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져 돌진하는 소녀 이야기
안녕하세요.
브런치북 『라를르 연대기』의 두번째 단편을 완결했습니다.
『폭풍의 염소』 쓰기 시작할 때만 해도 '여긴 다들 에세이만 쓰고 소설도 내용은 꽤 진지하던데 이런 병맛글 올려도 누가 읽어나 줄까?'하고 며칠 망설였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실제로 상당히 오랫동안 품앗이 라이킷만 올라가고 아무도 안 읽긴 했습니다. 사람도 아니고 염소가 주인공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브런치 장르소설 중에서도 판타지는 진짜 씨가 말라서 그런지, 정통 판타지는커녕 로판(솔직히 양산형 로판 극혐합니다 - 이미 돈 써가며 꽤 많이 읽은 다음에 이런 말 하니까 웃기네요. 하지만 충분히 많이 읽었기에 당당히 싫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도 안 올라오는 브런치에서 혼자서 개그 판타지를 추구하는 것은 마치 프랑스에 요리 배우러 유학 가서 간짜장만 죽어라 연구하는 것 같은 헛짓거리이긴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버틴 건 아마도 다른 데 가기도 귀찮아서일지도 모르겠네요(딱히 갈 데도 없기도 하고...). 이제 진짜로 읽는 사람도 생기고 댓글도 달리는거 보면 감개무량합니다.
이 단편(총 3만자 정도라 단편에 속함)은 젊었을때(이렇게 말하니 매우 늙은 것 같지만, 어쨌든 젊진 않음) 모 PC 통신의 SF/판타지/무협 창작게시판에 한번 올렸던 것입니다. 물론 주인공 이름도 달라지고 배경이 되는 나라 이름 등 지명도 다 바뀌었죠. 당시에는 지금의 라를르 세계관(내가 말하고도 너무 거창하다)이 만들어지기 전이라 그렇습니다.
왜 제목이 용의 발톱인가? - 저는 집에서 당시에 연재중이던 본편 소설 쓰다가 머리가 아파서 딴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거실에 TV가 켜져 있었는데 사극 『용의 눈물』 재방송을 해주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 갑자기 머릿속에 『용의 발톱』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너무 뜬금없죠?
심심해서 아무렇게나 갈겨 본 소설이라 결말을 어떻게 할지 생각도 안 하고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후루룩 썼습니다. 뇌를 비웠더니 생각보다 순식간에 쓰이더라고요. 당시에는 뭔놈의 자신감인지 워드나 한글 혹은 텍스트에 먼저 작성하고 올리는게 아니라 그냥 연재 게시판에 들어가서 그자리에서 바로 써서 올리고 그랬어요. 그러니 진짜로 100% 즉석 창작물입니다.
뇌를 너무 비우고 썼더니 올해 초에 본편 다 뜯어 리메이크 하면서 라를르 세계관과 안 맞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스토리는 그대로 둔 상태에서 디테일을 많이 고쳐야 했습니다. 예를 들면 초고에서는 릴카가 오스틴에 갔을 때 도마뱀을 잡으려고 총을 쏘고, 용들을 처음 만났을 때도 석궁을 들이미는 게 아니라 박격포(!)를 들이대죠. 그러다가 본편 뜯어 고치면서 세계관 설정을 16-17세기 유럽(사거리 짧고 명중률 떨어지는 초기 버전의 대포 사용, 상용화된 총 없음)을 모델로 삼았더니 릴카에서도 박격포도 총도 다 빼야 했습니다.
무기에 대한 지식도 없을 뿐더러 전투장면 따위 당연히 써본 적 없고 심지어 대련 장면까지 들어가다 보니(릴카 말고 본편 얘기임) 아주 난감하더라고요. 지금 네이버에서 웹소설 연재중인 친척(역덕+밀덕)을 찾아가서 조언을 구했는데 정말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SF 세계관은 고도로 과학이 발달한 미래라는 점에서 설정 잡기 어려운 반면, 유럽풍 판타지는 대부분 중세-근대 유럽 모델로 세계관을 잡기 때문에 역사에 무지한 저 같은 사람은 본편 리메이크 하면서 모든 것을 다 찾아보면서 설정을 다시 잡아야만 했습니다. 대충 잡고 '마법으로 모두 쌉가능'으로 퉁쳐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텐데, 저 자신이 디테일 집착러라 판타지적 허용을 감안하면서도 모델이 되는 시대와 지역의 언어, 거리, 시간, 식생, 계절 등 온갖 것들을 다 계산하면서 쓰다 보니 정말 지치더군요. 다행히 2025년에는 챗순이가 있어서 그런 것들은 챗순이 도움을 받아 많이 해결했습니다. 직접 구글링하면서 했다면 설정 잡다 지쳐서 아마 소설 때려 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다른 분들 소설 읽으면서 진짜 쥐똥만한 디테일까지 보는 건 제가 물론 그 작품을 좋아해서이기도 하지만, 원래 성격이 그렇습니다(일상생활에선 둔탱이임).
