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지 마세요. 행성에 양보하세요
외계 행성에 ‘동물’이 발견될 경우 조사해야 할 항목에 대한 TEA의 매뉴얼은 매우 길지만, 간단히 요약하면 아래의 두 가지이다.
- 위험한가?
- 식량으로 쓸 수 있는가?
안타깝게도 우리가 아르카스에서 발견한 생물은 두 가지 다 해당하지 않았다. 밤에만 주로 활동하는 그 생물은 ‘레드 스트라이더(Red Striders)’라고 이름 붙여졌다. 빨간색 몸통에 다리가 달렸기 때문이었다.
그 생물은 정말로 ‘선명한’ 빨간색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에 모두 레드 스트라이더들에게 독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타이엔이 레드 스트라이더 개체를 잡아 독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기 전까지 우리는 그것들을 경계하며 멀리서만 관찰했다.
아르카스의 모든 것들은 다 뿌연 회색이었다. 하늘도, 바위도, 얼마 안 되는 흙과 바위 위에 낀 이끼조차도 회녹색이었다. 대기는 희박하고, 수분은 극소량이며 자외선은 상대적으로 강한 편이므로 광합성 조건이 최악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곳의 식물들은 엽록소 중심이 아니라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하도록 회색을 띠는 것으로 보였다. 에너지가 적은 행성에서 모든 생물은 다 ‘낭비하지 않는’ 쪽으로 진화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행성의 표면 위를 뛰어다니는 이 이상한 생물은 선명한 빨강을 띠고 있었다. 광합성 생물이 아니므로 색을 줄여도 이득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타이엔은 레드 스트라이더의 체성분을 분석해 보고는 이들의 빨간색은 아르카스의 암반과 이끼에 다량 함유된 철과 무기질 성분이 축적된 결과라고 결론을 내렸다.
레드 스트라이더의 붉은 몸은 낮 동안의 미약한 열을 최대한 붙잡고 있기에도 적합한 색이었다. 그것들은 낮에는 장파장인 가시광선 쪽의 흡수율을 최대한 높여 낮의 희미한 햇빛을 최대한 흡수한 다음, 밤이 되면 납작한 바위 위를 껑충껑충 뛰어다니면서 이끼나 지의류에 오징어 입처럼 튀어나온 이빨 없는 입을 밀착시켜 문질러 벗겨내듯이 흡착해서 섭취했다.
“귀여운데요?”
환한 별빛 아래 암반 위를 뛰어다니는 레드 스트라이더들을 바라보며 타이엔이 말했다.
아르카스는 밤이 낮보다 더 밝았다. 행성의 엷은 공기는 엄청난 별빛을 반사하지도 거르지도 않고 그대로 지상에 쏟아부었다. 뿌옇고 희미하던 아르카스는 밤이 되면 지구의 천문대에서 보던 별빛의 세 배는 됨직한 눈부신 별빛으로 환하게 밝아졌다. 이것은 지구나 데메트리아나 엘리시움 같은 대기가 두터운 별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환상적인 풍경이었다.
타이엔은 레드 스트라이더를 ‘깡총이’라고 불렀다. 토끼한테 붙이는 이름 아니냐고 누군가가 물었지만, 타이엔은 그냥 깡총이가 어울린다고 했다. 우리는 처음에는 웃었지만, 깡총이가 입에 붙어서 나중에는 우리도 다들 그것들을 깡총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성체 기준 약 30cm 정도 되는 깡총이들은 수수깡같이 생긴 유연하고 말랑말랑한 몸에 5-6cm 정도의 다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다리를 교대로 움직여 걸어 다니는 것이 아니라 점프해서 뛰어다녔다. 0.6-0.7G 정도 되는 저중력 행성에서 특별히 장애물도 없는 평평한 지대를 움직인다면 굳이 걸어 다닐 필요는 없을 것이다. 뛰어다니는 것이 훨씬 빠르다. 발바닥은 납작하고 말랑말랑해서 안정적으로 착지하는 것을 도왔다. 나는 타이엔이 생포해 온 깡총이의 발을 만져보았다. 고무처럼 말랑말랑했다.
