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발톱] 9. 용의 분노, 그리고 졸업 (完)

이 모든 것은 매르윈 선생님 덕분이다

by 마봉

“잠깐 싸움 그만두고 여기 좀 보시지?”하고 제일 험상궂게 생긴 리카치카가 말했다. 저 녀석들, 인간들을 위협하지 말라던 용 선생님의 충고도 잊고… 리카치카의 눈을 보니 타오르는 분노로 어둠이 내려오는 숲 그늘에서도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얘네들은 또 뭐냐!” 매르윈 선생님이 외쳤다.


“용이다.” 목소리가 제일 굵은 올카푸카가 용의 발톱들이 든 자루를 선생님들 앞에 쿵 하고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 발톱들의 주인이시다.”


마지막 말은 안 해도 좋았을 텐데.


그러나 원체 용들의 덩치가 육중하고 위압감을 주었으므로 어차피 상관없었다. 용들의 고대어를 못 알아듣는 급식 담당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고, 매르윈 선생님과 다른 선생님들은 눈이 휘둥그래져서 세 용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설마… 용인가요? 전설에 나오는 용…!”


“오, 실물은 처음 봅니다! 역사책 삽화하고 똑같네요!” 고대사 선생님은 겁도 없이 용들에게 손을 내밀어 만져 보려고 했다.


“릴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니? 어디서 이런 무서운 것들을 데리고 온 거냐?” 매르윈 선생님이 나에게 재차 물었다. 이 말은 용들의 고귀한 자존심과 매르윈 선생님을 사랑의 천사쯤으로 상상하고 있던 그들의 순진한 마음에 포탄과도 같은 상처를 주었다. 성질이 드러운 샤카루카가 입에서 불을 뿜었다. 매르윈 선생님은 끽 소리도 못하고 교장 관사 지붕이 홀라당 타서 내려앉는 것을 지켜보았다.


“안돼 샤카루카!” 나는 용에게 매달리며 말렸다. “용 선생님이 불 뿜지 말라고 하셨잖아!”


“릴카, 넌 속은 거야!” 리카치카가 소리쳤다. “네가 말한 매르윈 선생님은 게로스 왕자님을 사모해서 행복을 빌며 떠난 순정의 화신이었잖아! 그런데 지금 보니 저 분은 네가 좋아하는 리오란 선생님을 자기가 가로채려고 널 위험한 곳으로 보낸 거였어! 넌 속았어!”


매르윈 선생님의 얼굴도 리오란 선생님의 얼굴만큼 빨개져 있었다. 다른 선생님들이 불타는 교장 관사의 불을 끄기 위해 자기가 아는 마법을 모두 퍼부어대고 있는 가운데, 매르윈 선생님의 절절한 외침 소리가 교사관 안마당에 울려퍼졌다.


“그래, 돌아가야겠다!”


나는 물론 선생님들도 모두 깜짝 놀라 매르윈 선생님을 돌아보았다. 매르윈 선생님은 대마법사의 지팡이(지팡이 끝에 칼베르 왕실 문장이 새겨져 있는 것을 나는 그때서야 알아보았다)를 한 손에 단단히 쥐고 남쪽 하늘을 바라보셨다.


“마법 회당에서 가장 뛰어났던 내가, 그분을 섬기는 일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오다니, 내가 어리석었다.”하고 선생님은 중얼거렸다. “그분이 누구와 같이 살든, 그분을 보좌해 드리는 것이 내 평생의 임무인 것을…”


“흐흐흑, 매르윈 선생니임!” 울면서 이렇게 외친 것은 올카푸카였다. “제가 선생님을 칼베르까지 모셔다 드리겠어요!”


“아니야, 내가!” 리카치카가 외쳤다.


“나는 그럼 이삿짐을!” 방금 자신이 선생님의 집에 불을 뿜은 사실도 잊고 샤카루카가 외쳤다.


매르윈 선생님은 한번 결정하면 미루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사랑과 꿈을 찾아 멀리까지 온 세 마리 용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 속에 매르윈 선생님은 즉시 칼베르로 떠날 준비를 했다. 선생님들이 “아니 교장선생님, 그럼 학교는 어쩌시고요?”라고 물었지만, 매르윈 선생님은 국수를 세 그릇째 드시고 있던 ‘바람 마법’ 선생님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학교 좀 대신 맡아서 운영해 줘요.”


‘바람 마법’ 선생님은 국물을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국물이 맛있다는 뜻인지 학교를 잘 운영하겠다는 뜻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용들은 매르윈 선생님과 인사를 하고 곧이어 다른 선생님들과도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도망쳤던 급식 담당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다시 돌아와 꺼져 가던 모닥불을 다시 지폈다. 음식과 고기, 그리고 아까는 보이지 않던 포도주가 교사관 안마당으로 계속 날라져 왔다. 매르윈 선생님은 존경받는 대마법사였으므로 떠나는 것을 다들 아쉬워했지만, 모두들 선생님의 결심을 존중하며 칼베르에서의 새로운 출발을 축복했다.


나만 빼고, 모두 그렇게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나는 허탈함에 잠겨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또 한 명, 옆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리오란 선생님도…


안마당의 잔치 광경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고 있는 나의 어깨에 리오란 선생님의 따뜻한 손이 와서 얹혔다.


“릴카,”하고 선생님이 불렀다. “쓸데없는 짓을 했군요.”


“죄송해요 선생님!” 나는 눈물을 왈칵 쏟으며 말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을 것 같아서 그랬어요!”


“불쌍한 릴카.” 리오란 선생님이 말했다. “용들도 마음대로 거느리는 릴카가 그런 걸 직접 말할 용기도 없었단 말인가요?”


