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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ndabadger Sep 24. 2021

서울사람들 2

서울 사람들을 지칭해서 ‘서울깍쟁이’라는 말을 듣고 자라서 그런지, 서울 사람이라면 왠지 쌀쌀맞고 정이 없을 것 같은 고정관념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서울에서 지방으로 내려오는 사람들이 너무 적어서 모두가 그러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하필 내가 지금까지 만났던 서울 출신들은 어딘지 모르게 좀 냉정한 분위기를 풍겼던 것도 사실이라, 나조차도 서울 사람들에 대해 약간의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퇴사를 하고 서울로 상경할 마음을 먹었을 때에도, 마침 인간관계에도 질려있던 터라 한동안 사람과 부딪히는 일은 없겠구나 싶어서 내심 좋았다. 정 없는 서울 사람들이 특별히 나에게 관심을 가져줄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서울에 아는 사람도 없이 혼자 뚝 떨어져 있으니,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도,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다. 가끔 내 얼굴에서 복을 찾은 사이비 신자들만 나에게 말을 붙일 뿐이었다.


약속이라도   오직 자기 삶에충실해 보이는 서울의 분위기는 나를 완벽한 타인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테니, 퇴직금으로 넉넉하게 채워진 잔고를 믿고 돈을 펑펑 쓰고 돌아다녀도 괜찮다고 말을 거는  같았다. 마치, ‘나는 전설이다에서 백화점을 혼자 거니는  스미스가  느낌이랄까. 돈만 있으면 한국이 제일 살기 좋다더니, 그중에 최고봉은 서울이었다. 전국 팔도에 맛집이 많다지만, 웬만한 맛집은  서울에 몰려있고, 전시, 공연  모두  서울에 있다. 하다못해 돈만 있으면 새벽에 먹고 싶은 것을 받아먹을 수도 있었는데, 거제에서는 꿈도  꾸던 대도시의 서비스였으니, 그런 호강을  번도 누려보지 못했던 나에게, 서울은 별천지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그런 점에서 돈이 없는 사람에게 서울 살이만큼 각박한 것도 없는  같아 보였다. 여행지같이 느껴졌지만, 나는 서울에 놀러   아니고  사람이었다. 퇴직금은 여행경비로는 차고 넘치지만,   동안의 생활비로는 한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돈을 주고   있는 편리함과 즐거움 중에 나에게 필요한 것만 영리하게 취하지 않으면 내가 가진 돈으로는 살아남을  없는 곳이 서울이었다.


물건이나 서비스를 이용할 때만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과 섞여있을 때도, 내 것을 먼저 찾을 줄 알아야 했다. 서울의 모든 거리는 번화해서 지방에 있는 ‘시내’같은 개념은 없었다. 서울의 북쪽 끝에 있는 우리 동네도 늘 사람들로 붐볐고, 그 사람들은 카페를 좋아했다. 그래서 집 앞 카페에서 글을 쓰거나 할 때에는 남들보다 먼저 콘센트를 사용할 수 있는 자리를 잡거나, 다른 누군가가 일어나길 기다렸다가 재빨리 자리를 잡아야 할 때가 많았다. 출, 퇴근 시간에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되면, 다른 사람을 밀쳐내고라도 내 목적을 이루어야 했다. 타거나 내리거나, 다른 사람이 눌리는 고통은 잠시 잊어야 할 때가 많았다. 서울 사람들은 매일을 수강신청하는 것 같이 살구나 싶었고, 이러니 깍쟁이가 될 수밖에 없겠구나 하고 내 멋대로 생각했다. 그러니까 나는 서울에 올라와서도 서울 사람을 깍쟁이라고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오랜 고정관념이 깨진 건, 내가 고독함을 지겨워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일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나는 고독을 지겨워하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번다지만, 어쩔 수 없이 스트레스와 고민이 생겼다. 회사를 다녔다면 동기들과 이야기를 하며 풀었겠지만, 완전히 혼자되고 나서는 풀 방법이 없었다. 운동으로라도 풀어보려고 혼자 하천을 뛰었지만, 고독하긴 마찬가지였다.


우연히 당근마켓을 보다가 내가 뛰는 코스로 함께 달리기하는 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날 바로 그 모임에 가입했다. 그때부터 나는 진짜 서울 사람들과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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