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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안 Feb 11. 2021

결혼 후 에어드롭처럼 떨어진 일들

평범한 명절의 기준



결혼 후, 첫 명절(자그마치 9년 전).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나는 남편과 추석 아침에 시댁을 갔고, 아무도 강요하지 않아도 나는 상 차리는 것을 돕고 (젊고 늙은)여자들은 부엌을 떠나지 않았다. 남자는 늙어도 젊어도 소파나 침대에 누워 티비를 보거나 가끔 상을 옮겨 주거나 기껏 숫가락 세팅만 했나 그것마저 안했나 그랬던 것 같다. 그건 아무도 이의제기 한적 없는 고정된, 어머니들의 인내로 굳어진 희생의 모습이자 사랑의 모습이다. 나도 크게 생각해보지 않은 일상적인 모습이었고, 그래서 그냥 당연히 시댁을 간 것이다.

저녁에 예매한 부산가는 KTX를 타러 가는데 길이 막혀서 차가 움직일 생각을 않고 기차시간은 다가오고 있었다. 긴장감들이 주는 예민함이었던지 낯선 집에서 오랫동안 설거지 하던 나와 방에 누워있던 남편과 남편의 사촌들(모두 남자)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순간 눈물이 왈칵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전엔 생각해보지 못했던 감정들이 올라와 북받치기 시작했다.

'아, 나는 결혼을 했을 뿐인데 명절날 아침엔 평생 시댁에서 맞이해야하는 건가? 그것도 나이어린 사촌들에게 도련님이란 호칭을 써가면서? 부산을 가야한다고 나오는 것이 미안해서 이렇게 꽉막힌 도로에서 애간장을 태워야하는건가?'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던 일들이지만 오랫동안 보아왔고 그것에 대해 아무도 이의제기 하지 않았던 일들이 갑자기 결혼을 한 순간 내게 뚝 떨어졌다(에어드롭같이). 그래서 덜컥 겁이나고 이 이상한 상황에 눈물이 쏟아졌다. 엄마는 강화도가 멀어서 친정집에 못간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처음 그때 들었다.

운전하던 남편은 어느 대형 피자헛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울음을 달래고, 자신도 처음 마주한 문제인식에 한동안 말이없었다. 한참 뒤 진정한 내게, 남편이 이제 한번씩 가는 걸로 하자고. 한번은 부산에서, 한번은 부천에서 지내자고 제안했다.

 ' 아 그런 방법도 있었구나, 그렇게 하자고 말하면 될 것을 왜 뭐가 무서워서 애처럼 울기나 했지?' 라는 생각에 민망함이 돌아왔다. 이야기 하면 바뀐다는 것도 몰랐던 사람처럼 울기나 했네. (물론 바뀌는데는 개인마다 시간차가 있다)

남편이 어머니께 그런 말을 전달하지 않았지만(진짜 안함. 오해 금지ㅋ) 자신이 요리하고 살림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외동아들이 결혼을 했다고 해서 명절이라고 해서 집에서 이렇게 해야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해보셨던 것 같다. 설거지를 하는 아들의 아내를 보는 어머니도 안절부절이었다. 그래서인지, 명절 한달 전 쯤 항상 어머니께 문자가 왓다.

[민정아, 명절에 부산에 다녀와. 엄마는 괜찮다. 우린 제사도 없으니. 가서 부모님 뵙고와.]

길게 쉬는 연휴에나 부산에 갈 수 있으니 다녀오라고, 차 막히는데 굳이 왔다가지 말고 미리 가라고.

처음 2년 쯤은 내 스스로 불편하고 어머니의 제안을 있는 그대로 믿기 어려웠다. 진심이실까 걱정도 되었다. (심지어 친정엄마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오지말란다고 안 가냐고 난리였음)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건 어머니의 성정이었음을 알게되었다.

그 이후 시댁에서 음식을 해먹는 일은 없었다. 명절엔 차가 막히고 식당이 열지 않는 곳도 있으니 미리 만나거나 지나고서 보았다. 언제든 서로가 편할때, 보고싶을 때 보면 되는 것이었다. 굳이 좋아하지 않는 요리를 하지 않아도 되고 (참고로 나는 요리를 좋아한다) 그로인해 발생되는 설거지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외식이 힘들어지자 어머니를 오랫동안 뵙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극구 말리는 어머니를 모셔다 좋아하시는 요리를 해드린 적은 한 두번 있다.


명절 전엔, 어떤 일정을 보낼지 양가와 상의를 한다. 이젠 그것이 당연한 것이 되었다. 정해져있지 않고 가능하고 효율적인 방법을 찾는다. 아무도 무리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어떤 명절엔 엄마의 친정집(나의 외가집)에 모두 모여 아침을 맞이하기도 하고(엄마의 삶에서 몇 번 되지 않는 일), 나의 친가에서 제사를 지내기도 하고, 부모님 댁에서 느즈막히 일어나 맛있는 아침을 먹기도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명절을 보내기도 하고, 재충전 할 수 있는 감사한 시간을 갖는다. 명절 스트레스라고 한다면, 어딜 갈지 고민하는 정도가 되었다.


이런 상황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은 아니고, 또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환경들이 있고, 개인마다 중요시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맞고 틀리다고 단정지을 순 없다. 그러나 누구도 일방적으로 희생하지 않고, 이의제기는 언제나 열려있으며, 고정된 관습을 고민없이 행하기 보다, 변화하고 모두 즐길 수 있는 명절이 되길. 고생은 다 같이 나누어 하길 바란다.  


어제 [창고살롱]에서 '이런 이야기들이 자꾸자꾸 나와야 '평범'의 모습이 바뀌지 않을까요' 라고 한말이 맴돌아 나의 평범한 명절을 나눠야겠다 생각했다.


각자의 모양대로 보낼 수 있는 귀한 명절 연휴 되길, 조금씩 변화를 받아들이는 문화를 정착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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