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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안 Apr 12. 2021

엄마는 오늘도 못 나가?

미안할 일도 부끄러운 일도 아닌 것들

엄마는 오늘도 못 나가?

왜? 같이 나가고 싶어?

응 그래도 엄마가 힘든 건 싫어

휠체어 있음 유모차처럼 타고 나가면 좋겠다.

근데 그럼 좀 부끄럽지 않아?

휠체어 타는 건 부끄러운 게 아냐 훠나.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필요해서 사용하는 건데. 훤이가 다리가 아프다고 생각해봐. 휠체어는 필요해서 타는데, 부끄럽기까지 하면 속상하겠다. 부끄러운 일은 아니야.

아 그래! 그렇겠다! 알았어. 그럼 엄마 같이 나가자.

응??


금요일 저녁 아이와의 대화.


그러고도 용기가 안 나서 토요일을 보내고 일요일 아침. 물론 휠체어는 없지만, 큰맘 먹고 안 그래도 눈에 띄는 반깁스를 오른 다리 통째로 대고는 노랑 바지까지 더해서 따라나섰다. 이왕에 튈 거 대놓고 화려한 하체를 장착했다. 아이는 느려도 너무 느린 엄마의 속도를 맞춰 목발 짚는 반대쪽 손을 잡아주었다.


훠나, 엄마 천천히 갈 테니 실컷 가서 뛰어놀아.


그러면, 다시 힘줘 내 손을 잡아주곤, 나는 재차 아이를 보내고, 이내 신나게 뛰어가곤 했다.


동생의 응석을 받아주느라 정신이 쏙 빠지는 아빠와 느림보 엄마 사이에서, 이 아름다운 봄날을 맘껏 누리지 못하는 건 아닌가, 물론 내년에도 봄은 올 테지만 말이야.



엄마, 나 동해바다가 가고 싶어. 지금 당장 가자! 파도가 보고 싶어.



아이가 내 맘에 들어왔다 나갔나? 내가 그렇게 파도 이야기를 자주 했었나? 아니 아이도, 파도가, 자연이 주는 힘을 본능적으로 느낀 것일 수도 있다. 또한 아이도 답답한 마음이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일 수도. 내가 답답할 때마다 파도가 필요했던 것처럼.



시간이 있을 땐, 꼭 다른 사정이 생기고, 사정이 없을 땐, 시간이 없고, 이렇게 다음다음으로 미루면서 누군가는 늙고 누군가는 자란다.



나는 느림보 걸음으로 뒤따르다가 벤치에 자리 잡고 올리브 카터리지를 읽었고, 아이들은 나에게 왔다가 다시 멀어졌다가 보이지 않는 곳에 갔다가 달려오곤 했다.

이 모습으로 나와서 책 읽는 모습이라니. 내 다리들


돌아오는 길,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도와주러 올라오지 못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며칠 내내 고민하다 건 전화겠지.


" 아픈데도 도와주러 가지도 못하고, 미안하다 야."


애써 가벼운 척 넘기는 말에, 사실 흠칫 놀랐다.

사실 이게 엄마가 미안해할 일은 아닌데, 이 통화로 미안하다는 말을 들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엄마의 말에 미안한 마음이 내게 다시 돌아왔다. 큰 병난 것도 아니고, 넘어져서 다친 자식 걱정이나 시키는 곧 있음 마흔 되는 딸내미라니.  


다 낫고서 같이 놀거나 가자고. 시간만 지나면 회복하는 거고, 선생님들이 도와주고 계시니 걱정 말라고.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넘겨 말하고는, 잠자리에 들어서야 이 글을 쓰다가 눈시울이 붉어진다. 엄마가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고민했을지, 나도 엄마니까, 어렴풋이 알 것 같아서.



응석 부려도

쓸데없는 소리 한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호통치던 엄마는

최근 들어 두 번째 내게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다.



살면서

기억하기로

그 두 번이 다다.



미안한 마음을 미안하다고 말하지 못했던 엄마였다.

물론 엄마는 내게 미안할 일을 하면서 살아오신 분은 아니었다. 하지만 엄마란 원래 그렇잖은가. 그렇게 미안한 게 많은 사람. 그런 마음을 표현할 줄 몰라서, 주로 회피하던 사람이었는데. 가끔 엄마가 왜 저러지 했던 시간들 중에는, 엄마는 미안한 마음을 미안하다고 말을 못 해서 벌어진 오해들도 종종 있었다.




엄마도 일하면서

살아내느라 바빠서

숱한 밤 나와 내 동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겠지

그런 마음 품고 잠들었겠지

오늘 내가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처럼.

미안할 일인지도 모르겠는 일이

미안해지는 그런 사람.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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