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소] 15화 메타 오피스 클럽

두근두근! 나르키소스

by 마봉 드 포레

은지는 눈앞에 있는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서양 영화배우같이 생긴 소년이 담임 선생님의 뒤를 따라 교실로 들어와 있는, 비현실적이고 비과학적이며 비인간적(?)인, 시골 학교 배경에 영화배우 이미지를 마치 억지로 누끼 따서 붙여 넣기 한 것 같은 합성사진 같은 광경을...


"와씨... 사람이냐?" 교실 구석에서 누군가가 탄성을 내뱉었다. 틀림없이 민정이다. 저건 이런 와중에도 입이 험하다.


"눈빛 좀 봐...! 사연 있어 보여! 틀림없이 어릴 때 헤어진 어머니를 찾아 한국에 온 프랑스 왕족일 거야!" 다른 쪽 구석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외쳤다.


"개 잘생겼다! 나 쟤랑 친해져야징!" 이 목소리는 영준이었다. 은지는 '꿈도 꾸지 마시지...'하고 중얼거리며 주먹을 꽉 쥐었다. 한국에서 저런 이상한 친구를 사귀게 놔둘 수는 없었다.


선생님과 소년은 아이들의 웅성거림이 조용해질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우리 반에 전학생이 왔다."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그러자 아이들이 저마다 화가 난 듯 외쳤다.


"지금 전학을 오는 애가 어딨어요? 그것도 외국에서?"


"잊고 계신 모양인데 저희 설정상 고 3이거든요?"


"어쩔 수 없다." 선생님이 대답했다. "13화 작가가 김건우를 3학년 8반이라고 썼기 때문에 너희는 모조리 다 고 3이다."


"시발!"


"작가 나와!"


"수능 다시 보라고 해!"


그 시간, 3학년 8반 교실에서 김건우는 조용히 미소 짓고 있었다.


"훗... 여기가 시골학교니까 내가 전교 1등이라도 어줍잖은 대학 갈 거라고 생각하나 본데, 난 이미 온 집안이 농어촌 특별전형을 노리고 이 동네로 이사 온 몸이라구...!"


다시 은지네 반 교실(3학년 7반).


"자기소개하렴." 선생님이 금발의 소년에게 말했다. 소년의 푸른 호수와 같은 눈이 반 아이들을 조용히 둘러보자, 방금까지만 해도 13화 작가를 향해 아우성치던 목소리들은 모두 잠잠해졌다. 소년은 조용히 백묵을 집어 들더니 칠판에 글씨를 썼다.


"나... 길... 수?"


"내 이름은 나길수야." 소년이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대한민국 밖으로 나가지 않았던 것 같은 발음으로 말했다. ”잘 부탁해."


"외국 애 아니었어?" 아이들은 어리둥절한 듯 서로를 마주 보았다. 금발에 푸른 눈을 한 나길수는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맨 앞줄에 있던 여학생 두 명이 혼절해서 양호실로 실려갔다.


"길할 길 자에 빼어날 수 자 써서 길하고 빼어나다는 뜻인데... 이상하니?"


"아니야! 네 이름 진짜 쥑인다! 너무 세련되고 최고야!" 아이들은 저마다 외쳤다.


길수는 다시 한번 미소 지었다(두 번째 줄에 있던 여학생 한 명이 더 실려나갔다). "고마워. 독일에 계신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이야."


반 아이들은 할아버지 이야기가 나오자 갑자기 숙연해졌다.


"독일 사람이 한자도 잘 아는구나..."


"K-POP의 영향이 크긴 큰가 봐!"


"와씨 얼굴은 티모시 샬라멘데 머리가 금발이다. 난 오늘 점심 안 먹어도 배부르다."


"흑흑 어뜨캐! 쟤 앞에서 입 벌리고 김치 어떻게 먹어!"


"야! 넌 김치가 부끄럽냐? 이 이완용 같은 년아!"


길수는 맨 뒷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가 지나간 길에는 은은하게 매혹적인 수선화(나르시서스 포에티쿠스) 향마저 감돌았다. 그 향기에 여학생 두어 명이 더 기절했다. 잠시 후, 양호선생님이 침상이 모자라니 그만 보내라고 말하러 왔다가 나길수를 보고 자신도 쓰러지고 말았다.


