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레나 3. 도윤의 반항

안 바뀐 건 엘레나뿐

by 마봉

다음날 아침, 아래층으로 내려간 도윤은 식탁 위에서 못 보던 팸플릿을 발견했다. 얇은 홀로 패널이 접힌 상태로 제목만 떠 있었다.


마렐 농업기술대학 입학 안내


도윤은 잠깐 동안 제목을 바라보다가 엄마에게 다가가 물었다.


“이게 뭐예요?”


지연은 커피를 마시던 컵을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어, 그거? 어제 네 아빠가 받아온 거야.”


“왜 우리 집 식탁에 있어요?”


지연은 식탁에 앉으며 대답했다. “거긴 그냥 일반적인 농업대학이 아니야.”


도윤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뭔데요?”


“거긴 데메트리아에서 가장 좋은 농업대학이야.”


지연은 손짓으로 자료를 넘겼다. 화면이 펼쳐지며 사진과 그래프가 떠올랐다. 대형 하우스 단지, 연구원들, 실험 중인 작물들과 농기계들.


“식량 생산, 작물 개량, 환경 대응.” 지연이 하나씩 짚어 나갔다. “여기 연구원들이 지금 데메트리아에서 생산하는 농작물 표준 종자 절반 이상을 다 만들었어.”


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우리가 키우는 옥수수랑 커피도 종자 원형은 다 저기서 나왔어. 콘리지가 거기 없었으면 버틸 수 있었겠니? 습기 많은 환경에서 옥수수도 키울 수 있게 된 건 다 저분들 덕분이야. 커피도 지구보다 훨씬 품질이 뛰어난 걸 우리가 지금 생산하잖니?”


“전 로봇공학을 하고 싶어요.” 도윤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래에 사람들이 뭘 먹고살지는 저런 사람들이 정해. 기후가 흔들리면 가장 먼저 무너지는 건 식량이잖니. 그럴 때 돈이 중요하겠니, 로봇이 중요하겠니. 무조건 식량이야.”


대답이 없는 도윤에게 지연이 덧붙였다. “저긴 단순히 농사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데메트리아 전체 식량 생산을 책임질 사람들을 키우는 곳이야.”


“…그걸 꼭 제가 할 필요는 없잖아요.” 도윤이 우물거리며 말했다.


“네가 거기 가면, 농장 하나 물려받는 게 아니라, 이 행성이 굶지 않게 하는 편에 설 수 있어.”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부엌 창밖으로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최고 명문 대학이야. 아무나 가는 데 아니야. 거기 가면 평생 먹고사는 걱정 안 해도 돼.”


도윤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현관문이 열리며 민석이 옷에 묻은 빗물을 털며 들어왔다.


“커피 하우스 보러 가자!”


도윤은 시무룩한 채로 부모님을 따라 농장으로 나갔다. 그의 머릿속에는 마렐과 브레일, 두 이름이 떠다녔다.

3.png 부엌 테이블 위에 놓인 마렐 농업기술대학 팸플릿을 보는 도윤

다음날 저녁식사 후, 지연은 커피를, 도윤은 핫초코를 마시며 패널 TV를 보고 있을 때였다. 거실 테이블 위에 닫혀 있던 마렐 농업대학 안내 자료 화면이 도윤 앞으로 밀려왔다.


“도윤아,” 민석이 말했다. “이것 좀 읽어봤니? 어제 아빠가 가져다 놨는데.”


“네.” 도윤은 무심히 대꾸했다.


“미리 준비해야 갈 수 있단다. 여기 가려면 지금보다 공부 두 배로 해야 할 거다. 커리큘럼 봤니? 자동화 농기계, 환경 대응 작물, 커피 발효 연구도 있더라.”


도윤은 핫초코를 한 입에 다 삼키고 일어났다.


“네, 이미 봤어요.”


“자세히 다 본 거냐?”


“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도윤이 중얼중얼에 가까운 목소리로 침묵을 깼다.


“전 브레일 공대에 가고 싶어요.”


지연은 커피를 마시다가 뿜었다. “뭐? 어디?”


“브레일 공과대학이요.”


“노바리아 공대 못 간다니까 이번에는 브레일이냐? 너 거기가 어딘지나 알고 하는 소리야?”


“네. 다 검색해 봤어요. 좋은 곳이던데요? 비도 안 오고 선선해요. 노바리아 같아요.”


“대학을 날씨 보고 가냐? 거긴 너무 멀어. 현실적으로 생각해야지.”


“마렐 농대 가도 집에서 못 다니는 건 마찬가지잖아요.”


“그래도 마렐이면 집에서 세 시간 거리다. 브레일이면 식민지 끝에서 끝이야. 천 킬로는 가야 하는 먼 곳이다. 선선하다고 좋은 곳이 아니야.”


“하지만 전 로봇공학이 좋아요. 왜 제가 하고 싶은 걸 하면 안 돼요?”


“농장은 어찌할 거냐? 엄마아빠 늙으면 농장 누구한테 물려주니?”


“지금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잖아요? 방법이 생기겠죠. 노바리아 살 때는 우리가 데메트리아 와서 농사지을 줄 알았나요?”


민석과 지연은 말문이 막혔다.


“농장 일 도와드리는 건 괜찮지만 평생 하고 싶진 않아요. 공부는 원하는 거 하고 싶어요.”


“너 혹시 농사가 하찮아 보여서 그러냐?” 민석이 말했다. “로봇공학은 멋있어 보이고 농사는 손에 흙 묻히는 거라고 우습게 보면 안 돼!”


도윤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전… 여기 오고 싶지 않았어요.”


식탁이 조용해졌다.


“노바리아 떠나기로 한 것도, 친구들 두고 온 것도, 이 비만 오는 곳에 오는 것도, 다 엄마 아빠가 결정하신 거잖아요.”


민석도 지연도 둘 다 말이 없었다. 도윤은 뭔가 울컥한 듯이 말문이 터져 계속해서 말했다.


“그래도 참고 살잖아요. 하우스 일도 하고, 공부도 하고요. 그럼 내가 하고 싶은 건 뭐 하나라도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아요?”


“그래 아들, 아직 중등 과정이니까, 몇 년 후에 다시 얘기해 보자.” 지연이 달래듯이 말했다.


“엘레나밖에 없어요. 안 바뀐 건.” 도윤의 눈에 고였던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제가 진짜 좋은 안드로이드로 바꿔 주려고 몇 년 전부터 생각해 온 게 있어요. 보여드릴게요. 브레일 공대에 가면 그걸 현실로 만들 수…”


“그만.” 민석이 이마에 손을 짚으며 말했다. “엘레나는 가정용 안드로이드다. 네 친구인 것도 알겠는데, 엘레나 타령 좀 그만 하렴. 네 진로 얘기는 나중에 하자. 장래희망은 원래 다 바뀌니까.”


“제 얘기는 왜 안 들어주시는데요.”


“알았으니 들어가라 이제.”


“전 브레일 갈 거예요.”


민석과 지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뭔가 소리치고 싶어 하는 민석의 표정을 보고 지연이 그의 팔을 찰싹 때렸다. 도윤은 말없이 방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날 밤, 도윤은 짐을 쌌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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