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워서 합격!
하우스 안은 조용했다. 비가 패널 위를 두드리는 소리가 둔하게 퍼졌고 습도는 안쪽에서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습기에 강한 데메트리아 토착식물 교배종 옥수수 줄기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서 있고, 잎 끝에는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도윤은 엘레나 옆에 서서 패널을 들여다보았다. 엘레나의 팔에 센서가 펼쳐지자 생육 상태가 겹쳐서 표시되었다.
“수분 정상, 영양 상태 정상, 병충해 반응 없음.”
엘레나가 차분한 목소리로 상태값을 읽었다.
도윤은 패널을 내리고 실제 옥수수를 올려다보았다. 가장 바깥쪽 잎 하나가 말라 있었다. 색도 다른 잎보다 탁했다.
“이건 말라 있는데, 왜 정상이지?”
엘레나는 그 잎을 스캔하고는 대답했다. “해당 잎은 생육에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그럼 그냥 놔둬?”
“그렇습니다.”
지연이 다가와서 그 잎을 말없이 똑 떼어냈다.
“저런 건 기계가 보면 문제없어. 수확량에도 영향 없고.”
“그럼 왜 떼요?”
“놔두면 곰팡이 타. 여기처럼 습기 많은 데서는 금방 퍼져.”
“그런 건 기계로 못 해요?”
“센서는 기준 안에서 평균값만 봐.” 다른 잎도 하나 떼어내며 지연이 대답했다. “이상해 보이는 걸 이상하다고 느끼는 건 아직은 사람이 더 빨라.”
“언젠가는 다 자동으로 되겠죠?”
“그렇겠지. 그때까지는 우리가 해야 해.”
도윤은 엘레나를 올려다보았다. “엘레나, 봤지. 아직은 사람이 해야 한대, 마른 잎 따는 것조차.”
“이해했습니다.” 엘레나가 말했다. “현재 기준에서는 인간의 개입이 효율적입니다.”
“농사는 사람이 짓는겨!” 어느새 들어왔는지 한민석이 하우스 입구에서 벽력같이 소리쳤다. “농작물은 농부의 발소리를 들으며 자란다고 선조들께서 말씀하셨다! 사람 손이 타지 않는 농사는 인류 역사상 아직 없어!”
“엘레나, 저 양반 좀 집 안으로 도로 처넣어 드리렴.” 지연이 말했다.
“내가 봐야 해! 나 좀 다음 하우스로 옮겨 주려무나, 엘레나야!”
“두 가지 명령이 상충하기 때문에 실행할 수 없습니다.” 엘레나가 말했다.
“엘레나, 그냥 나랑 다음 고랑으로 가자.” 도윤이 말했다.
“엘레나 같은 애를 1인당 하나씩 가질 수 있다면 엘레나 하나 두고 이렇게 옥신각신할 일도 없을 텐데!” 지연이 말했다.
“쟤가 얼마짜린데 일인당 하나씩 가져! 노바리아에서 갖고 나온 것 중에 제일 비싼 재산이 엘레나라고!”
“제가 성공해서 엘레나 하나씩 다 사 드릴게요, 엄마 아빠!” 도윤이 말했다. “그러니까 저를 노바리아 공과대학으로…”
“우린 노바리아 떠났는데 무슨 소리니, 도윤아. 우린 이제 데메트리아 사람이야.”
“그래, 농사가 뭐가 어때서 그러느냐! 대농장주가 되는 게 더 돈 빨리 벌어. 농업대학을 가거라. 식량생산 쥐고 있는 게 최고야. 경제불황이 와도 굶어 죽지 않고 말이다. 지구 봐라, 기후 한번 뒤틀리면 수천만 명이 몇 달이고 합성식품만 먹어야 하지 않니. 봐라! 우리는 진짜 옥수수랑 진짜 커피다. 곧 진짜 소도 키울 거다.”
“아들! 배양육 말고 진짜 소고기 먹어보고 싶지 않니? 먹으면 정말 기절할 맛이 난단다.”
