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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안 Apr 23. 2021

아홉수의 헛웃음 -2

고통을 알아보는 눈



사고가 나고 한 시간여 만에 응급실 앞에 도착했다. 코로나 때문에 응급실 앞에서 문진을 위해 사람들이 비정형적으로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어떤 순서로 입장하는지 명확히 구분되지 않은 채로, 안내해주는 사람도 없고 다들 우왕좌왕 그저 응급실 입구만 들여다보며 초조해하고 있었다.



의사를 만나면 이제 내 상태를 어느 정도 알려줄 테고 진통제도 처방해 주겠지 라며, 미묘한 안도감이 밀려왔는데 입장부터 쉽지 않았다. 오른발이 다친 나는 어딘가를 붙잡고 왼발에 의지한 채, 거기서 서성이는 사람들과 함께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다리는 걷지 않아도 계속 통증이 있었다. 서있으면 중력에 의한 압력이 더 고통스러웠다. 그런데, 마땅히 앉을 의자가 없었다. 휠체어를 가지러 갈 입구는 통제되어 있고, 도움을 요청할 사람들은 차례를 기다리라고만 했다. 그때 병원 벽면 쪽에 간이 의자에 앉아있던 모녀가 우리(나와 남편)을 부른다.


"이 의자 쓰세요!"


자신의 무릎 위에 중학생쯤 돼 보이는 딸아이를 앉혀놓고 있던 모녀는 내게 의자를 주겠다고 어정쩡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괜찮지 않았지만 괜찮다고 해야 할 것 같았다. 분명 저기도 아이가 아파서 온 것 같은데, 그냥 참을 때까지 참아보자는 요량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엄마는 내게 의자를 건넸고, 남편이 다가가 감사하다고 말하면서 의자를 받아왔다.



그때였다.

엄마 무릎에 앉아서 간간히 사람들을 구경하던 단발머리 딸은 바닥에 드러눕다가, 주차된  사이로 도망을 가려다가 붙잡은 엄마에게서 자꾸 빠져나가려고 했다. 엄마는 차분하게 아이를 제지하고 안아주려 했으나 아이는 그러면 그럴수록   필사적으로 엄마에게서 벗어나려고 했다.  옆에 있는 다른 아주머니가 도와주기 위해 같이 제지했으나 소리 없이 아이는  반항했다. 격력  몸싸움이 벌어졌으나 차분하게 타이르는 엄마의 목소리만 간산히 들릴  아이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러나 몸으로 비명을 지르는 것만 같았다.  남편은 여자아이라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몰라 당황해하고 있었고, 병원에서 나온 간호사와 경호원 등이 동원되어 어른 다섯 명이 겨우 아이를 침대에 눕혀 병원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아이는 의자가 자신의 의사를 묻지 않고 내게 넘어온 것이 싫었던 것은 아닐까?  마음을 표현하지 못해서 얌전히 기다리다 말고 온몸으로 말을 하고 있었던  아닐까. 아이의 엄마는 자신도 아픈 아이를 돌보느라 힘들 텐데 내게 의자를 굳이 내주었을까.  옆에 다른 남자가 아무렇지 않게 의자에 앉아있었는데도,  모른척 넘어가도 될 정도의 먼 거리에 있던 그녀가 내게 의자를 건넸을까. . ...



몸으로 비명을 지르는 것만 같은 아이를 바라만 봐야하는 나는   바를 몰랐다. 나는 다시 의자를 드리겠다고 하고, 아이 엄마는 아이를 온몸으로 제지하면서도 괜찮다고 말하며 딸아이를 붙잡았다. 그걸 지켜보면서도 아무것도   있는  없는 나는  그 소란을 바라보며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기다리는 많은 사람 중에, 각자의 응급 상황을 안고 응급실 앞에서 대기하는 많은 사람 중에,  다리의 고통을 알아채  그녀 그리고  아이에게 미안해서.  고통이 고통을 알아본다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필이면  그녀가 나를 알아본 걸까.



 

 눈물은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세상을 향해 흘렀다.  세상은 힘든 사람이 힘든 사람을 알아보고 도와주려다가 같이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져야만 하는지. 앉아서 의자를 누리고 있는  다리가 얼마나 염치가 없었는지 모른다. 아이에게 다가가서, 의자를  의사 없이 받아와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아이의 엄마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의자를 건네주어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었다. 그러나 우린 응급실 안에서도 다시 마주치지 못했다. 아이는 어디로  걸까.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들이 병원 안으로 급히 들어간 후, 우린 한참 뒤에나 병원 건물 내로 들어갈 수 있었다. 병원 밖에서 대기하면서 119 차량이 4대 즈음 들어왔다. 야구복 입은 남자는 다리를 다쳤는지 끊임없이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고, 머리에 붕대를 감고서 여기저기 피가 묻은 할머니도 있었다. 구급대원들의 움직임을 통해, 위급한 환자와 아닌 환자가 구분되었다. 119 구급차를 타고 온 환자들은 대기 없이 다른 입구를 통해 먼저 들어가곤 했다.




차례가 와서 문진을 받고 응급실 내에 입장했다. 접수하고 진찰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나처럼 휠체어를 타고서 보호자 없이 혼자 온 할아버지가 옆에 있었다. 직원이 어르신께 다가와 묻는다



" 어르신 보호자는 안 계세요?"

" 없어요."

" 그럼 혹시 결제는 가능하세요?"

" 네, 되죠. 카드 있어요."

" 그럼 9만 원 결제 먼저 도와드릴게요."



결제는 중요했다. 결제는 중요하다. 그런데, 결제가 가능하냐는 물음이 내게 물은 것도 아닌데 비수처럼 들렸다.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는 어르신에게 자꾸 신경이 쓰였다. 보호자는 없는데 휠체어를 타고 있는 그는 움직일 때마다 누군가 와서 도와줘야 했다. 환자들은 아파도 아프기만 할 수 없다. 아플만한 사람만이 아파야 하는 것처럼, 가끔 서글픈 장면들이 연출된다.  


원무과 앞에서도 젊은 직원과 나이 든 어른이 서로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


" 어르신, 성함 쓰시고 사인하세요."

"아니... 블라블라(잘 안 들림)"

"어르신, 우선 성함 쓰시고 사인하세요. 000 맞으시죠? "

"응 맞는데...."

" 그럼 000 쓰시고 사인하세요."


조금 느리고 불안한 노인의 목소리와 달리 빠르고 대찬 원무과 직원의 목소리는 너무나 상반되어 슬펐다.  그 대찬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고, 뭘 해야할지 이해하기 어렵고, 사인을 하는 기계는 낯설고, 이 상황들이 모두 당황스럽기만 한 와중에 판단력은 흐려진 노인은 그냥 노인이라서 민망하고 죄가 되어야 하는 걸까? 어딘가에서 누가 말하는 것만 같다.


 " 늙은 건 죄가 아니요. 자네도 늙어!"



 젊은 직원의 목소리가 응급실 내에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큰 목소리는 멀리 있는 내 마음도 불안하게 했다. 노인에게 달려가 도와주고 싶었다. 그걸 깨닫는 순간 또다시 나는 내 다리가 이 상태라는 사실이 다가왔다.



나는 갑자기, 고통 속에 휩싸여 고통들 속을 헤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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