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원하는 것을 하나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세라비: 장하다 라를르의 딸》은 장편 소설입니다.
◆ 캐릭터 소개
◆ 처음 오신 분은 1화부터 읽어 주세요.
스칼하븐 대사인 아스트리드 스티예르네빅은 스칼하븐 왕가의 일원인 구스타브 스티예르네빅 제독의 아내였다. 그녀는 스칼하븐 사람답게 키가 크고 광대뼈가 살짝 도드라진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게로스를 “저런 정치꾼 정말 질색이야.”라고 말하곤 했지만, 그가 똑똑하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기의 먼 친척이 되는, 감정적이고 직진형인 라그나 공주가 그 정치꾼에게 너무 집착한 나머지 7년 동안이나 결혼도 안 하고 그만 바라보고 있는 점을 매우 우려하고 있었다.
역사적으로 두 나라의 군주가 결혼하는 일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 두 나라의 동맹은 강화되었을지 몰라도 실제로 그 두 나라의 국왕과 여왕이 상징적인 부부가 아닌 진짜 부부로 생활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하물며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칼베르와 스칼하븐은 더더욱 그것이 불가능할 것이었다.
그래서 칼베르에서는 라그나와의 국혼을 두 나라의 병합으로 보고 거절하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국력이 약한 칼베르가 흡수될 가능성이 더 컸기 때문이다. 라그나의 어머니인 에르다 여왕은 칼베르를 욕심내고 있었기 때문에 딸의 국혼을 적극 지원하며 같은 목적으로 덤벼드는 오스틴과도 기꺼이 싸우고 있었다.
상징적인 부부든 진짜 부부든, 라그나는 게로스만 가질 수 있다면 상관없는 듯했다. 게로스에게 집착하는 라그나가 과연 칼베르 왕비와 스칼하븐의 여왕 역할 두 가지를 다 해낼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스트리드도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칼베르에서 국혼을 수락한다고 했을 때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게로스가 마음을 바꿔 라그나를 선택하기로 한 게 아니라 오스틴에 두들겨 맞고 당장 급하니 이렇게 하는 것일 테니까.
하지만 어쨌거나 그것은 본국이 원하는 것이었으므로 아스트리드도 그에 따라야 했다.
“피난 가는 사람을 붙잡을 정도로 긴급한 일이신 거겠죠?” 아스트리드는 접견실에 들어온 게로스에게 말했다.
게로스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대사님께서 빈 손으로 귀국하시는 것보다 더 환영받으실 겁니다.”
아스트리드는 불쾌한 심정으로 그가 문서를 꺼내는 것을 바라보았다. ‘이런 상황에 조차도 저따위 태도라니. 지금 저게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는 사람의 자세가 맞나? 저 오만한 인간, 정말 싫다.’
게로스는 국혼 수락 문서에 조용히 서명했다. 국왕의 인장으로 밀봉된 봉투에는 ‘왕의 고결한 뜻’이라고 알티스 문자로 적혀 있었다. 곧이어 게로스가 방금 서명할 때 사용한 왕가의 보석이 박힌 펜과 올리브 잎을 새긴 브로치가 푸른 벨벳으로 감싼 상자에 담겼다.
“신부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군요.” 게로스가 여전히 엷은 미소를 띤 채 말했다. 아스트리드의 눈에는 이미 라그나가 그것을 받아 들고 기뻐 날뛸 모습이 그려졌다.
“공주님이 매우 기뻐하시겠군요.” 그녀는 불쾌한 어조를 숨기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아마 직접 함대를 끌고 찾아오실 겁니다.”
“대사님, 저희가 스칼하븐까지 안전하게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가시죠.” 세드릭이 말했다.
아스트리드는 세드릭을 따라 접견실을 나서며 생각했다. ‘에르다 폐하와 라그나 전하는 원하는 것을 하나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것을 빨리 전달할 수밖에 없군. 칼베르가 망하지 않고 남아 있어야 공주님이 이 나라 왕비가 될 테니.’
생토네르는 칼베르의 끈질긴 저항에도 불구하고 칼베르와 오스틴 양측에 큰 피해를 남긴 채 결국 오스틴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다. 파렌베르크에는 대피령이 떨어졌다.
오귀스트 대공은 생토네르에서 오스틴을 필사적으로 저지한 덕에 파렌베르크가 준비할 시간을 많이 벌었다고 말했다. 루스카 용병부대가 파렌베르크 외곽에 배치되었으므로 수도가 넘어가는 일은 없을 거라고 그는 덧붙였다.
옆에서 듣고 있던 레이는 대공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생토네르에서 시간을 많이 벌었다고 하지만 아마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냈을 것이다. 그저 그들의 희생으로 오스틴의 발목을 조금 오래 잡는 데 성공했을 뿐. 전쟁은 이런 식으로 항상 숫자로 기록되었다. 100명이 싸워서 99명이 죽고 1명만 살아남아도 요새 사수에 성공하면 그 전투는 승리로 기록되었다.
대공이 돌아간 후 레이는 자기 방에서 생토네르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침울하게 앉아 있었다. 고개를 드니 어느새 세라비가 와 있었다.
“노크 좀 하고 들어오세요.” 레이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세라비는 항상 그렇듯이 개의치 않고 말했다.
“레이, 왕자님이랑 레이첵을 부탁할게. 이카리아로 무사히 돌아갈 때까지 네가 잘 돌봐 줘.”
레이는 세라비가 무엇을 하려는지 깨달았다. “파렌베르크 가시려고요?”
