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총이 3. 깡총이 부화

응애에요

by 마봉
깡총이가 깡총

기지 주변을 탐색해 본 결과, 아르카스는 과거에 물과 대기가 풍부한 행성이었을 거라고 우리는 추측했다. 그러나 불안정한 적색 왜성이 항성인 만큼 어느 시점에 플레어 활동 등으로 한꺼번에 대기가 날아간 듯했다. 깡총이들과 아르카스의 식물들은 아마도 그로 인해 급속도로 옅어지는 공기와 원래부터 희미했던 햇빛에 적응해 왔을 것이다.


갈라지고 갈라진 편상 암반의 틈은 과거에 물이 흘렀던 흔적으로 보였다. 그때는 아마도 깡총이들도 먹을 것이 많았겠지. 식물도 지금보다 더 풍부하게 자랐을 테지만 지금은 타다 만 재 같은 칙칙한 색깔의 이끼만이 유일한 그들의 식량이었다.


저고도용 셔틀을 타고 돌아본 결과 깡총이들은 극지방만 빼고 행성 전역에 퍼져 살고 있었다. 적도 지방은 낮 최고기온이 5도에서 10도까지 올라가는 온화한 기후였으므로 깡총이 개체수도 가장 많았고, 중위도 지대는 낮에도 0도 안팎이었으므로 깡총이 숫자도 비교적 적었다.


바위행성이라 일교차도 커서 적도에 있는 우리 기지도 밤에는 영하 10도까지 떨어졌지만, 깡총이들은 오히려 밤에 더 활발하게 활동했다. 우리는 슈트를 입고 밖에 나와 환한 별빛 아래 깡총이들이 뛰어다니며 이끼를 먹는 것을 구경했다.


깡총이들은 우리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수천 년 동안 천적이 없었던 생물들이라 그런지 우리를 좀 큰 바위 정도로 생각하는 듯했다. 물론 움직이는 바위를 본 적은 없을 테지만 말이다. 그래서 타이엔이 연구를 위해 깡총이 몇 마리를 생포했을 때에도 이 놈들은 피하지도 않았다.


“얘네 완전 멍청하잖아?”


“평생 뭔가를 피해 본 적이 없을 테니까요.” 타이엔이 대답했다.


대기가 엷어 바람조차 거의 불지 않아 흙먼지도 날리지 않으니 뭔가를 피해 움직인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겠지. 이토록 생기 없는 행성에서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생명이 있다는 것은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먹을 수 있었다면 잡기 쉬워서 참 좋았을 텐데.”


깡총이를 식량으로 삼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는지 미겔이 기지 입구에 서서 말했다, 그는 광장공포증 때문에 기지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외부 시스템을 점검할 때에도 기지 벽에 딱 붙어 있었다. 그는 밤에 일하는 것을 더 힘들어했다. 쏟아질 것 같은 별에 납작하게 짓눌리는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이전 탐사지는 큰 산이나 언덕들이 있는 행성들이었기 때문에 그의 광장공포증이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아르카스는 높은 언덕이라 해봐야 겨우 그의 키 높이만 했다. 그는 기지 밖으로 50미터만 걸어가도 어지러워했다.


깡총이에 대한 첫 보고가 TEA에 올라간 날, 우리는 기지 바깥에 깡총이들이 모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기지 외부 시스템 점검을 하던 미겔이 먼저 발견하고 로렌츠 대장에게 가서 보고했다.


“어디에 있지?”


“열 교환기 외부 패널과 폐열 배출구, 전력 시스템 방열판 하단의 암반 주변입니다.”


“기지 벽이 따뜻해서 모이는 것 같습니다.” 타이엔이 거들었다.


대장은 암반만 빼고 깡총이들이 기지로 더 모여들지 않도록 기지 둘레에 울타리를 치도록 지시했다. 우리는 기지 둘레에 깡총이들의 도약 높이보다 더 높이 경량 접이식 폴리머–메탈 복합 메쉬 펜스를 쳤다.


깡총이들은 더 이상 기지에 다가오지 못했다. 그래도 메쉬의 미세한 구멍을 통해 기지에서 발생하는 미미한 열이 전해졌던 탓인지 아침에 일어나서 기지 밖으로 나가 보면 깡총이들이 펜스 주변에 몰려들어 있었다. 로렌츠 대장은 그냥 두라고 했지만, 마그달레나는 징그럽다고 몸서리쳤다. 펜스가 쳐져 있지 않은 암반 주변은 밤에도 잘 식지 않아서 검붉은 색의 늙은 깡총이들과 몸집이 작은 어린 깡총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기다란 물방울처럼 철푸덕 앉아 있었다.


