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H

불가능이 그리움을 깊이 만든다

by 마안




인도 라다크의 한 마을 레(LEH)에 도착할 때 나는 몽롱한 상태였다. 1박 2일 동안 덜덜거리는 지프차를 여러 명이서 타고서 돌이 무수히 박힌 험한 길을 덜컹덜컹 대며 도착해 고산병과 멀미를 동시에 앓고 있었다. 건조한 그 땅이 조용하게 그곳에 있었다.



레로 가는 길 . 2004.09

론리플래닛에 나와있는 숙소 (몇 군데 기록되어 있지도 않았다) 중 한 군데를 골라 일행과 함께 걸었다. 중심가(중심가라기엔 너무 작은 시내였지만)에서 조금 거리가 있는 돌집이었다. 진하게 생긴 인도 사람들과 달리, 오히려 우리와 닮은 라다크인 노부부가 맞아주었다.


2층 방까지 열몇 개 되는 계단을 배낭을 메고 올라가는 것만으로 그날의 체력을 모두 소진했다. 그대로 침대에 누워 고산병약을 먹고 뻗었다. 어지럽고 숨이 가프고 울렁거렸다.


한참을 자고 일어나니 창밖이 푸른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저녁이었다. 주인 할아버지는 뜨거운 물을 한동이 가져다주었다. 그 물로 간단히 샤워를 하고 다시 누웠다. 샤워를 하는 것도 겨우겨우, 산소가 공기중에 부족하면 사람이 이렇게 느려지는 구나를 몸소 체험했다.


얼마 후 숙소에서 준비해 주는 저녁(물론 미리 신청함)을 먹으러 내려갔다. 동그랗게 둘러앉아 라다크 빵과 꿀, 버터를 발라먹고 차이와 과일, 카레 등을 함께 나눠 먹었다. 그 빵은 방금 반죽한 걸 화덕에 구워 바로 내 준 빵이었다. 세상에 너무 맛있었다. 맛있는 걸 느끼는 걸 보니 좀 기운이 난 걸까. 그 빵을 먹고 기운이 난 건지 조금 적응했다고 괜찮아진 건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빵이 너무 맛있었다.


그날 저녁엔 옥상에서 일행 중 나보다 9살 많은 언니에게 담배를 배웠다. 고산병엔 마리화나가 도움이 된다는데(믿을 수 있는 이야기 인지 잘 모름) 마리화나를 하려면 담배를 피울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담배 냄새가 싫지 않았던 나는 언젠가 담배를 배워보리라 생각했었다. 그게 인도의 레에서 배우게 될 줄을 몰랐지만.


[한번 흡입하고 후 뱉어봐]


한번 해보고 겁내지 말고 편하게 흡입하고 다시 뱉어보란 말에 두 번째 시도에 완전히 터득했다. 몸이 나른해졌다. 그리고 이내 조금 더 어지러웠다. 뇌에 가는 산소량이 극히 줄어들면서 뇌 작동이 오류가 나는 것 같은 느낌처럼.


그날 이후 나는 간간이 담배를 피웠고, 사람들이 왜 담배를 피우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내 숨으로 들어온 연기를 내뱉을 때 그 긴 호흡으로 어디선가 모르게 항상 붙어 다니는 불안이 잠시 숨을 타고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그 잠깐의 안도감이라는 것이 내뱉는 연기에 붙어있었다. 그것을 놓지 못해 사람들은 계속해서 담배를 찾나 보다 했다.


산티스투파에서


다음 날, 멀미는 씻은 듯이 나았고, 고산증이 아직 남아있어서 숨이 자주 차올랐지만 걸어 다닐만했다. 그래서 천천히 시내 구경을 나섰다. 가는 길엔 사람보다 동물들을 더 많이 만났다. 당나귀도 만나고 소와 개 고양이도 모두 사람들이 산책하듯 머물듯 길에 있었다. 그곳은 가을이었고 겨울이 오기 전 따뜻한 날들의 끝자락이었다. 수분이라고는 없는 길 위의 흙들이 바람이 불거나 신발로 헛디디면 뿌옇게 날렸다. 햇살은 더없이 순수하게 대지에 내려앉았고, 소란한 소리조차 바스락거리며 사라지는 것 같았다. 모두가 조용하고 순수했다.


산책은 오랜 시간 지속하기 힘들었다. 모두 많이 움직일수록 체력이 금방 소진되는 걸 느꼈다. 곧 다시 돌아와 숙소에서 쉬고 또 숙소에서 노부부가 만들어준 저녁을 먹었다.

이틀째 숙소 뒤편에 있는 산티스투파에 올랐다. 그곳에서는 작은 레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높은 건물이라고는 없는 동네에 건물보다 더 높은 것은 나무뿐이었고 그 나무들도 잎이 넓지 않은 침엽수들이었는데 평소 보지 못한 모습의 나무들이 즐비해서 일까. 위에서 내려다본 레는 마치 그림 같았다. 그곳에서 나는 승려 비키를 만났다.


오른쪽에서 두번째 붉은 옷이 비키, 산책길, Leh

비키는 라다크인이라 하기엔 검은 피부와 깊은 눈, 진하고 긴 속눈썹을 하고 있었다. 16살인 그는 자줏빛 승려복을 입고서,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질문을 퍼부었다. 그는 내게 "풀 문(full moon)"이라고 부르며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우리 일행의 일정에 동행했다. 내가 레를 떠나 네팔에 가고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까지 계속 메일을 주고받았다. 계속되는 사랑고백과 언제 다시 레에 올 거냐는 반복되는 질문에 어느 순간부터 나는 답변을 하지 않았고, 그렇게 우리는 연락이 끊겼다. 얼마 전 사라진 싸이월드 때문에, 거기 올려두었던 비키의 사진도 함께 사라졌다. 그런데 사진처럼 내 머릿속에 16살의 승려 비키가 그대로 그려진다.


가끔 무척 건조하고 소박한 그곳이 그립다. 숙소에서 꿀 발라 먹던 따뜻한 라다크 빵과 산티 스투파, 당나귀와 비키, 빨래를 널던 옥상과 낡은 의자가 생각난다. 다시 그곳에 가게 된다면, 레에 가고 싶어 하던 친구와 함께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날이 오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기에 그리움이 더 깊다.


지나가다 들른 이름 모를 사원에서 만난 가족


작가의 이전글구름이 스쳐가는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