팔은 없었다. 팔을 쓸 일이 없어서인지 기다란 몸통에 희미하게 퇴화된 흔적이 보였다. 처음에는 깡총이들이 팔이 없는 것이 너무나 이상하게 여겨졌다. 위아래로 긴 생물이 뛰어다니면서 균형은 뭘로 잡는지도 의문이었지만 대체 팔도 없이 뭘로 먹이를 먹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기지 근처의 깡총이들을 관찰해 본 결과 – 우리가 근처에 있어도 피하지도 않아 망원경으로 관찰할 필요도 없었다 - 깡총이들은 먹을 때는 유연한 긴 몸을 굽혀 평소에는 얼굴 아랫부분에 수축되어 있던 주둥이를 쭉 내밀기만 하면 되었고, 긴 몸의 아래쪽에 무게중심이 있어 넘어질 듯 말 듯 옆으로 기울어도 바로 몸이 일자로 돌아왔다. 그래서 팔도 필요 없었던 것으로 보였다. 만약 처음 깡총이들이 아르카스에 나타났을 때 팔이 있었는데 쓰지 않아 퇴화된 거라면, 깡총이들은 의외로 엄청나게 오래 살아온 생물임에 틀림없었다.
타이엔이 깡총이들을 귀엽다고 생각한 것은 그것들이 깡총깡총 뛰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깡총이들의 얼굴에는 엄청나게 큰 눈이 달려 있었다. 얼굴의 70%가 눈일 정도로 크고 둥근, 흰자위 검은자위까지 구분되어 마치 또롱또롱한 인형 눈알 같은 커다란 눈이었다.
아마도 아르카스의 희미한 항성 때문에 광량 수집 면적을 최대화하다 보니 눈이 점점 커진 거라고 우리는 추측했다. 선명한 빨간색을 띠고도 잘 살아있는 걸 보면 포식자나 천적은 없는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이 크다는 것은 세밀한 식별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환경 감지 목적이 더 클 것이다. 그 큰 눈알을 굴리며 깡총이들은 별빛 아래에서 이끼를 찾아 뛰어다니고, 낮에는 볕이 잘 드는 바위 위에서 하루 종일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래서, 먹을 수 있다는 거예요, 없다는 거예요?”
노아가 물었다.
“몸에서 눈알 빼면 작대기 하나 남는데, 뭘 먹겠다는 거예요?” 타이엔이 대답했다.
“눈알 국을 끓이든지… 몸통은 데쳐서 무쳐 먹든지…”
“먹으면 안 돼. 철분 중독 걸려.”
로렌츠 대장의 한 마디로 깡총이들이 우리 식탁에 오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외계 생물을 함부로 먹는 것은 TEA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기도 했다.
아르카스에 기지를 꾸린 지 3일째 되던 날, 로렌츠 대장은 TEA에 깡총이에 대한 보고를 이렇게 올렸다.
‘소량의 단백질과 섬유질, 다량의 철분 함유. 식량이나 자원으로 쓸 가치 없음.’
아직 식물과 수자원 조사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TEA는 실망하지 않았다. 로렌츠 대장과 마그달레나, 그리고 나는 혹시나 해서 저고도용 셔틀을 타고 혹시 우리가 착륙한 곳 말고 다른 곳에 물이나 식물이 더 많은 곳이 있는지를 샅샅이 뒤졌다.
“행성 표면에 적긴 해도 수분이 있으니 지하수가 흐르는 곳이 있을지도 모르지 않나? 그리고 표면에는 이끼류밖에 없어도, 지열이 있어서 어딘가 식물이 더 밀집한 곳이 있을 수도 있지.”
그러나 궤도를 돌면서도 보이지 않던 곳이 갑자기 새로 나타날 리는 없었다. 결국 우리가 처음 착륙해서 기지를 세운 적도 지역이 그나마 이 행성에서 가장 식물이 밀집한 곳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TEA는 예정대로 탐사를 계속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