아무튼 『용의 발톱』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서, 저는 이걸 다시 쓰면서 기분이 엄청 좋았습니다. 일단 죽는 사람도 없고 슬픈 일도 없고(릴카는 좀 고생하지만) 말 그대로 꿈과 희망과 사랑이 넘치고 스칼하븐 사람도 오스틴 사람도 인간도 용도 모두모두 사이좋게 지내는 소설이다 보니, 복잡하고 지치는 현실에서 도피하는 것 같고 좋더라고요.
초고 쓸 당시에 엔딩도 안 정해놓고 아무렇게나 갈기다 보니 어디로 튈지 알 수도 없었지만 다 쓰고 나니 해피엔딩이 되었죠(지금은 그런 식으로 쓰진 않습니다). 이번에 고쳐 써서 브런치에 올리면서도, 물론 브런치에서 판타지는 마이너 중에서도 상 마이너라 올리는 수고가 아깝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반응이 적긴 하지만, 쓰는 과정 자체가 매우 행복했습니다. 무대뽀에 직진, 사랑 하나 바라보고 달려가는 소녀 얘기라니 너무 즐겁잖아요.
'선생님을 향한 사랑'도 한물 간 소재라 요샌 잘 안 나오는데, 저는 여중+여고러라 어색함 없이 그냥 진격할 수 있었습니다. 여중 여고때는 젊은 남선생님이 진짜 멋있어 보이잖아요. 지금 돌이켜 보면ㅡ 세상천지 주변에 남자가 아무리 없어도 그런 인간들을(아오, 학생들이 멋지다 멋지다 하니까 지들이 진짜 괜찮은줄 아는... 확 패고 싶다)... 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리오란 선생님은 세계관 최강미남을 닮은 멋진 남자니까 릴카는 행복하게 살 겁니다.
그럼 지난번 『폭풍의 염소』에서 한 것처럼, 배경과 인물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 비에르달: 하브론 마법 여학교가 있는 지역
● 글림스홀름: 릴카네 본가가 있는 지역
● 코코하임: 깡총날치송어 서식지
● 드라코피요르드: 용 서식지
● 브리엘가르트: 스칼하븐의 수도. 릴카가 오스틴과 드라코피요르드 갈 때 배 타는 곳
● 오스틴, 대평원: 무지개비늘 목도리도마뱀 서식지 (※나바라크종 염소랑 프라툰카 족이 사는 거기 맞음)
● 칼베르, 파렌베르크: 매르윈 선생님이 유학한 곳(※루와얄 염소들의 고향 맞음)
직업: 하브론 마법 여학교 학생
출신지: 글림스홀름. 부모님이 대 농장주에 지주라 부자임. 릴카의 미친 실행력의 배경은 다 이 집안의 자금력 덕분
성격: 무모, 저돌, 직진, 열정, 한번 빠지면 눈에 뵈는 게 없음
특징: 사람 말을 끝까지 안 들음
직업: 하브론 마법 여학교 고대 알티스어 교사(마법사는 아니고 언어만 가르침)
출신지: 마르스비크(소설에선 언급된 적 없음)
성격: 잘생김(잘생긴게 성격임)
특징: 매르윈 선생님 피셜 "게로스 왕자님 닮음"
직업: 하브론 마법 여학교 교장. 칼베르 마법학교 유학파 엘리트인 대마법사
출신지: 비에르달(하브론 학교가 있는 곳이 고향임)
성격: 은근 순정파
특징: 얼빠
릴카 부모님(자식을 너무 믿다 보니 일년동안 연락 두절되도 안 찾는...)
학교 친구들, 선생님들, 급식 담당 아저씨 아주머니들
칼베르 전 국왕 게로스(매르윈 선생님의 회상 속에서만 등장하지만 실은 본편 남주. 실제로는 매르윈 선생님하고 말 세 마디도 안 섞어봤음)
코코하임 섬 어부들과 주민들
에이번홀트(오스틴의 수도) 왕립 야생동물 연구소 연구원
프라툰카 족
에이번홀트 예술학교 성악과 학생들
우트카르트 호 선장
마야 스쿠그(매르윈 선생님과 게로스 임금님 동인지 써서 돌린 학생)
닭들(?)
깡총날치송어
무지개비늘 목도리도마뱀
용(리카치카, 샤카루카, 올카푸카, 선생님 용, 용 장로 등)
『용의 발톱』의 배경 시대는 솔라(오스틴)/솔르(스칼하븐)력 4004년으로써, 『폭풍의 염소』보다 10년 후의 이야기입니다. (먼저 알아봐 주신 밍당 작가님, 감사합니다)
그래서 『폭풍의 염소』끝에 주인공들이 곧 전쟁이 난다, 징집을 한다, 같은 얘기들을 하는데, 『용의 발톱』에서는 전쟁도 내란도 이미 다 끝난 다음입니다.
이 연도별 사건 발생도 엑셀파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흑흑. 디테일 집착러의 삶은 힘듭니다...
브런치북 한개당 30화까지만 올릴 수 있어서, 라를르 연대기 1권은 여기에서 마무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2권은 언제 쓸지 모르겠습니다(올릴 거 이제 없음).
릴카와 함께 달려 주신 분들께,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Illustrations by Mabon de Forêt(AI-assis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