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가 뛰어다니고 있다
우주선이 자세를 낮추자, 선체 안에서 기계들이 동시에 깨어났다.
감속을 알리는 짧은 경보음, 관성 보정 장치가 작동하며 나는 둔중한 진동을 느꼈다. 바닥이 미세하게 떨렸다. 자동 착륙 모드로 전환되었다는 표시가 계기판에 떴다. 누군가가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헬멧 안에서 작게 울렸다. 아마 나였을 것이다.
외부 카메라에 편상 바위 지대가 나타났다. 모래는 없었고, 흙도 없었다. 한 장의 거대한 암반이 갈라지고, 다시 갈라진 것처럼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행성의 표면은 마치 오래전에 굳어버린 무엇처럼 보였다.
착륙 장치가 전개되며 금속이 맞물리는 소리가 연속으로 이어졌다. 잠금, 고정, 압력 분산. 각 단계마다 다른 음색의 신호음이 겹쳐졌다. 마지막으로 충격 흡수 다리가 바위에 닿는 순간, 선체 전체가 낮게 울렸다. 부딪힘이라기보다는, 무언가에 내려앉는 느낌에 가까웠다.
진동이 멎자, 기계음도 하나씩 사라졌다.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 행성이 이미 많은 것을 잃었다는 사실만은, 착륙하기도 전에 충분히 느껴졌다.
“일단 사람이 살 곳은 아니군요.”
시스템·공학 담당인 미겔 아라우호가 말했다. 그는 우리 중 유일하게 ‘우주 공간’ 출신이었다. 토성의 위성 엔셀라두스 우주 도시에서 온 그는 탐사대 활동에 가장 걸맞지 않은 대원이었다. 우주도시 출신들은 대부분 광장공포증을 이겨내지 못했다. 그나마 미겔이 탐사대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외부활동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공학 담당이기 때문이었다.
“화성보다는 살기 좋아 보이는데요? 화성하고 여기하고 둘 중 하나 고르라면, 나 같음 여기 고르겠어요.”
이렇게 말한 것은 보안 담당인 노아 킴이었다. 화성 개척 2세대인 그는 어떤 행성을 탐사하든 일단 화성과 비교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러나 그가 화성보다 살기 나쁘다고 말하는 행성은 아직까지 없었다.
나는 탐사선 창 밖으로 행성의 희뿌연 하늘을 바라보았다. 항성이 떠 있었지만, 빛은 힘이 없었다. 그림자는 흐릿했고, 밝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어둑했다. 낮이지만 마치 황혼 같은 하늘에는 자세히 보면 흰 자국처럼 별들이 비쳐 보였다. 주 항성이 출력이 약한 적색 왜성이기 때문이었다.
행성 아르카스. 방금 우리가 착륙한 곳의 이름이었다. 아르카스는 프록시마 센타우리 주계에 속하지는 않지만 그 중력 영향권 바깥의 M형 적색 왜성을 안정적으로 공전하는 소형 행성이었다. 공기와 물, 단단한 대지, 그리고 아마도 식물도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면서 아르카스는 순식간에 식민 행성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인류는 환호했다. 지구 연방정부 소속의 지구탐사국 TEA(Terran Exploration Agency)는 즉시 탐사 준비에 착수했다.
그러나 탐사대가 출발하기도 전에 실망스러운 소식들이 하나 둘 전해지기 시작했다. 단단한 대지는 있는데 죄다 바위이고 흙은 거의 없다는 것, 공기와 물은 있는데 너무 미미하다는 것.
아르카스의 탐사 가치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서 뚝뚝 떨어졌다. 처음에는 몇 십 명이었던 탐사대의 규모도 점점 줄어들어서, 실제로 출발한 것은 제2 식민 행성 엘리시움 주변 위성들을 탐사 중이던 겨우 6인조로 이루어진 우리 ‘아스트라 미네르바’ 탐사대였다.
2814년, 인류는 이미 식민 행성을 네 개나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행성 전체를 손에 넣은 것은 아니었다. 식민 행성의 극히 작은 땅에 그럴듯한 거점 도시 몇 개를 세워 놓고 지속적인 거주 가능성을 살펴보는 정도에 불과했다. 지구는 여전히 인류의 중심 행성이었다. 다만, 더 이상 유일한 선택지는 아니었다.
식민 행성은 늘 어딘가 부족했다. TEA는 지구만큼 인간이 살기에 적당한 행성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탐사에 들어가는 돈으로 차라리 지구 저궤도 우주도시를 더 만들자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그러나 저궤도 우주도시들도 결국 지구 자원을 소비하는 도시들이었다. TEA는 계속해서 탐사대를 내보냈다. 데메트리아, 엘리시움, 노바리아, 아벨론, 그리고 아직 작은 정착촌이 꾸려진 지 얼마 안 되는 카엘룸과 식민 행성들 사이를 오가는 함선들이 거쳐가는 우주 공항인 프록시마 스테이션이 차례로 TEA의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개척된 지 오래된 데메트리아나 엘리시움 같은 행성들에는 이미 상당히 큰 도시들이 세워져 있었다. 우리 탐사대의 대장 이사벨 로렌츠도 엘리시움 출신이었다. 지구와 화성, 그리고 우주도시 출신으로 이루어진 우리 탐사대원들이 이해하기로는 식민 행성 주민들은 굳이 지구를 아쉬워하지 않을 정도로 자기네 사는 곳에 익숙해져 있었다. 로렌츠 같은 차분하고 냉철한 대장을 만난 이후로는 더더욱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날엔가, 로렌츠 대장과 미겔과 같이 셋이 술 한 잔 같이 한 자리에서 로렌츠 대장은 은근히 취한 채로 말했다.