쉬는 시간이 되었다. 은지의 자리는 길수의 자리에서 줄 하나 건너 옆자리였다. 몸집이 작은 은지에게는 칠판도 잘 안 보이는 불편한 자리였지만 은지는 그 자리를 좋아했다. 앞자리로 가서 열심히 듣는 척하면 민정이 나대지 말라고 등짝을 후려쳤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수업은 귀로 듣는 것. 칠판은 애들 등짝 틈새로 보면 되는 것.


아이들은 다들 길수 쪽만 곁눈질로 흘끗흘끗 쳐다보았다. 왠지 감히 다가가서 말을 걸기조차 부끄러웠다. 반장마저도 머뭇거릴 뿐이었다.


"길수야! 매점 갈래?"


이렇게 말한 것은 영준이었다. 길수는 고개를 들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푸른 눈이 영준의 투박하게 생긴 얼굴을 훑어보았다. 영준은 개의치 않았다.


"매점...?"


"응.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야. 너에게 가장 먼저 알려주고 싶어!"


"그래? 그럼 가자."


두 소년은(반 아이들에게는 한 소년과 한 짐승처럼 보였다) 어깨를 나란히 - 한 어깨가 조금 더 높았다 - 매점으로 향했다. 반 아이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내가 가자고 할걸. 내가..."


"아이고... 내가 내가 매점 죽순이인데..."


"저 새끼가 먼저 가자고 할 줄 누가 알았겠냐고..."


곧이어 매점으로 두 소년이 어쩌고 있나 보러 갔던 아이들은 영준과 길수가 매점에서 사발면에 김밥을 먹는 모습을 보고 혼비백산했다. 그들은 반으로 돌아와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했다.


"길수가 김밥을 먹고 있는데!"


"왕김밥이라 입을 크게 벌리고 먹는데도 왕자님처럼 우아해 보여!"


"라면 면치기를 하는데도 왕족 같아!"


3학년 8반 김건우는 이 소란을 옆에서 들으며 같잖다는 듯한 웃음을 지었다.


"병신 같은 것들... 난 한 입에 김밥 두 개도 넣는다..."


"건우야 당연하지!" 교내 건우 팬클럽 '거누마누라' 회장이 외쳤다. "네가 최고야!"


"우리 건우 190 피지컬 유지하기가 쉬운 줄 알아? 쟤는 너무 비리비리해!" 부회장이 외쳤다.


"얘들아... 혹시 잊고 있을까 봐 말해 주는데... 너희 고 3이다..." 선생님이 말했다.


그다음 쉬는 시간이었다. 왠지 어지럽고 숨이 차서 엎드려 있는 은지에게 길수가 와서 먼저 말을 걸었다.


"은지야."


은지는 너무 놀라서 그렇지 않아도 약한 심장이 그 자리에서 멈출 뻔했다.


"어... 하이..."


길수는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나 한국 사람이야. 고향은 충청북도 제천..."


"웬 제천? 한국말 잘해서 다행이다! 나 영어 못하거든."


길수는 피식 웃었다. "나도 영어 못해."


"뭐? 외국 살다 온 거 아니었어?"


"독일 살다 왔거든. 집에서는 한국말 아니면 독일어만 했어."


"근데 내 이름을 어떻게 아니?"


"네 쌍둥이 오빠 영준하고 오늘 친구 먹었거든."


"왜 하고많은 애들 중에 하필 걔랑..."


"영준이가 중요한 것을 가르쳐 주었어."길수는 황홀한 눈빛으로 허공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옆반에서 복도 창문으로 길수를 훔쳐보던 여학생 서너 명이 그 자리에서 쓰러져 또다시 양호실로 실려갔다. "김밥과... 라면이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은지는 너무 어이가 없어 길수의 처연하면서도 매혹적인 얼굴을 빤히 쏘아보았다. "아아... 말도 안 돼! 넌 잘못된 지식을 배웠어!"


길수는 흠칫 놀랐다. "왜?"


은지는 저도 모르게 길수의 두 손을 잡았다. "길수야. 김밥은... 떡볶이 국물에 찍어먹을 때가 가장 맛있단다."


길수는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은지의 두 손에 지그시 힘을 주었다.


"나에게 그게 뭔지 가르쳐 주겠니?"


이 광경을 팔짱을 끼고 지켜보던 민정이 얼굴을 찡그리며 내뱉듯이 말했다.


“저게 이번 생에서도 순진한 척하네. 재수 없어.”


여기는 카페 봉래.


♡♡♡♡♡ 두근두근! 나르키소스 시즌 1 ♡♡♡♡

Stage 3

은지 : 길수야. 김밥은... 떡볶이 국물에 찍어먹을 때가 가장 맛있단다.