도윤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옥수수 마른 잎을 똑 똑 따며 생각에 잠겼다. 엘레나는 조용히 그 뒤를 센서 패널을 펼치며 뒤따랐다.
하우스 일을 마치고 돌아온 도윤의 옷은 축축했다. 비를 직접 맞지 않아도 데메트리아의 습기는 늘 사람을 젖게 만들었다. 그는 이층 자기 방과 연결된 샤워 부스에서 바로 샤워를 했다. 따뜻한 물이 흐르자 하우스 안의 흙냄새와 커피 잎의 쌉쌀한 향이 조금씩 씻겨 내려갔다.
도윤은 머리를 대충 말리고 책상 앞에 앉았다. 아래층에서 부모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지만 도윤은 신경 인터페이스를 켜서 자동으로 소음을 낮췄다.
책상 위에 패널이 펼쳐졌다. 도윤은 검색어를 소리 내서 말했다.
“데메트리아의 공과 대학.”
화면이 바뀌며 두 개의 검색결과가 나타났다.
브레일 공과대학
위치: 브레일 시
단과대 개수: 12개
주요 학과:
응용 로봇공학
안드로이드 시스템 설계
환경 적응형 관절 공학
인공지능 제어 알고리즘
연관 검색어: 브레일 기후 / 북부 고위도 / 로봇 연구소 / 안드로이드 설계
슈타인펠트 공과대학
위치: 슈타인펠트 시
단과대 개수: 9개
주요 학과:
산업 자동화 공학
농업 기계 시스템
환경 관리 공학
물류 로봇 운용
연관 검색어: 산업 도시 / 중위도 도시 / 현장 기술 / 자동화 설비
도윤은 연관 검색어 ‘북부 고위도’에서 시선을 멈췄다. 그는 반사적으로 ‘브레일 공과대학’을 탭했다.
상세 정보가 펼쳐졌다. 캠퍼스 전경 영상, 해가 쨍쨍하지 않은 회색빛 하늘, 젖지 않은 보도블록, 얇은 외투를 입고 걷는 사람들. 비는 보이지 않았다.
도윤은 우측의 환경 정보를 눌렀다.
브레일 시 기후 정보
연평균 기온: 7.4°C
(여름 평균 15~18°C / 겨울 평균 -5~-2°C)
연평균 습도: 28%
연간 강수일: 42일
약한 강우 위주
폭우 기록 없음
적설일 연 18일 포함
연평균 습도 28%... 그는 그 숫자를 반복해서 읽었다.
“일 년 중 비 오는 날이 42일밖에 안 돼.” 그는 옆에 선 엘레나에게 말했다. “노바리아하고 평균 기온도 거의 비슷해. 인간이 살기 딱 좋아.”
엘레나가 대답했다. “노바리아는 추운 기후의 행성으로 인간이 살기에 딱 좋은 온도라고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현재 식민 행성의 도시들 중 인간이 살기 가장 적합한 온도를 가진 곳은 아벨론 행성의 뉴 오클랜드입니다.”
“나는 노바리아 기후가 제일 잘 맞아. 거기서 태어났으니까.” 도윤이 말했다. “이 습도 좀 봐. 네 관절에도 딱 좋은 이 습도를 좀 봐.”
“브레일 시의 기후는 도윤 님이 살던 노바리아의 ‘니아 예테보리’와 거의 비슷합니다.”
도윤의 눈이 희망으로 반짝였다. 그는 캠퍼스 사진과 브레일 시의 거리 사진을 더 찾아보았다.
“나 결정했어.” 그는 엘레나에게 말했다. “나 브레일 공과대학에 갈래. 거기 가서 너를 인간에 가까운 최고의 안드로이드로 바꿔 주겠어.”
“정말 훌륭한 목표입니다.” 엘레나가 말했다. “현재로서는 안드로이드를 인간에 가깝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기술은 점점 발전하고 있습니다. 도윤 님이 브레일 공과대학에 가는 것은 응원할 만한 의지입니다.”
오랜만에 도윤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