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람들을 지칭해서 ‘서울깍쟁이’라는 말을 듣고 자라서 그런지, 서울 사람이라면 왠지 쌀쌀맞고 정이 없을 것 같은 고정관념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서울에서 지방으로 내려오는 사람들이 너무 적어서 모두가 그러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하필 내가 지금까지 만났던 서울 출신들은 어딘지 모르게 좀 냉정한 분위기를 풍겼던 것도 사실이라, 나조차도 서울 사람들에 대해 약간의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퇴사를 하고 서울로 상경할 마음을 먹었을 때에도, 마침 인간관계에도 질려있던 터라 한동안 사람과 부딪히는 일은 없겠구나 싶어서 내심 좋았다. 정 없는 서울 사람들이 특별히 나에게 관심을 가져줄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서울에 아는 사람도 없이 혼자 뚝 떨어져 있으니,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도,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다. 가끔 내 얼굴에서 복을 찾은 사이비 신자들만 나에게 말을 붙일 뿐이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오직 자기 삶에’만’ 충실해 보이는 서울의 분위기는 나를 완벽한 타인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테니, 퇴직금으로 넉넉하게 채워진 잔고를 믿고 돈을 펑펑 쓰고 돌아다녀도 괜찮다고 말을 거는 것 같았다. 마치, ‘나는 전설이다’에서 백화점을 혼자 거니는 윌 스미스가 된 느낌이랄까. 돈만 있으면 한국이 제일 살기 좋다더니, 그중에 최고봉은 서울이었다. 전국 팔도에 맛집이 많다지만, 웬만한 맛집은 다 서울에 몰려있고, 전시, 공연 등 모두 다 서울에 있다. 하다못해 돈만 있으면 새벽에 먹고 싶은 것을 받아먹을 수도 있었는데, 거제에서는 꿈도 못 꾸던 대도시의 서비스였으니, 그런 호강을 한 번도 누려보지 못했던 나에게, 서울은 별천지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그런 점에서 돈이 없는 사람에게 서울 살이만큼 각박한 것도 없는 것 같아 보였다. 여행지같이 느껴졌지만, 나는 서울에 놀러 온 게 아니고 살 사람이었다. 퇴직금은 여행경비로는 차고 넘치지만, 몇 달 동안의 생활비로는 한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편리함과 즐거움 중에 나에게 필요한 것만 영리하게 취하지 않으면 내가 가진 돈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 서울이었다.
물건이나 서비스를 이용할 때만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과 섞여있을 때도, 내 것을 먼저 찾을 줄 알아야 했다. 서울의 모든 거리는 번화해서 지방에 있는 ‘시내’같은 개념은 없었다. 서울의 북쪽 끝에 있는 우리 동네도 늘 사람들로 붐볐고, 그 사람들은 카페를 좋아했다. 그래서 집 앞 카페에서 글을 쓰거나 할 때에는 남들보다 먼저 콘센트를 사용할 수 있는 자리를 잡거나, 다른 누군가가 일어나길 기다렸다가 재빨리 자리를 잡아야 할 때가 많았다. 출, 퇴근 시간에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되면, 다른 사람을 밀쳐내고라도 내 목적을 이루어야 했다. 타거나 내리거나, 다른 사람이 눌리는 고통은 잠시 잊어야 할 때가 많았다. 서울 사람들은 매일을 수강신청하는 것 같이 살구나 싶었고, 이러니 깍쟁이가 될 수밖에 없겠구나 하고 내 멋대로 생각했다. 그러니까 나는 서울에 올라와서도 서울 사람을 깍쟁이라고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오랜 고정관념이 깨진 건, 내가 고독함을 지겨워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일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나는 고독을 지겨워하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번다지만, 어쩔 수 없이 스트레스와 고민이 생겼다. 회사를 다녔다면 동기들과 이야기를 하며 풀었겠지만, 완전히 혼자되고 나서는 풀 방법이 없었다. 운동으로라도 풀어보려고 혼자 하천을 뛰었지만, 고독하긴 마찬가지였다.
우연히 당근마켓을 보다가 내가 뛰는 코스로 함께 달리기하는 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날 바로 그 모임에 가입했다. 그때부터 나는 진짜 서울 사람들과 만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