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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안 Apr 22. 2021

끝나지 않은 아홉수 -1

의사의 실수가 우리에게 가져온  일

다리가 다치고, 열흘 즈음 지났을 무렵이다. 나는 통증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고, 며칠에 걸쳐 일정을 미루고 겨우 정리를 끝내고 회복에만 집중하려고 편한 마음으로 진입하는 중이었다. 걱정하던 아이들 돌봄은 새로운 돌봄 선생님을 오전에 구하고, 나도 한 달이면 촬영이나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겠지 하면서 말이다. 


아빠는 두 달 전 어깨 수술을 하셨는데, 그날 통증이 계속되어 수술한 병원이 아닌 집 근처 병원에 들러 진찰을 보셨다. 그런데 엑스레이상 이상한 물체가 뚜렷이 보인다며, 의사는 수술 시 어깨에 들어간 것이 아닌가 하며 수술 병원에 가서 다시 수술 후 검사 결과들을 확인해보라고 했다. 


아빠가 보내온 엑스레이 사진을 보면서 사실, 처음엔 아빠가 장난을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아빠도 의사도 진지했고, 수술한 병원 의사는 당일에 수술로 인해 내일 진료가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래서 하루 동안 우리는 혹시나 의료사고일 가능성에 대해 대비하기 위해, 내일 수술 병원의 진료를 받기 전 변호사 지인과 의료인 지인들에게 연락해서 이런 일이 벌어질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의논했다. 그리고 우리 가족들은 새벽부터 잠이 깨서 각자의 걱정과 두려움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진료실에 들어갈 때, 녹음 버튼을 누르고, 진료 전에 미리 의무기록지와 시디 등을 복사하고, 가서 의사에게 어떻게 말할지 등에 대해 부모님께 설명했다. 나는 매일 가던 오분 거리 스튜디오도 출근하지 못하는 다리 상태라, 미처 부산에서 벌어지는 일에 직접 갈 수 없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오후 진료 시간이 다가올 때까지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얼마 후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수술한 의사는 이런 게 들어갈 리 없다고 했다며, 그 동네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다시 찍어보라고 해서 거길 가는 중이라고. 아무래도 이 의사가 발뺌을 하는 것 같다고. 그래 증거는 확실하니까 가서 다시 찍어보자.






그렇게 도착한 동네 병원에서, 혹시나 모른다며 웃통까지 벗고 엑스레이 촬영대에 눕는 아빠의 어깨에 그 엑스레이 기사는 베개를 들이민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의사는


" 아 안 찍어봐도 되겠네요. 베개 지퍼 구만!하하하 "


이라며 실소를 터트렸다고 했다. 웃어넘겼다는 의사의 태도를 전해 듣고 나는 너무 화가 났다. 24시간 동안 그 의사와 엑스레이 기사의 잘못된 행동과 진단으로 우리 가족은 얼마나 불안에 떨었던가. 웬만한 일로 항의를 하지 않고, 화를 내지도 않는 내가 그 병원에 항의 전화를 했다. 이게 웃어넘길 일이냐고. 그런데,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간호사와만 통화가 가능했고, 그녀는 내 화를 받아 마땅하지 않았다. 항의를 그 의사와 기사에게 전달해달라고 강력하게 말하는 것, 간호사님은 잘못하지 않은 일로 제가 이렇게 말하게 되어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것, 그것이 집안 침대에 누워 부모님을 대신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라니. 의료사고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말하고 넘기기에 우리에게 작지 않은 해프닝이었다.



그날 저녁, 아빠는 조금은 밝고 차분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 네가 대신 화를 내줘서 그나마 아빠가 속이 시원하다. 근데 의사는 코빼기도 안 보이고, 간호사가 사과하더라. 그래도 아빠는 아무 말 못 했는데, 니라도 말해줘서 다행 이디."


웬만한 일로 항의를 하지 않는, 웬만한 일은 그냥 손해보고 마는, 그게 우리 부모님이었다. 그러나 억울한 일을 당하는 남의 일에는 불같이 달려들어 해결해주려 하는 오지랖을 가진 두 분이었다. 정작 자신이 탄 롤러코스터는 의도치 않은 의사의 실수였는데, 의사는 실수를 웃어넘겼고, 그래 그냥 넘기자며 웃으며 나왔을 게 분명했다. 그 런 모습을 보지 않아도 생생하게 그려졌고, 나와 내 지인들이 머리 맡대 고민한 어제의 시간, 우리 가족이 새벽부터 걱정하고 놀랜 마음이 화가 났다. 쉽게 넘기고 싶지 않았지만, 참았다.




그리고 그날 밤 자정 무렵,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다짜고짜 아무 말 없이 운다. 

힘겹게 내뱉은 말 한마디

" 언니야.."



그 뒤 말을 도저히 꺼내지 못해 계속 울어댄다.


무슨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했지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서 답답했다. 


"왜! 울지 말고 어서 말해라!"


"아빠가 쓰러져서 119에 실려가서 지금 응급수술했단다. "


하루 동안 졸인 마음은, 아빠에게 사실 큰 스트레스였던 거다. 아빠는 급성심근경색으로 가슴을 부여잡고 엄마는 급히 119를 불렀다. 숨쉬기가 힘들다는 상태를 듣고, 혹여서 코로나는 아닐까 의심하여 응급실 다섯 군데에서 아빠를 거부했다고 한다. 그리고 집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병원에서 겨우 받아줘서 도착하자마자 스텐실을 두 군데 박았다고 했다. 정말 조금만 늦었어도, 위험했을거라고. 


"엄마는?"

" 엄마 병원에 있대. 아무래도 엄마가 우는 것 같아. 얼굴이 일그러지더라고."



아빠의 소식에 심장이 쿵하고 떨어지고

엄마가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 같았다는 말에

무너졌다. 




아빠가 쓰러지고, 엄마가 혼자 쓰러진 아빠를 수술실로 보내고서 응급실에 앉아있을 생각은 차마 자세히 상상할 수도 없었다. 한걸음에 달려가기에도 멀리 사는 딸이지만, 그마저도 다리를 다쳤고, 그 와중에 딸린 어린 자식이 둘이나 있어서, 정말 한걸음에 달려갈 수 없었다. 



이렇게 계속 살아나가도 되는 걸까?  모든 게 잘못된 건 아닌가, 근본적인 것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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