“레오, 엘리시움 사람들이 평생 가장 원하는 게 뭔 지 알아?”
나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엘리시움의 붉은 보리로 빚은 맥주를 쭉 들이켜며 내뱉듯이 말했다.
“지구 가서 살아보는 거.”
미겔과 나는 말없이 각자의 잔을 비웠다.
지구 출신의 대기학자인 나에게 있어서 행성들은 ‘지구와 대기질이 비슷한가 아닌가’로 구분되었다. 식민 행성들의 대기는 지구와 거의 비슷하니 거기나 지구나 다를 것이 없으리라 생각했던 나는 그때 생각을 바꿨다.
인류는 아마도 지구를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지구와 완전히 똑같은 행성을 하나 더 발견하기 전까지는. 그리고 그것이 우주를 탐사하는 탐사국 이름이 ‘우주 탐사국’이 아닌 ‘지구 탐사국’인 이유인지도 모른다.
대기 측량 센서에 잡힌 공기는 매우 옅었다. 나는 대원들에게 측정 결과를 읽어 주었다.
“질소 약 60%. 이산화탄소 15% 내외. 산소는 지역 편차가 커서 2에서 4% 사이. 수증기는 검출 한계 이하. 헬멧 벗고 나가면 1분 안에 현기증 옵니다.”
궤도에서 측정한 결과도 마찬가지였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는 사라졌다. 이 행성은 사람이 살기에는 부적합했다.
나는 이어서 “에베레스트 정상보다 희박합니다.”라고 대원들에게 한 번 더 일러주었다. 지구 출신들만 알아듣는 표현이겠지만.
“공기가 엷어서 그런가, 하늘색이 탁하네.”
아르카스의 회청색 하늘을 바라보며 지구 저궤도 우주 도시 출신인 항법사 마그달레나 브로닌스카가 말했다. 그녀는 자신을 가리켜 ‘지구 출신인데 지구 땅 못 밟아본 사람’이라고 표현하곤 했다. 물론 밟아본 적이 없진 않았다. 비행 훈련을 네바그라드(구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받았다고 했으니 말이다.
아르카스의 하루는 지구 기준 30시간이었다. 하루가 26.5시간인 엘리시움 출신인 로렌츠 대장도 “너무 길다”라고 불평할 정도의 시간이었다. 우리는 이제까지 탐사했던 행성들 중 가장 긴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탐사할 것도 없는데 뭐 하러 계속 있으라는 건지 모르겠네요.”
탐사대의 막내이자 생태학자인 타이엔 카쉬가 경량 행성 탐사 슈트를 입으며 투덜거렸다. 그는 북미 보호구역 출신이었고, 지구의 집에 고양이와 말, 토끼, 라마 그리고 몇 종류의 새를 키우고 있었다. 그렇게 동물을 많이 키우면서도 그는 외계 생물을 더 보고 싶다고 탐사대에 자원했다.
“호랑이라던가, 도도새, 얼룩말 같은 생물들이 외계 행성에는 있지 않을까요?”
왜 탐사대에 들어왔냐고 묻는 나의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이었다. 지구에서 멸종한 생물들을 외계에서 찾고 싶어 하는 그의 순수한 호기심이 놀라울 뿐이었다.
그러나 타이엔의 바람과는 달리 그는 식물 말고는 조사할 기회가 없었다. 데메트리아에도, 엘리시움에도, 노바리아나 아벨론에도 이렇다 할 동물은 발견되지 않았던 것이다. 흙 속의 미생물이나 벌레 같은 동물 외에는 그가 원하는 고등 생물은 그 어느 행성에도 없었다. 뭍에서는 호랑이, 물속에서는 수장룡 같은 동물을 발견하면 어떻게 잡아 먹히지 않고 조사할 수 있을지 걱정했다던 타이엔은 점차 식물학자로서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처음에 아르카스 탐사 계획서를 받아 들었을 때만 해도 타이엔은 이끼류나 지의류의 식물 몇 종류만 조사하면 되는 줄 알고 있었다. 사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아르카스 궤도를 돌며 착륙 장소를 찾던 어느 날, 마그달레나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뭔가가 뛰어다니고 있어.”
우리는 탐사 카메라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낮에만 들여다봐서 몰랐는데, 행성의 밤에 해당하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자 그녀의 말대로 표면에 뭔가가 팔짝팔짝 뛰어다니는 것이 보였다.
“벌레일까요? 메뚜기 같은?”
“벌레치곤 너무 큰데요.” 타이엔이 말했다. “웬 막대기 같은 것들이 뛰어다니네요.”
“낮에는 저런 거 없었는데.”
우리는 며칠간 더 조사한 끝에, TEA 본부에 놀라운 사실을 알렸다. 아르카스에는 이끼 말고도 ‘동물’이 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