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머선 129-1
어떻게 넘어졌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 왼발과 오른손은 불광천 속에서 물을 찰랑찰랑 느끼고 있었고 카메라는 목에 걸린 채 내 오른 무릎과 머리를 타격한 돌다리를 달랑달랑 치고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 세명쯤 가던 길을 멈추고, 몇 마디 의견을 나누다가 내게 말을 건다.
" 괜찮으세요? 일으켜드릴까요?"
힘을 내야만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구나를 체감하는 순간이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이 대답 없는 나를 걱정해서 함부로 나를 부축하면 내 상태가 더 안 좋아질 것을 직감한 나는 필사적으로 목소리라는 것을 낸다.
" 아, 제가 잠시 추스를게요. 괜찮진 않은데, 기다려 봐야 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잠시 앉아 있을게요."
조금 전 내게 고통을 준 돌다리를 의지해 걸터앉아서, 신발이 물속에 빠져도 건져내지도 못하고, 어두워서 물이 더러운지 아닌지도 모르겠고, 정신을 먼저 챙겼다. 확실한 건, 혼자 일어날 수 없는 상태라는 것.
앞서 갔던 아이들과 남편이 한참 지나서, 내게 다가왔다.
"여보 무슨 일이야?"
나 좀 일으키라고, 그러면서도 뛰어다니는 둘째가 걱정돼서 아니라고 애들 보라고, 아니야 나를 일으키라고 뭐 그랬다.
(후에 남편은 내가 왜 등을 지고 저기 앉아 있고 사람들이 모여있나 했단다. 내가 저 어둠 속에서 사진을 찍고 있나 보다 했다고.)
부축을 받고 겨우 일어났는데, 갑자기 급똥이 마려운 거다. 어떤 원리인지 모르겠으나, 괄약근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필사적으로 이번엔 괄약근을 붙잡았다. 그때는 이 상황에서 바지에 똥까지 싸면 응급실에 바로 갈 수도 없거니와, 집에는 어떻게 갈 것이며, 그러니 나는 치료를 빨리 받기 위해 이 똥을 무사히 해결해야 했다. 빨리 가야 하는 괄약근 상황과 빨리 걸을 수 없는 내 다리사이에서 1차적으로 멘붕이 온다. 이건 시련이었다. 최근 겪은 시련 중 가장 혹독한 시련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급히 들어간 카페 화장실은 건물 옆에 있었다. 그 와중에 아이들이 나처럼 헛디뎌 다칠까 봐 불안했다. 남편에게는 아이들을 챙기라고 하고 벽과 난간을 붙잡고 화장실로 간다. 이상하게 가는 나를 보고 건물 경비아저씨가 나왔다. 그 와중에 나는 의심을 걷어내기 위해 말을 한다. 나를 막아서면 안 되니까.
" 제가 다리를 다쳐서요. 흐흐" (그 와중에 잃지 않는 미소는 무엇)
겨우 들어간 화장실. 칸은 두 갠데 휴지가 없다. 휴지를 부탁할 핸드폰도 없다. 다시 나가서 휴지를 가져오기엔 내 괄약근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알았다. 그 상황에서 가장 현명한 판단은, 우선은 자리에 앉아서 괄약근을 놓아주고 누군가 이 화장실에 들어오길 기다리는 것이었다. 다행히 화장실은 두 칸이라, 다른 사람이 들어올 여지가 있고, 카페에 사람이 많았으니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
내 판단은 너무나 현명했음이 곧 밝혀졌다. 이내 누군가가 들어왔고, 나는 그에게 잠깐의 적응시간을 주고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죄송한데, 제가 휴지가 없는데,,,,"
그녀는 화장실 입구에 따로 휴지가 있다는 설명을 하며 조금 부족한 양의 휴지를 건넸다. 다시 더 달라고 하기에 너무 염치가 없나? (내가 설마 소변보면서 휴지를 요청했을 거라 생각했나 라고 의심할 정도로 조금만 건넸다)라는 번뇌에 휩싸인 그 순간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 괜찮아?"
최근 들어 남편 목소리가 그렇게 반가웠던 적이 있던가? 내게 부족한 휴지를 건네고 나가는 여성분이, 안에 아무도 없으니 잠시 들어가셔도 될 것 같다고 남편에게 말했고 충분한 양의 휴지를 다시 건네받았다. 넉넉한 휴지가 위안이 되는 순간이었다.
필사적으로 아픈 다리를 끌고서 비참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걸어가는 내내 생각했다. 아 이것이 처절한 상황이 아니고 무엇인가. 천변가에서 다치고 젖은 아픈 몸으로 똥을 참는 내 모습이라니. 똥을 바지에 싸지 않은 것이 그나마 나의 존엄성을 지켜낸 것이라고. 그 존엄성을 위하여 나는 얼마나 긴박하고, 비참했는지. 하필 꽃놀이 나온 인파가 참으로 많고 그들은 모두 싱그러운 웃음을 띄고 있는 그런 날이었다.
배변을 해결하고 카페 입구에 있는 의자에 겨우 앉았다. 헛웃음이 나왔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이냐 대체. 그리고 처음 이성이 찾아와 든 생각은 ' 내일 촬영 있는데 어쩌지.....' '애들 등하원은 어쩌지.'
내가 책임져야 할 일들이 가장 먼저 나를 치고 들어오기 마련이다.
아이들을 맡길 동생이 카페로 급히 택시를 타고 오고, 나와 남편은 다른 택시를 불러 응급실로 갔다
택시에 힘겹게 앉아서 또다시 헛웃음이 나온다. 세상에, 갑자기? 이렇게?
아, 아홉수였어 나. 29살에도 생전 넘어지지 않던 내가 회사 현관에서 난데없이 넘어져서 무릎을 제대로 박아서 며칠 고생한 적이 있지.
그런데 이번엔, 그것보다 조금 더 상황이 심각했다. 마흔 앞둔 아홉수라 더 혹독한가? 아홉수 때문이라고 나쁜 일을 넘겨주면, 잠시 이해가 되는 것 같은 이상한 논리 속에 잠시 빠져본다. 그러면 그래도 이상하게 맘이 편하다. 이런 일이 내게 안 일어날 거라고 방심하고 살았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응급실 앞에 도착해 대기하는 중에 이 다리로 촬영을 못할 것 을 직감했고, 연락을 언제 어떻게 드리는 것이 나은지 고민을 시작한다. 스케줄표가 있는 가방은 집에 있었다. 아이들을 대신 봐주고 있는 동생에게 스케줄을 사진 찍어 보내달라 요청한다. 받은 번호로 당장 내일 있는 손님께 문자를 보낸다.
그 문자에는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세 번쯤 들어간다. 나는 다쳐서 죄송하다. 죄송하다는 마음은 약속을 지키지 못해 발생하는 여러 번거로움을 알기 때문에, 우러나오는 말인데, 아픈 나는 내 죄송한 마음이 세 번 들어간 문자가 안쓰럽다. 아픈 것이 죄송한 상황이 되는 것이 속상하다. 언제 다시 괜찮아질지 물어도 의사들은 확실히 말해주지 않을 것도 알았다.(아니 의사들도 확신도 책임도 져주지 못하는 것을 알았다고 해야겠지) 나는 또다시 기로에 서게 될 것이었고, 편치 않을 것이었다. 다시 한번 헛웃음이 나온다.
'헛, 이렇게 갑자기?'
**to be continued
2편은 내게 의자를 건넨 모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