는 서점엔 3번의 재입고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내 소장용 책 5권을 남기고 모두 팔았다. 아니, 다시서점에 열권정도 입고 했는데, 거기만 정산이 한번도 없었던 걸로 봐서 거기 재고가 있고 나머지 서점들은 거의 다 정산을 받고 마무리가 된 것 같다.
문든 둘째와 낮잠에서 깨어, 내가 좋아하는 어른들을 생각하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