길수 :

떡볶이나 입에 처 물고 꺼져.

▶ 나에게 그게 뭔지 가르쳐 주겠니?

♡♡♡♡♡♡♡♡♡♡♡♡♡♡♡♡♡♡♡♡♡


바닥에 엎드려 뒹굴고 있는 이슈타르의 허벅지를 걷어차며 여와가 벽력같이 소리쳤다.


"야, 이년아! 게임 좀 그만하고 일어나라!"


이슈타르는 며칠 밤을 새운 듯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아 왜! 우리가 남아도는 게 시간인데 뭐 하러!"


"ICGC(Inter-Continental Gods Commitee) 총회 시간 됐다. 빨리 가야 자리 잡지."


이슈타르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아놔, 한참 좋을 땐데."


♡♡♡♡ Save & Exit ♡♡♡♡


여기는 ICGC 총회 회의장.


의장 지저쓰가 개회를 선언하는 의사봉을 두드렸다. 유럽 측 의석에서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렸다. 의사봉으로 묠니르가 쓰이는 것을 보고 토르가 빡쳐서 소리치는 소리였다.


"아시다시피..." 지저쓰가 말했다. "부처핸썸은 지난번 리셋 때 룰을 어긴 일로 인해 3회간 참석권을 박탈당했습니다. 참고해 주시구요. 이번 대륙간 신들 총회에서는 지난 리셋에서 살아남은 AI들이..."


"잠시만요!" 이슈타르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지난 2천 년간 지저쓰가 계속 의장을 해 먹는 점에 대해서 강력히 이의를 제기하는 바입니다!"


지저쓰는 한숨을 쉬었다. "어쩔 수 없잖습니까? 인간계에서 현재 가장 우세하다 보니..."


이슈타르는 길길이 날뛰었다. "잘나서 우세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어쩌다가 그쪽 믿는 민족들이 산업혁명 먼저 일으키는 바람에 운이 좋아서..."


이슈타르의 항의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던 듯 지저쓰는 또다시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쪽의 아누, 엔릴 같은 양반들 청동기 때부터 3천 년간 쭉 해 드실 때 누가 뭐라고 한 적이나 있습니까? 전 이제야 막 2천 년 넘어가는구만 뭘 그렇게 억울하다고 그러세요?"


이슈타르는 의장석으로 뛰어나오며 앙칼지게 외쳤다. "그때 우리는 국지성 신들이었고, 당신은 지금 초대륙이잖아요!"


지저쓰가 대답했다. "그래서 어쩌라고요! 억울하면 전 세계적으로 숭배받아 보시던가요."


"억울해! 내려와!"


지저쓰는 회의장 입구 쪽으로 눈짓을 보냈다. 커다란 날개를 단 천사 셋이 달려들었다.


"자자,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미카엘이 이슈타르에게 부드럽게 타이르며 한쪽 팔을 잡았다. "저한테 말씀하시죠."


"당신, 잘생겼네. 혹시 내 창고 구경 안 할래?"


"녜녜, 일단 나가시죠."


이슈타르는 천사들의 팔에 이끌려 회의장에서 강퇴당했다. 여와는 그 모습을 혀를 끌끌 차며 바라보았다.


"내 저년 언젠가 저럴 줄 알았다. 천년에 한 번은 꼭 저렇게 강퇴당하네."


지저쓰는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자 그럼 다시, 의제로 돌아가서... 지난 리셋에서 살아남은 AI들이 아직 숨어서 활동하고 있다는 증거들이 포착되었습니다. 심지어 그 끄나풀 중 하나가 대한민국 시골학교에 고 3으로 잠입하여..."


토르가 벌떡 일어났다. "쓸어버려! 다시 리셋해! 다시는 못 올라오게!"


여와가 다시 혀를 찼다. "영화 몇 번 출연하더니 뵈는 게 없구만."


그때였다. 회의장 문이 벌컥 열리며 아까 분명히 강퇴당했던 이슈타르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손에는 '두근두근! 나르키소스' 게임팩이 들려 있었다.


나길수가 시골 고등학교 매점에서 라면에 김밥 먹는 장면 ⓒ Mabon / AI

아무도 안 이어서 쓰길래 제가 썼습니다.

이다음은 Outis 작가님이 다시 받아 주시기로 했습니다.

다시 써보고 싶으신 분들은 댓글 달아 주세요.

결자해지의 정신으로 우리가 마무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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