쥘 베른 <지구에서 달까지>, <달나라 탐험>
우연히 읽은 아이슬란드가 나오는 잡지 기사에 쥘 베른의 <지구속 탐험> 에 대한 언급이 나왔다. <지구속 탐험>에서 땅 속으로 여행하는 시작점이 아이슬랜드였던 것이다.
그때 갑자기 동해서 사 본 <지구속 탐험>이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어서, 같은 시리즈로 된 <지구에서 달까지De la Terre, a la Lune>와 <달나라 탐험Autour de la Lune>도 사 버렸다. 초딩때(사실은 국딩이었다) 읽은 '미래의 과학과 21세기 어쩌고' 하는 책들에서도 나오지 않았던가. '대포알을 타고 달나라로 가는 얘기를 쓴 쥘 베른, 로켓 쏴서 실제로 사람을 달에 보내기 전까지는 사람들은 이런 상상을 했다' 라고.
그 대포알 타고 달나라 가는 얘기가! 바로 이거였다. 초딩때 우리반 교실에 있던 문고판에는 <해저 2만리>와 <지구속 탐험> <15소년 표류기>는 있었어도 <지구에서 달까지>는 없었기 때문에, 대포알 타고 달나라 가는 상상도만 본 이후 거의 20년 만에 원조 소설을 읽게 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허황하지만 재미있어요' 이다. 얘기도 재밌지만, 중간중간에 작가가 톡 하고 쏘며 빈정거려 주는 그 방식이 너무 마음에 든다. 읽다 보면 저절로 낄낄거리게 되니 사회생활을 하시는 분들이라면 집 안에서만 읽기를 추천한다.
유럽의 웬만한 과학자들 이름은 아는 대로 다 줏어삼키는 바람에 각주를 제대로 보지 않으면 누가 김서방이고 누가 이서방인지 알수 없는 부분이 좀 있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웬만한 유명 인사 이름은 대충 다 알고 있어야 이놈이 뭔놈의 소릴 시부렁거리는지 알수 있다. 하지만 주인공들이 너무 무대뽀로 한 점의 두려움도 없이, 한달쯤 어디 외국여행 다녀오듯 달나라에 가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이미 21세기의 사람인 나는 '그래, 너네 어디까지 하나 보자' 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읽어나갔다.
진짜 이사람들 웃기네. 지름 3미터짜리 대포알을 타고 다신 돌아올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달 여행을 하는데 무슨 10평짜리 원룸 콘도로 여행온 사람들처럼 밥해먹고, 포카치고, 술 마시고, 토론하고, 게다가 다시 지구로 돌아가는 건 그때 가서 생각하는 이런 무대뽀라니...(못 온다는 생각 자체를 안한다)
대포알을 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들도 참으로 기똥찼다. 자신감에 넘치는 지구인들의 대담하고도 세심한 준비과정이 책에 아주 오랫동안 설명되어 있다. 일단 포탄은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다.
알루미늄을 보면 외계인들은 우리 지구인을 대단하게 생각할 겁니다!
하고 대포 클럽의 회원 모 씨는 외친다. 아, 정말 귀엽지 않니?
달이 1년에 한번꼴로 천정이나 근지점 근처에 올 때마다 우리 친구들이 식량을 가득 실은 포탄을 우리에게 보내줄 수 없을까? 우리는 정해진 날 포탄이 도착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으면 돼요.
(아 왜, 신문도 넣어달라구 하지 그래)
"멋진 계획이에요! 우리는 결코 당신들을 잊지 않을 겁니다!"
이쯤 되면 주인공 아저씨가 달나라로 여행가는 걸 낙도에 놀러가는 것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수 있다.
이래서 안된다, 저래서 안된다라는 이론적인 반박은 무대뽀 아저씨들 몇명과 그들을 따르는 군중들에 의해 씨알도 안 먹히고, 자신들의 발전된 기술로 불가능한 일이 없다고 굳게 믿는 사람들은 마구마구 외친다.
지구를 불편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은 자전축이 공전 궤도에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다는 겁니다.(...) 우리 지구는 감기와 폐렴과 결핵의 행성이지만, 자전축이 거의 기울어지지 않은 목성의 표면에 사는 생명체는 항상 일정한 온도를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 지구는 도대체 뭐가 부족해서 그런 완벽함에 도달하지 못할까요? 아주 사소한 원인 때문입니다. 공전 궤도에 대한 자전축의 기울기가 조금만 줄어들면 됩니다!
그렇다면...우리가 힘을 모아 기계를 발명해서 지구의 자전축을 바로 세웁시다!
(우레와 같은 박수)
이정도쯤 되면, 자신도 같이 박수를 치고 있게 된다.
중위도 외의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될지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다는 점에서 무식한 서방인들의 자기중심주의적인 사상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아 좀 기분은 나쁘지만 옛날 사람들이 다 그랬으려니 생각하고 넘어간다면...
지금 나(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실 이런 무대뽀! 정신일지도 모른다. 모든 발전의 근원은 이런 허황된 생각을 코웃음치지 않고 진지하게 받아들인 몇몇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무엇을 망설이는가. 우리는 할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