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총이 4. 새끼 깡총이

먹이를 주지 마시오

by 마봉

기지로 돌아오니 펜스 근처에 모여 있는 깡총이들을 마그달레나가 쫓아버리려고 하고 있었다. 로렌츠 대장이 나와서 그녀를 말렸다.


“쫓아버리다가 공격성이라도 발현되면 어쩌려고 그래? 저것들이 떼를 지어서 기지 안으로 들어오기라도 하면 우리는 못 막아.”


마그달레나는 깡총이들이 떼를 지어 기지 안으로 들어온다는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쳤는지 몸서리를 치며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깡총이들은 아무 생각도 없는 듯 큰 눈을 디룩디룩 굴리며 미지근한 공기가 새어 나오는 펜스에 몸을 딱 붙인 채로 가만히 있었다.


로렌츠 대장은 떼를 지어 들어온다는 표현을 썼지만, 깡총이들은 무리를 지어 움직이는 생물은 아니었다. 추운 곳에서 몸을 딱 붙이고 체온을 조금이라도 유지하는 펭귄들처럼 자기들끼리 모여서 열 방출을 최소화할 줄 알았던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깡총이들은 철저히 단독으로 행동했고, 알도 한 번에 한 개나 두 개 바위틈에 낳아놓고 돌보지도 않는 듯했다. 실제로 우리는 기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어쩌다가 한두 개의 깡총이 알을 발견했지만, 성체가 주변에 있는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이들은 알만 낳아 놓고 그냥 떠나는 것 같았다.


타이엔은 새끼 깡총이가 부화한 알 껍질을 실험실로 가져가 조직 분화 수준과 껍질의 층 사이의 대사 중단 구간을 통해 역산해 보고는 알 부화에 적어도 수개월은 필요할 거라고 결론을 내렸다.


“결빙이라도 되면 알이 얼어버릴 테니, 부화가 쉬운 생물은 아니겠는걸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알을 한두 개만 낳다니, 환경도 안 받쳐주는데 이대로면 멸종하기 딱 좋겠어요.”


“이미 멸종하고 있는 것 아닐까?”


“안타깝네요. 이렇게 귀여운데.”


“깡총이들은 우리 좋으라고 귀엽게 생긴 게 아니야, 타이엔.” 어느새 왔는지 로렌츠 대장이 실험실에 들어와 있었다. “환경에 적응하려고 저렇게 생긴 거지. 귀엽다는 건 우리 인간 기준이야.”


로렌츠 대장이 실험실을 나가자, 타이엔은 이끼 파우더 통을 들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나는 그가 새끼 깡총이에게 먹이를 주러 나간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탐사는 길어 봐야 몇 주일 것이다. 우리는 탐사가 끝나면 다시 돌아가야만 했다. 그러니 타이엔이 깡총이 새끼에게 먹이 좀 준들 큰 문제는 아니었다. 깡총이들을 모아 놓고 먹이를 휘휘 뿌리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내가 설치한 대기 측량 센서에 잡힌 결과도 그다지 희망적이지는 않았다. 고도별 기체 조성 차이가 크고, 무거운 기체 비율은 적어지고 가벼운 기체만 상대적으로 남아 있었다. 즉 위에서부터 대기가 빠져나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측량 데이터와 아르카스의 항성인 적색 왜성의 과거 플레어 기록을 가지고 시뮬레이션을 시작했다. 결과가 나오려면 몇 시간 걸렸지만, 결과를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행성은 지금도 계속 대기가 깎이고 있었다.




로렌츠 대장과 마그달레나와 노아가 지표 레이더 스캔에서 발견된 지하 얼음층을 조사하러 나간 사이, 새끼 깡총이는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켜 세워서 비틀거리며 바위 위를 한두 걸음 걷고 있었다. 아직 도약을 할 줄 몰라서인 것 같았다. 나와 타이엔은 그제서야 깡총이들이 왜 쓰지도 않는 다리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깡총이들은 새끼 때 도약을 배우기 전까지는 일시적으로 이족보행을 하는 것이었다.


타이엔이 몇 번 먹이를 주어서인지 새끼 깡총이는 타이엔을 알아보고 비척비척 가까이 왔다. 먹이 주는 손길을 알아보고 정을 줄 만큼의 지능은 없어 보이지만 적어도 타이엔 = 먹이라는 공식은 인지되었을 터였다.


