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세상이 무너졌다
어느 날, 세상이 무너졌다
변호사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무너진 세상을 안고 옵니다.
김수진(가명) 씨도 그랬습니다.
십수 년을 함께한 남편이 다른 여자를 만나왔고, 그 여자와의 사이에 아이까지 있었습니다. 견고한 성처럼 믿었던 일상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었습니다.
배신감에 잠 못 이루던 밤들을 견디다, 그녀는 결국 이 지옥 같은 관계를 끝내기로 결심했습니다.
수진 씨의 목표는 명확했습니다.
첫 번째, 남편과 이혼하고 재산을 분할받아 새로운 삶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
두 번째, 가정을 송두리째 흔든 그 여자에게 법의 이름으로 책임을 묻는 것.
우리는 두 개의 전선에서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남편을 상대로 한 이혼 소송, 상간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수진 씨는 상간녀에게 7,000만 원을 청구했습니다.
증거는 명백했습니다.
'유부남인 줄 몰랐다'는 항변은 우리가 확보한 증거들 앞에서 힘을 잃었습니다. 법원도 그녀의 책임을 분명히 인정했습니다.
이제 남은 건 '얼마를 받을 것인가'의 문제였습니다.
"수진 씨,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법은 배우자와 상간자를 '공동불법행위자'로 봅니다. 한 팀으로 잘못을 저질렀으니, 함께 책임을 진다는 의미입니다.
만약 남편이 이혼 과정에서 아파트 같은 상당한 재산을 넘겨주며 잘못을 배상한다면, 법원은 상간녀가 져야 할 책임의 크기를 조정합니다.
이미 충분한 보상을 받았는데, 다른 사람에게까지 과도한 배상을 물리는 건 '이중 배상'이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수진 씨가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남편한테서 더 많이 받으면, 그 여자한테서는 덜 받을 수도 있다는 말씀이시죠?"
"네, 그렇습니다."
수진 씨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상간녀에게서 몇천만 원을 더 받아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살아갈 안정적인 보금자리를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지키고 싶은 건 아이들과의 추억이 깃든 집이에요. 그 여자한테 받을 돈보다 아이들이 계속 그 집에서 살 수 있는 게 더 중요해요."
우리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남편과의 소송에서 아파트 소유권을 온전히 이전받는 데 집중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상간 소송을 마무리 짓기로 했습니다.
예상대로였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상간녀의 책임을 분명히 인정했습니다. 동시에, 수진 씨가 남편으로부터 아파트 소유권을 이전받아 정신적 고통을 상당 부분 위자(慰藉)받았다는 점을 중요하게 참작했습니다.
상간녀가 지급해야 할 위자료는 3000만 원으로 결정됐습니다.
누군가는 물을 수도 있습니다.
"7,000만 원 청구해서 3000만 원 받았으면 진 거 아닌가요?"
법의 저울은 단순하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수진 씨는 가장 중요한 것을 지켜냈습니다. 아이들과의 삶의 터전. 그리고 법원으로부터 상간녀의 잘못을 명명백백하게 확인받고, 금전적 배상까지 이끌어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설계했던 '진정한 승리'였습니다.
변호사로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이처럼 의뢰인의 무너진 세상 속에서 법이라는 도구를 통해 새로운 삶의 주춧돌을 놓아줄 때입니다.
법은 때로 차갑고 복잡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 본질은 결국 한 사람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엉망이 된 관계들을 정리하여 새로운 시작을 가능하게 하는 데 있습니다.
오늘도 수진 씨는 아이들과 함께 그 집에서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고 있을 겁니다.
상처가 완전히 아물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녀는 이제 법의 보호 아래 단단한 땅을 딛고 자신의 삶을 다시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변호사인 저에게는 충분히 의미 있는 싸움이었습니다.
법은 무너진 세상을 다시 세우는 도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