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은 정말 사라진 걸까

이미 팔아버린 아파트를 되찾은 이야기

by 전희정


등기부를 들여다보는 의뢰인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변호사님, 이거... 이미 다른 사람 명의잖아요. 끝난 거 아닌가요?"

그분의 목소리에는 체념이 섞여 있었다. 몇 년 전 지인에게 빌려준 돈. 믿었던 사람이었다. 독촉도 미안해서 미루고 미루다가, 이제야 법적 조치를 생각했는데, 지인의 유일한 재산인 아파트는 이미 다른 사람 이름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나는 그렇게 답했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는 그 집을 다시 찾아왔다.


뭔가 이상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부동산 매매였다. 계약서도 있었고, 등기도 깔끔하게 넘어가 있었다. 채무자는 "정상적으로 팔았는데요?"라고 했고, 새 소유자는 "저는 정당하게 샀어요"라고 했다.

하지만 서류를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니, 뭔가 맞지 않는 퍼즐 조각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매매 날짜. 그날은 공교롭게도 채무자가 독촉 전화를 가장 많이 받던 시기였다. 소송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오가기 시작하던 바로 그 무렵.

매수인. 알고 보니 채무자와 꽤 가까운 사이였다.

그리고 매매대금. 계좌 내역을 추적해보니, 돈이 오간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그 흐름이 어딘가 어색했다. 마치 누군가 급하게 꾸며놓은 무대 같은 느낌.

"이건 진짜 매매가 아니에요."

의뢰인에게 그렇게 말했을 때, 그분의 눈빛이 조금 살아났다.


법은 때로 타임머신이 된다


사해행위 취소. 조금 딱딱한 법률 용어지만, 본질은 단순하다.

빚진 사람이 재산을 몰래 빼돌려서 채권자가 아무것도 못 건드리게 만들 때, 법원이 그 거래 자체를 되돌려버릴 수 있다는 것. 마치 시간을 되감듯이.

물론 아무 거래나 되돌릴 수는 없다. 법원은 까다롭게 따진다.

채무자가 그때 이미 빚이 재산보다 많은 상태였는지. 그 거래가 채권자에게 실질적인 손해를 끼쳤는지. 그리고 재산을 받은 사람도 이 모든 사정을 알면서 받은 건 아닌지.

이번 사건은 모든 조건이 맞아떨어졌다.

아파트는 채무자의 거의 유일한 재산이었다. 이걸 빼면 남는 게 없었다. 그리고 매수인은 채무자의 상황을 충분히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가까운 사이였으니까. 소송 얘기가 돌고 있다는 것도 들었을 거고.

우리는 하나씩 증거를 쌓아갔다. 등기부, 계약서, 통장 내역, 카톡 대화. 작은 조각들을 맞추다 보니 하나의 그림이 완성됐다.


"이것은 채권자를 피하기 위한 각본이었습니다."


판사는 우리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법정에서 판사는 꽤 오랫동안 서류를 들여다봤다.

그리고 마침내 판결이 나왔다.


"매매 당시 채무자는 채무초과 상태였고, 이 부동산은 채권자가 집행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재산이었다. 이를 제3자에게 넘긴 행위는 채권자를 해하는 사해행위다."


"매수인 역시 이러한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으므로, 악의의 수익자로 본다."


판결문의 결론은 짧고 명확했다.

매매계약 취소. 등기 말소. 소유권 원상회복.

이미 남의 이름으로 넘어갔던 그 아파트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이 진짜 끝은 아니다


의뢰인은 판결문을 받아들고 한참을 말이 없었다.

"정말... 다시 찾을 수 있을 줄 몰랐어요."

나는 이런 말을 종종 듣는다. "이미 팔렸는데요", "등기가 넘어갔는데요", "이제 늦은 거 아닌가요."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법이라는 건 때로 우리가 포기했던 것들을 다시 데려오는 힘이 있다고. 물론 모든 경우에 가능한 건 아니지만, 최소한 시도해볼 수는 있다고.

누군가 재산을 빼돌리는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가족이나 친구 명의로 넘기고, 서류상으로는 정상 매매인 것처럼 꾸민다. 겉보기엔 합법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법은 껍데기가 아니라 속을 본다. 거래의 진짜 의도를, 그 이면의 맥락을.



당신의 이야기도 끝나지 않았을 수 있다


혹시 지금 이런 상황에 놓여 있나요?


-믿고 빌려준 돈을 못 받는데, 상대방이 슬쩍 집을 팔아버린 것 같다.

-이혼을 준비하는데 배우자가 재산을 급하게 처분한 것 같다. 등기를 떼보니 이미 명의가 바뀌어 있어서, "아, 이제 늦었구나" 하고 주저앉아 있다.


아직 포기하기엔 이르다.


등기부, 계약서, 통장 내역, 카톡 메시지. 작은 흔적들이 모여서 진실을 말해줄 때가 있다. 매매 시점, 매수인과의 관계, 돈의 흐름. 이런 것들을 차분히 들여다보면, 길이 보일 수 있다.

법은 완벽하지 않지만, 적어도 정의를 향한 방향성은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방향성을 따라가다 보면,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되찾는 순간이 온다.

오늘 이야기한 사건처럼.

이미 사라진 줄만 알았던 그 집이, 다시 돌아온 것처럼.

당신의 이야기도 아직 끝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법률사무소 희승 | 전희정 변호사

승리를 위한 여정을 함께하는 변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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