타이엔과 나는 대기측량 센서를 설치하기 위해 기지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바위틈에서 부화 직전의 깡총이 알을 발견했다.


깡총이의 알은 반투명했다. 매끈하고 말랑한 알 안에 곧 부화하려는지 다 자란 탁한 암적색의 깡총이 새끼가 안에 그대로 비쳐 보였다. 엷은 수분막이 덮인 알은 곧 늘어날 준비가 된 듯 미세한 주름이 져 있었다.


타이엔은 초박형 다층 필름으로 된 경량 생물접촉용 감각 장갑(bio-contact glove)을 낀 손으로 알을 만져 보았다.


“따뜻해요. 아주 약간이지만.”


“그러고 보니 얘네 암수 구분은 있어?”


“암수한몸이에요. 알은 처음 봤지만요. 생태가 느린 애들이니 아마 부화도 오래 걸릴 걸요. 거의 정지한 것처럼.”


“천적도 없으니 온도만 맞으면 100% 다 부화하겠네.”


“그 온도가 문제죠. 이 행성은 점점 추워지니까요.”


“먹을 것도 별로 없고.”


저고도 셔틀을 타고 이동하면서 우리가 깨달은 또 다른 한 가지는, 깡총이들이 조금씩 적도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마도 점점 먹을 것이 점점 떨어져 가거나, 온도가 조금씩 떨어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우리는 짐작했다. 몇 년 전 아르카스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 TEA가 보냈던 무인 탐사선이 궤도에서 관측한 결빙 구간이 지금보다 더 고위도였던 것을 보면, 이 행성이 미세하지만 점점 식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여러모로 이 행성은 더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인간도 굳이 여기에 살림을 차릴 이유도 없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깡총이 같은 극저 에너지 환경에 특화된 생물조차 살기 힘들어서 적도 쪽으로 이동 중이라면, 인간은 더더욱 살 수 없을 것이므로.




다음날 아침, 타이엔은 해 뜨자마자 다시 바위틈으로 가서 깡총이 알을 살폈다. 나도 그의 뒤를 따랐다.


놀랍게도! 우리가 보는 앞에서 알은 부화했다. 젤리 같은 막이 열리듯이 풀리며 중지만 한 깡총이 새끼가 기어 나왔다. 너무 큰 눈을 뜨지도 못한 채로 깡총이 새끼는 알을 딛고 바위 위로 미끄러지듯이 기어올랐다.


“세상에… 이것 좀 보세요.”


“내 눈엔 빨간 지렁이 같은데.” 어느새 옆에 와 있었던 마그달레나가 말했다.


“뭘 먹지?”


“스스로 이끼를 찾아 먹지 않을까요?”


깡총이 새끼는 설 힘이 없는지 바위 위에 죽은 듯이 꼼짝도 않고 둘러붙어 있었다. 마그달레나는 어쩌나 보려고 좀 기다리더니 지겨운 듯 기지로 들어가 버렸다.


“얘 좀 봐주세요. 금방 돌아올게요.”


타이엔은 기지 안으로 들어가더니 뚜껑이 달린 작은 원통형 상자를 들고 왔다.


“뭔데? 설마 먹이 주려고?”


그는 통 안에서 말차 파우더 같은 것을 한 꼬집 집어 올려 새끼 깡총이 앞에 놓아주고는 스포이드로 물을 두어 방울 뿌려 걸쭉하게 만들었다. 새끼 깡총이는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지만, 주둥이를 내밀어 파우더를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뭘 주는 거야? 외계 생물한테 아무거나 주면 안 되잖아.”


“생태학자인 제가 그것도 모를 것 같으세요? 여기 이끼예요. 성분 조사하려고 제가 채취해 놓은 거예요. 얘네 원래 먹는 거라고요.”


“먹이는 자기가 찾아먹게 해야지, 어쩔 셈이야? 키우기라도 하게?”


새끼 깡총이는 조금씩 움직이며 이끼가루를 먹었다. 나와 타이엔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돌아오니 새끼 깡총이는 가루를 다 먹어치우고 여전히 그 자리에 찰싹 붙어 있었다.

바위에 찰싹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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