세라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뭐 하러 가요? 게로스 폐하는 세라비 님을 버렸잖아요. 그 사람들 결혼식 들러리라도 서 주시게요?”
세라비는 화도 내지 않고 대답했다. “만나서 따귀라도 때려 주고 와야지, 그냥 있을 수는 없어.”
“세라비 님이 가서 무슨 도움이 될 것 같으세요? 아마 폐하도 이미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셨을 거예요.”
“레이, 난 도움이 되려고 가려는 게 아니야.”
레이는 세라비가 이미 결심한 것을 알고 체념했다. 그는 세라비가 아무것도 하기 싫어하면서 막상 뭔가에 꽂히면 누구의 말도 안 듣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가시더라도 왕자님한테 보고는 드리고 가세요. 안 그러면 근무지 이탈이에요.”
“근무지 이탈?” 세라비는 뭐 그런 게 다 있냐는 듯이 물었지만, 바로 일어나 플로르 왕자의 방으로 갔다. 레이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플로르 왕자는 세라비의 표정을 보고 무슨 말을 할지 알아차렸다. 그는 레이의 충성 서약을 받은 후 레이에 대한 분노는 거두었지만 세라비에게는 여전히 질투하고 있었다. 솔렌을 가지러 신전에 갔다가 실종돼서 4일 만에 발견된 게로스와 세라비가 그전과는 다른 사이가 되었음을 플로르도 눈치채고 있었다. 샤토 데쥬에서 돌아온 후 게로스가 세라비를 매일 찾아왔던 것이다.
세라비가 파렌베르크에 가면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까? 플로르는 질투의 감정은 잠시 접어놓은 채 생각했다. 게로스는 이미 가장 잘 훈련된 군대와 함께 있었다. 세라비가 가면 칼베르의 병력에 근소하게 힘을 보태는 것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잘못해서 오스틴에 붙들리거나 하면 게로스가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기 어려워질 수도 있었다. 즉 말 그대로 폐만 끼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세라비는 허락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었다. 플로르는 세라비가 이미 갈 준비도 다 끝내고 작별인사를 하러 온 것임을 깨달았다.
“가서 칼베르에 민폐만 끼치지 않을 거라고 자신하실 수 있나요?” 플로르가 물었다.
세라비는 자신이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플로르가 이렇게 말하는 바람에 놀랐지만, 이내 차분히 대답했다.
“전하, 저는 평균적인 성인보다 신체적인 능력이 뛰어나고, 템푸스 아르카에서 훈련도 받았습니다. 민폐만 끼치지는 않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칼베르 군의 훈련받은 병사 이상의 결과를 낼 수 없다면 가지 않으시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세라비는 플로르가 더 이상 징징거리는 소년이 아님을 깨달았다. 지금 당장 플로르가 이카리아로 돌아가서 왕위에 올라도 최소한 마르셀 13세보다는 나은 왕이 될 거라고 세라비는 생각했다.
“폐하…” 세라비는 저도 모르게 플로르에게 폐하라고 부르고 정정했다. “전하, 저는 가야 합니다.”
플로르는 한숨을 쉬었다. 아마 못 가게 막아도 세라비는 갈 것이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레이 님 좀 불러주세요.”
세라비는 영문을 모른 채 가서 레이를 데리고 돌아왔다. 레이는 왠지 예감이 좋지 않았지만 플로르가 시키는 대로 세라비를 따라왔다.
“가시려거든 레이 님이랑 같이 가세요. 그러면 허락해 드리겠어요.”
“레이는 여기 남아서 왕자님과 레이첵을 보호해야 합니다.” 세라비가 말했다. “저 혼자 가게 해주세요.”
“여기엔 군대가 있어요. 레이 님 없어도 이 사람들은 이카리아 왕자인 저를 지켜 줄 겁니다. 두 분이 같이 가셔서 게로스 폐하를 도우세요.”
레이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두 손을 꽉 쥐었다. 그는 아직 전쟁터를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버텨낼 수 있을지 확신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플로르에게 조건 없는 충성을 맹세한 몸이었다. 레이는 심장이 빨리 뛰는 것을 억누르며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젠 괜찮을지도…
플로르는 마침내 말했다.
“세르비카 양, 명령이에요.”
더 이상의 논쟁은 없었다. 레이는 방으로 돌아가 떠날 준비를 했다.
세라비는 레이첵에게 가서 상황을 알리고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으면 왕자님을 데리고 바로 브뤼메 산맥으로 들어가라고 일렀다. 레이첵은 세라비 누나가 죽으러 간다고 생각하고 눈물을 흘렸지만 임무를 반드시 해 낼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곧이어 레이와 작별인사를 하면서 레이첵이 더 큰 소리로 울었으므로 세라비는 왠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미안해. 나 때문에 너까지 가게 됐네. 중간에 나랑 엇갈렸다고 하고 돌아와 버려. 왕자님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은 이해하실 거야.”
“전 어차피 세라비 님도 죽지 않게 지켜드린다고 약속했잖아요?” 레이가 조용히 대답했다. “약속이고 맹세고 평생 동안 더 이상 하지 말아야겠어요.”
대공저의 마구간은 풀벌레 울음소리만 날 뿐 아주 조용했다. 세라비는 조용히 말 두 마리를 골랐다.
“가자.” 세라비가 속삭였다.
밤인데도 불구하고 파렌베르크로 가는 도로는 수레를 끌거나 마차를 타고, 또는 걸어서 트루아벨로 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러나 반대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은 세라비와 레이뿐이었다. 두 사람은 북쪽을 향해 말을 달렸다.
◆ Illustrations by Mabon de Forêt(AI-assis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