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레나 4. 도윤의 가출

알레르기 조심합시다

by 마봉

다음날 아침, 지연은 식료품 창고를 정리하고, 민석은 절뚝거리면서 하우스로 나갔다. 하우스 문이 닫히는 것을 확인한 후 도윤은 방 문을 나섰다.


엘레나는 거실 한옆에 서 있었다.


“엘레나, 나가자.”


“외출 목적을 말씀해 주시면 필요한 준비를 하겠습니다.”


“지금은 그냥 나가는 거야.”


“알겠습니다.”


엘레나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도윤과 같이 현관으로 향했다.


공공버스 정류장은 집에서 멀지 않았다. 도윤은 엘레나를 데리고 정류장으로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하우스 안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엘레나! 엘레나야 어디 있냐!”


도윤은 움찔했다. 엘레나가 멈췄다.


“호출에 응답해야 합니다.”


도윤은 이를 악물었다.


“빨리 다녀와. 정류장으로 와.”


엘레나는 방향을 틀어 하우스가 나란히 늘어선 쪽으로 향했다. 도윤은 하우스에서 안 보이는 벽 뒤로 몸을 숨겼다.


버스 도착 시간까지는 3분. 멀리서 엔진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지나갔다.


엘레나가 돌아왔을 때 정류장은 텅 비어 있었다.


“다음 공공버스는 한 시간 후 도착 예정입니다.”


도윤은 고개를 숙였다.


“걸어가자.”


“어디로 가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콘리지 역.”


“콘리지 역으로 가시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마렐로 가는 기차를 탈 거야. 브레일 가는 고속철도 스테이션이 거기 있어.”


엘레나는 마치 사람이 머뭇거리는 것 같은 동작을 취했다.


“미성년자가 보호자 동반 없이 장거리 이동을 하는 것은 권장되지 않습니다. 위험 가능성 47%.”


도윤은 걷다가 멈춰 서서 엘레나를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나는 갈 거야.” 그는 숨을 한 번 들이쉬고 말했다. “그리고 넌 나를 보호할 의무가 있어.”


엘레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명령을 명확히 해 주십시오.”


도윤은 낮은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보호 우선 모드. 사용자 한도윤의 신체 안전을 최우선으로 유지. 사용자의 생존 및 이동 보장을 우선한다.”


엘레나의 눈에 미세한 표시가 떴다가 사라졌다.


“명령 확인.” 엘레나가 말했다. “우선 명령이 적용되었습니다. 브레일까지 안전하게 이동하도록 동행하겠습니다.”


도윤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지금 충전 상태는?”


“현재 배터리 잔량 45%입니다. 마렐 역 공공 충전소에서 한 번 충전하면 브레일까지 기능 유지에 문제없습니다.”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출발하는 브레일행 고속철도를 타려면 콘리지 역까지 30분 내로 도착해야 해. 프리슈발트 숲을 가로질러 가자.”


도윤과 엘레나는 도로를 벗어나 마을 어귀의 숲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프리슈발트는 ‘상쾌한 숲’이라는 뜻의 독일어 이름이었다. 덥고 습한 콘리지에서 숲 속으로 들어가면 선선하고 상쾌할 것 같은 연상을 주는 이름이었지만 실제로는 열대우림 같은 숲이었다. 데메트리아의 양치식물인 프테리움 갈라니카, 젖으면 미끈거리는 잎이 달린 루모스 잎목, 비가 오면 짙은 향이 나는 키 작은 풀인 비셀라 풀이 어지럽게 엉킨 숲이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이 자주 산책하는 숲이기도 했기 때문에 고르게 난 길이 숲을 가로질러 뻗어 있었다.


이 숲을 가로지르면 콘리지 역이 있는 대로가 나왔으므로 도윤과 엘레나는 빠른 걸음으로 숲길을 가로질렀다.

숲길은 나무가 너무 무성한 탓에 생각보다 어두웠다. 위로는 잎이 겹겹이 덮여 있고 아래로는 항상 젖어 있는 흙이 눌려 있었다. 평소라면 발자국 소리와 바람 소리만 들렸을 길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왠지 하늘도 어두웠다. 공기도 묘하게 무거웠다. 도윤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그날은 비 예보가 없는 날이었기 때문에 마침 잘 됐다고 생각해서 실행에 옮긴 거였는데, 지금 막 코 끝에 스치는 공기는 평소보다 더 습했다.


아니나 다를까,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졌다. 잎 위를 때리는 소리가 톡, 톡 하고 퍼졌다.


그리고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마치 숲 전체가 동시에 물을 쏟아내는 것처럼 위에서 아래로, 옆에서 옆으로 비가 들이쳤다. 잎에 맞은 물이 튀어 다시 떨어지고, 바닥에서 튄 물이 종아리를 적셨다.


“오늘 폭우 예보는 없었습니다.” 엘레나가 말했다. “일단 비를 피해야 할 것 같습니다.”


도윤은 앞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그러면 오늘 기차를 놓쳐. 브레일 가는 고속철을 타려면 그다음 기차 타면 늦어.”


“오늘은 집으로 돌아가고, 내일 다시 나오는 건 어떻습니까?”


“안 돼.” 도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미 짐을 다 싸서 나왔어. 이대로 돌아가면 부모님이 보고 바로 눈치챌 거야.”


엘레나는 잠깐 주변을 스캔하고 말했다. “그렇다면, 나무 아래를 골라 비를 덜 맞으면서 빠르게 이동해야겠습니다.”


그들은 더 큰 나무 아래를 골라 최대한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나 비는 위에서만 오는 게 아니었다. 잎을 타고, 가지를 타고 옆으로도 쏟아졌다. 나무 아래도 이미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도윤의 팔에 뭔가가 스쳤다. 따끔함이 느껴졌다.


“아얏.”


그는 반사적으로 팔을 긁었다. 그 순간, 긁은 자리가 더 따끔거렸다.


“프테리움 갈라니카입니다.” 엘레나가 말했다. “긁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너무 가려워…”


도윤은 말을 잇지 못했다. 가려움이 퍼지며 피부가 화끈거렸다. 숨이 가빠지며 다리가 풀렸다.


“도윤 님.”


엘레나가 그의 몸을 부축했다. 도윤은 시야가 흔들리며 그대로 쓰러졌다.


엘레나는 도윤을 눕힌 채로 가장 가까운 응급 센터에 구조 신호 송출을 시도했다. 위치 좌표가 떴다가 사라졌다.


“통신 불능.”

엘레나는 즉시 매뉴얼 모드를 실행했다. 낮고 반복적인 사이렌이 숲 속에 울렸다. 응답은 없었다.


“발열 모드 가동.”


엘레나는 도윤의 몸을 부둥켜안고 등으로는 떨어지는 비를 막으며 사이렌을 계속 울렸다.

ChatGPT Image 2026년 2월 16일 오후 05_45_30.png 폭우가 쏟아지는 데메트리아의 숲 속에서 엘레나가 도윤을 안고 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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