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총이 5. 콩알이

애매한 행성의 생물들

by 마봉

로렌츠 대장이 가지고 온 데이터는 처음에는 희망적으로 보였다. 지하에 빙결수 층이 있다는 것은 이 행성이 보이는 것보다 수분이 많다는 것이니 대기와 중력 문제는 돔형 거주지를 지어서 해결한다면 어떻게든 인간이 정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로렌츠 대장은 고개를 저었다.


“암반이라 뚫을 수가 없어. 게다가 꺼낼 만큼 모여 있지도 않아.”


“무른 지대가 어딘가 있지 않을까요?”


“시추를 하려다가 도저히 할 만한 곳을 찾지 못하고 왔어.”


“혹시 모르죠. 행성 표면을 샅샅이 찾다 보면…”


하지만 우리가 궤도를 몇 주나 돌면서 스캔한 바로는 이 행성에 흙이라고 할 만한 것은 바위 틈에 이끼가 자라게 할 정도로 소량의 철분이 섞인 흙뿐이었다.


“여긴 이래저래 모두 다 애매한 곳이군요.” 미겔이 말했다. “대기도, 식물도, 물도, 있는데 없느니만 못하게 애매해요. 엔셀라두스가 차라리 낫네요.”


“그래도 화성보단 좋아.” 노아가 말했다. “지구랑 가깝다는 것 말고는 화성은 장점이 하나도 없거든.”


우리는 그가 화성의 장점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처음 들었기 때문에 어리둥절했다.


로렌츠 대장은 TEA에 보낼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보고서에 첨부하도록 기압과 대기질 변화 측정 결과를 대장의 코드에 송신했다. 타이엔도 이끼와 지의류와 관목류 조사한 결과를 모아서 보냈다. 특별한 기대를 하고 온 행성은 아니었지만, 다들 표정이 어두웠다. 엘리시움 근처 다른 항성계에서도 별볼일 없는 탐사지는 여러 개 있었지만 아르카스처럼 애매하게 희망을 주다가 실망시킨 곳은 없었던 것이다.


밤이 되었다. 나는 앞으로 며칠이나 더 있을지 알 수 없어 아르카스의 밤 풍경이나 더 봐 두기 위해 방한 슈트를 입고 밖으로 나갔다. 체력단련실에서는 노아와 마그달레나가 저중력으로 떨어진 근력을 보충한다며 이 시간까지 운동을 하고 있었다. 로렌츠 대장과 미겔은 각자 방에서 자는 것 같았다.


타이엔은 밖에 나와 있었다. 그는 불을 밝힌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눈부신 밤하늘 밑에 서서 바위 위를 팔짝팔짝 뛰어다니는 깡총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타이엔, 깡총이들 밥 주려고?”


그는 대답 대신 자기 발 밑을 가리켰다. 새끼 깡총이가 그의 발 밑에 와 있었다. 그때 부화한 그 새끼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내 눈에는 다 똑같이 생겼지만 타이엔은 알아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콩알이가 돌아왔어요.” 타이엔이 말했다.


“너 깡총이한테 이름도 붙여줬냐?”


“어쩌다 보니까…” 그가 말을 흐렸다.


“곧 떠날 것 같은데 외계 생물한테 너무 정 주지 마.”


“걱정 마세요.”


“태어나자마자 주먹만 한데 무슨 콩알이냐.”


타이엔은 ‘콩알이’를 손바닥 위에 얹어 자기 얼굴 근처까지 들어올렸다. 콩알이는 큰 눈알을 도록도록 굴리며 자기가 태어나자마자 먹이를 준 바위 덩어리를 바라보았다. 깡총이들은 부모 자식 간의 유대는커녕 개체 간의 유대도 없는데 하물며 먹이 좀 줬다고 재롱을 부릴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타이엔의 콩알이는 분명히 그를 알아보고 다시 돌아와 겁도 없이 외계에서 온 큰 바위 옆에 찰싹 붙어 있었다. 아마도 그 바위가 먹을 것도 주고, 따뜻해서였겠지만.


“얘 이제 도약도 제법 해요. 이끼도 자기가 알아서 잘 긁어먹어요. 근데 제가 나오니까 저를 알아보고 다가왔어요.”


“얘가 그때 그 놈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봤어? 내 눈엔 다 똑같이 생겼는데.”