나는 그제서야 용기를 내어 선생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저는… 묘약을 만들려고… 깡총날치송어 말린 것과 무지개비늘 목도리도마뱀 눈물도 구해왔어요. 봉숭아물 들인 용의 발톱도…”


선생님은 안타깝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셨다. 나는 주섬주섬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저는 송어 양식도 하고… 초원에서 노래도 하고… 봉숭아도 재배했어요… 산도 오르고… 절벽도 타고…”


“저런, 정말 고생했군요. 그래서 거의 일년 동안 학교도 안 나오고 멀리 떠나 있었던 거였군요. 졸업은 어떻게 할 건가요?”


역시 리오란 선생님은 선생님이었다. 부끄럽지만 선생님의 말은 모두 맞는 말이었다. 나는 지금 내 친구들보다 1년이나 늦게 졸업을 할 지경에 처해 있었다. 게다가 그동안 고생해서 모아온 재료들은 사람들의 잔칫상 재료로 쓰이고 있었다. 이렇게 절망적인 결과가 또 있을까?


그러나 리오란 선생님은 친절하고 상냥한 분이셨다. 선생님은 이렇게도 말씀하셨다.


“그동안 놓친 공부는 내가 봐줄 테니 일단 밀린 공부를 따라가는 데 집중하는 게 어떨까요? 그러다 보면, 묘약도 혼자서 만들 수 있게 될 거예요.”


그 약 선생님한테 쓰려던 건데요, 하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다정하게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일단 졸업부터 하고 나머지는 다시 얘기하도록 해요.”


선생님의 왕자님 미소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다시 보게 되다니,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운이 넘치는 사람이다. 나는 이제 공부의 신이 될 것이다. 아침부터 밤까지, 밤에서 아침까지 공부만 할 것이다. 나는 이제 졸업만이 목표다. 친구들보다 1년 늦어졌지만, 따라잡을 수 있다. 리오란 선생님이 공부를 도와주신다고 하셨으니, 이제 나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잘 시간 따위 필요없다. 잠은 죽어서 자면 된다. 오로지 공부만이 내 갈 길이다.


용들은 귀중한 체험을 하고 드라코피요르드로 돌아갔다. 매르윈 선생님은 칼베르까지 데려다 주겠다는 용들의 제안을 한사코 사양하고 배를 타고 칼베르로 가셨다. 그리고 들리는 소문에는 파렌베르크의 마법 회당에서 수석 마법사로 일하고 계신다고 했다. 칼베르의 현재 왕은 다른 분이지만 매르윈 선생님에게는 상관없는 듯했다. 그분과 같은 땅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매르윈 선생님은 아마 행복하게 지내고 계실 거라고 믿는다.


나는 밤낮으로 공부해서 친구들을 따라잡아 그들과 같은 해에, 그것도 일등으로 졸업을 했다. 친구들도 선생님들도 그리고 글림스홀름의 우리 부모님도 모두 깜짝 놀랐다. 사람들은 내가 거의 일년 동안이나 어디 있는지도 모르면서도 나를 신뢰해서 찾지 않으신 우리 부모님에게 거듭 대단하다고 칭송했다. 졸업식에 오신 우리 부모님은 딱 한 마디 하셨다.


“우리는 항상 릴카를 믿었죠.”


봉숭아물을 들인 용의 발톱은 스무 개씩 이어 붙여서 커다란 방패를 만들었다. 이 방패는 나와 리오란 선생님의 결혼식에서 질투로 눈이 먼 학생들과 졸업생들이 꽃 대신 던진 돌을 막아주는 훌륭한 방어 도구가 되었다. 그리고 양이 충분해서 그때까지도 남아 있던 말린 깡총날치송어와 무지개비늘 목도리도마뱀의 눈물은 다시 한번 잔치에 쓰였다.


드라코피요르드에 있는 나의 용 친구들은 모든 기념일마다 매르윈 선생님에게 편지를 보내고 있다. 그들은 절벽에 매르윈 선생님의 모습을 새기는 중이다. 이제 드라코피요르드 근처를 지나는 모든 배들은 매르윈 선생님의 모습을 멀리서도 볼수 있게 될 것이다.


나 역시 매해 결혼기념일이 되면 칼베르에 계시는 매르윈 선생님께 편지를 보낼 생각이다. 이 모든 것은 매르윈 선생님이 안 계셨으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가져오라고 하신 재료들은 하나도 버릴 것이 없었고 모두 유용했다. 역시 선생님은 대마법사고 앞을 내다볼 줄 아는 분이시다. 나는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항상, 선생님께 감사하며 살아갈 것이다.


말린 깡총날치송어 (Torkad Hoppfisköring)

재료 출처: 스칼하븐 동남쪽 코코하임 섬. 강한 꼬리지느러미로 수면 위를 뛰어오르며 이동하는 특이한 습성을 가짐.

처리 방법: 잡은 뒤 내장을 깨끗이 제거하고 소금에 절여 햇볕과 바람에 최소 3주 이상 건조. 바짝 말리면 딱딱한 나무 조각처럼 굳음.

맛과 향: 국물에 넣으면 시원하고 담백한 풍미가 배어나와 속을 풀어주는 효과. 씹으면 고소한 감칠맛이 오래 남는다.

요리 활용: 피스크누들라르(Fisknudlar)의 기본 육수 재료. 기름에 살짝 구워 안주로 먹기도 함.

기타: “두 번 날아오른다 — 물 위에서, 그리고 냄비 속에서”라는 속담이 있을 만큼 사랑받는 재료.

◆Illustrations by Mabon de Forêt (AI-assisted)


그동안 '용의 발톱'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완결 후기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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