새끼 깡총이는 타이엔이 필름 장갑 위로 얹어주는 이끼 가루를 먹더니 손이 따뜻해서인지 손에 몸을 밀착하고 있다가, 손바닥 위로 올라왔다.


“이것 좀 보세요!” 타이엔이 외쳤다. 헬멧 속의 그의 얼굴은 안 봐도 기쁨에 넘쳐 있었다.


타이엔은 새끼 깡총이가 얹힌 손을 조심조심 들어 올렸다. 새끼 깡총이는 무서워하지도 않고 가만히 있었다. 타이엔은 다른 쪽 손을 나에게 내밀며 이끼 가루 좀 얹어달라고 했다. 내가 이끼 가루를 얹어주자 타이엔은 한 손으로는 새끼 깡총이를 받치고, 다른 손으로는 이끼 가루를 내밀었다. 새끼 깡총이는 눈알을 도록도록 굴려 나와 타이엔과 타이엔의 손바닥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위험이 없다고 여겼는지 중지 손가락만 한 몸을 굽혀 주둥이를 내밀어 가루를 먹었다. 부화되었던 날 눈도 못 뜨고 가루도 겨우 주워 먹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제법 먹성이 좋아져 있었다.


“가루 먹다가 네 장갑까지 뜯어먹는 거 아냐?” 깡총이에게 이빨이 없는 걸 알면서도 내가 물었다.


“그 정도 흡착력은 없어요. 이끼도 여러 번 문질러서 겉에만 벗겨 먹으니까요.”


새끼 깡총이는 가루를 다 먹고 얼굴을 들었다. 먹이를 더 달라는 건지 먹이를 주는 바위(?)를 더 관찰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둥글둥글한 눈은 타이엔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타이엔, 네가 얘한테 먹이 주는 거 보고 다른 깡총이들까지 다 먹이 달라고 쫓아오면 어쩌려고 그래?”


기지 근처의 다른 깡총이들이 보면 무슨 사태가 일어날지 몰라 걱정이 되어 나는 타이엔에게 말했다. 타이엔도 같은 것을 걱정한 듯, 깡총이 새끼를 땅에 내려놓았다.


방열판 밑 암반 근처에는 새끼 깡총이보다는 크지만 아직 어린 깡총이들과 힘없이 어딘가 늘어진 늙은 깡총이 개체들이 있었다. 이들은 성체들보다는 약하지만 그래도 밤 사이에 어딘가에 가서 먹이를 먹고 다시 암반으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우리는 암반 근처와 펜스 근처에 점점 깡총이들이 많이 모여드는 것을 보고 자리싸움이라도 나면서 깡총이들이 서로 공격을 하거나 – 혹은 서로 잡아먹거나? – 하지는 않을지 무척 걱정했다. 그러나 깡총이들은 서로 말 그대로 소 닭 보듯 신경 쓰지 않았다. 한정된 먹이를 가지고 싸움을 하는 것도 보지 못했다. 이끼는 풍부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부족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서로 싸우지 않는다는 점은 무척 신기했다. 먹이가 모자라면 분명히 경쟁이 생길 테고, 경쟁이 심화되면 공격성이 생길 텐데… 게다가 우리가 있는 적도 지방으로 중위도 지방의 깡총이들이 점점 이동 중이라면, 몇 년 후에 우리가 돌아왔을 때에는 깡총이들의 습성도 변해 있을지 모른다. 지구에서도 먹이 경쟁이 심해지면 온순하던 생물들이 포악해지는 일은 얼마든지 있었으니 말이다.


다음날부터 새끼 깡총이는 비틀거리면서 조금씩 걸어서 근처의 이미 다른 깡총이들이 다 먹고 가서 남은 것도 거의 없는 바위의 이끼를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는 도약을 배웠는지, 아니면 더 빨리 걷는 법을 배워서 먹이가 많은 곳으로 가 버렸는지 기지 근처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타이엔은 무척 아쉬워했다.


지하 얼음층을 조사하러 갔던 로렌츠 대장이 돌아왔다. 그들은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을 가지고 왔다. 행성 여기저기의 얕은 지하에 ‘물 포켓’처럼 빙결수 층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이 행성의 물 전부라는 것이었다.

콩알이 DAYTIME.png 너 왜 거기 앉아있니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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