“다른 깡총이들은 다 저를 봐도 무시하는데, 얘만 저한테 왔으니까요.”


“그냥 호기심이 많은 다른 개체일 수도 있잖아.”


“그때 걔 맞아요.” 타이엔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나는 그의 손바닥에 얹힌 깡총이 새끼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확실치는 않지만 내 눈에도 콩알이가 맞는 것 같았다.


“우린 좀 있음 돌아갈 것 같단다, 콩알아.” 타이엔은 자기 집의 토끼나 말, 라마에게 말하듯이 콩알이에게 이렇게 말하며 이끼 가루를 콩알이 주둥이 근처에 들이밀었다. 콩알이는 익숙한 듯이 가루를 순식간에 빨아먹었다.


“자꾸 먹이 주지 마, 타이엔.”


“네, 알아요.”


타이엔은 콩알이의 말랑말랑한 발바닥을 한번 만지더니 다시 땅에 내려놓았다. 콩알이는 타이엔의 따뜻한 손바닥이 아쉬운 듯 잠시 머뭇거리더니 짧게 도약해서 어디론가 가버렸다. 연속 도약은 아직 못했다. 도약하고 멈추고, 눈알 한번 굴리고, 도약하고 멈추고, 눈알 한번 굴리면서 콩알이는 아르카스의 별빛 아래로 사라져 갔다.



TEA가 로렌츠 대장의 최종 보고서를 분석하는 동안 우리는 이미 설치해 놓은 측정 센서나 좀 들여다보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 그 외에는 기지 내에서 운동을 하거나 지구에서 인기 많은 TV 프로그램을 다시 돌려보며 시간을 보냈다.


타이엔과 노아와 나는 저고도용 셔틀을 타고 아르카스에서 가장 고도가 높은 언덕으로 가서 나름대로의 소풍을 즐겼다. 가장 고도가 높은 언덕이라 해봐야 8미터였다. 화성 출신인 노아는 이 언덕을 어마어마하게 제2 올림포스 산이라고 이름 붙였다.


제2 올림포스 산에서 바라보는 아르카스의 풍경은 온통 회백색과 회녹색이었다. 암반은 철 산화로 곳곳이 붉었지만 화성처럼 선명한 빨강이 아니라 말라붙고 바랜 적갈색이었다. 이끼와 지의류는 얼룩처럼 흩어져 있었고 살아 있다기 보다는 붙어있는 흔적 같았다.


항성인 적색 왜성이 낮게 걸려 있는 하늘도 역시 연한 회백색으로 맑지도 탁하지도 않게 얇게 덮여 있었다. 바람도 없고, 공기가 없으니 소리도 거의 없어 들리는 것은 각자의 숨소리뿐이었다. 그림자는 길어졌지만, 지형이 아니라 표면의 거칠기만 강조할 뿐이었다.


어딜 보아도 숨을 곳이 없는 행성. 광장공포증이 없는 나도 약간은 아찔한 기분이 들 정도니 미겔은 아마 바로 쓰러졌을 것임에 틀림없었다.


궤도를 돌면서 봤을 땐 산화된 바위 얼룩이나 바위 틈과 구분이 되지 않아 있는 줄도 몰랐던 깡총이들은 이제 풍경과 하나가 된 채 그들의 항성을 바라보며 조금이라도 온기를 더 품으려고 꼼짝도 않고 서서 햇빛을 쬐고 있었다. 커다란 눈알을 도로록 도로록 굴리면서, 우리를 바라보지만 그다지 겁내하지는 않으며.


노아는 제2 올림포스 산 위에 우뚝 서서 두 팔을 벌렸다.


“나는 이 행성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다!” 그가 헬멧 안에서 외쳤다.


그의 모습이 너무 우스꽝스러워 모두 크게 웃었다. 아마도 몇 천 년, 몇 만 년 전에는 아르카스도 이렇게 납작한 별은 아니었을 것이다. 몇 억 년 전에는 화산활동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이 행성에서 뭔가 활발한 활동을 하는 것은 깡총이들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지각도, 바람도, 물도, 식물도, 모두 정지된 듯 멈춰 있었다. 그 위를 뛰어다니는 빨간 막대기 같은 깡총이들만이 이 행성의 유일한 움직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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