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는 바바리맨이 있었다
사람들은 영화를 보고 배경이 된 도시에 환상을 가진다.
뉴욕의 가을을 보고 뉴욕에, 노팅힐 보고 런던에, 어바웃 타임 보고 콘월에, 미드나잇 인 파리 보고 파리에, 로마의 휴일 보고 로마에...
그런데, 이런 로망과 환상은 가급적이면 동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보고 가져야 한다는 것을 나는 피렌체에 가보고 나서 알았다.
나는 '전망 좋은 방' 영화를 보고 피렌체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전망 좋은 방'은 1900년대 초반의 영국과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는 E.M 포스터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다. 이 영화는 모리스(크읍! 정말 죽여주는 영화다ㅜㅜ), 하워즈 엔드와 함께 아이보리-머천트 제작사의 E.M 포스터 시리즈 3대 영화 중 하나인데, 우리나라에는 아마 전망 좋은 방이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것 같다.
지낼 곳이 없어 피렌체로 간다고 하면 무슨 팔자 좋은 소리냐 하고 있을 테지만 나는 당시 정말로 지낼 곳이 없어서 떠도는 중이었다. 앞서 올린 글에서 얘기한 것처럼 뮌헨 공항의 남자 샤워실에서 깨끗하게 씻은 나는 비행기 지연 보상으로 받은 밀쿠폰으로 밥까지 잘 챙겨 먹고 3시간 뒤의 비행기를 타고 피렌체에 도착했다.
당시는 2000년 12월이었다. 이탈리아는 따뜻한 남쪽 나라인 줄 알았는데 그래도 겨울은 추웠다. 이렇게 추운데도 관광객으로 길 하나를 똑바로 걸어가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오토바이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귀가 터질 것 같았다. 도시 곳곳이 다 문화유산이라, 관광지역은 자동차는 들어오면 안 되고 대신 오토바이는 들어와도 된다고 했다. 그러니 사람도 가뜩이나 많은데 오토바이까지 부르릉부르릉 거리니까 정말 다니기 힘들었다. 아름다운 유적들을 감상하며 한가로이 거니는 피렌체 여행은 '전망 좋은 방'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현대의 피렌체는, 영화에 나온 것과 똑같은 그 멋진 건물들 사이사이에 엽서 같은 기념품 파는 장사꾼들과 토스카나 가죽제품들을 걸어놓고 파는 장사꾼들로 와글와글했다. 난 피렌체에서 가죽제품을 살 생각은 1도 없었고 물론 생각이 있었다 해도 돈이 없으므로 빨리 지나갔는데, "싸요 싸" 이런 말이 들리면 나도 모르게 "얼만디유?" 하고 돌아보게 돼서 참 곤란했다. 아 이놈의 팔랑귀. 인터내셔널 호구.
전망 좋은 방의 루시와 조지 에머슨이 강변 난간에 기대어 흐르는 아르노 강에 엽서를 흘려보내며(어허 강에 쓰레기를 버리면 우짜노...) 둘이 마주 보는 장면은 강둑에 기댈 곳이 없어서 볼 수가 없었고(뭔가 가득 있었다), 두오모는 공사 중이었다. 베키오 다리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오랫동안 감상에 젖어 있을 수도 없었다.
그래도 피렌체는 좋은 곳이었다. 왜냐면...
이제까지 내가 먹은 아이스크림들은 다 얼음 보숭이였다. 바나나 젤라또는 노란색이 아니었다! 회색이었다! 왜냐면 바나나는 진짜로 공기가 닿으면 회색이 되니까! 나는 그 추운 겨울에 젤라또로 끼니와 식사와 간식과 디저트를 대신하며 피렌체 곳곳을 돌아다녔다.
당시 친구를 비롯한 모든 이태리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휴가를 준비 중이었다. 오랫동안 쉬어야 하니 일도 좀 많은 듯싶었다. 연말이라 걔네들도 연말 회식을 했다. 나는 친구네 회사 연말 회식에도 갔다. 외국인 친구가 왔다는 걸 알고 데리고 오라고 했던 것이다. 물론 그들은 영어를 한 마디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맛있는 음식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어느 날은 친구와 친구의 친구 그리고 그들의 여친들과 함께 차를 타고 산지미니아노(전망좋은 방에서 래비시 양(소설가, 루시와 조지 얘기를 소설에 무단 차용)이 이런 관광지 말고 이태리의 시골 마을과 지방 도시를 가야 진정한 이태리라며 예를 들 때 말한 곳이다)에도 갔다. 단언컨대 이태리에는 볼 것도 많지만 음식이 정말 최고였다. 이것은 내가 당시 영국(맛없는 것을 못 먹는 사람들은 차례로 멸종해서 지금의 영국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무튼 피렌체, 공사 중인 두오모를 포함해서 관광지 유명 스팟들을 돌아다닌 다음, 친구가 가보라고 적어준 식당들과 젤라또 가게들을 탐방하고는 이제 피렌체 전망이 내려다보인다는 미켈란젤로 광장으로 향했다.
광장으로 가는 길을 지도에서 찾아 걸어갔다. 그렇게 사람이 많은 피렌체 시내에 이렇게 조용하고 한적한 곳이 있다니 참 신기하다고 생각하면서 걸어가고 있는데, 길에 웬 아저씨가 서 있었다.
아저씨는 나를 보고 손짓을 하더니 가까이 와서 뭔가를 보여? 주었다.
뭘 팔려고 그러나? 하고 가까이 다가간 나는, 너무나 놀랍고 혼란스러워서 내가 보고 있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당시 여행 좀 여기저기 다녀 봤다는 자만심으로 앞에 뵈는 게 없는 젊은 인간이었다. 에딘버러에서 새벽 2시까지 여는 술집에서 사장님이 나가라고 할 때까지 술을 마시다가 밖에 나와서 그 추운 나라에서 밤에 비를 맞고 있는 홈리스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다니는,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겁대가리 상실한 인간이 바로 나였다(지금은 세상 무서운 줄 알아서 그런 짓 안 한다). 그래서 당시 바바리맨을 만났을 때의 나의 심정은 공포 같은 게 아니라 그냥 '놀라움'이었다.
"아니, 이럴 수가! 바바리맨이...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니었단 말이야?"
그리고 그 놀라움은 이내 분노로 바뀌었다. 이게 무슨 분노인가 하면 좀 설명이 어려운데, 나는 대한민국에서 여중 여고를 나온 사람이기 때문에 바바리맨 따위는 이미 놀라운 존재? 가 아니었던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여중여고를 나온 사람이라면 바바리맨을 보고 소리를 지르는 것은 처음 한두 번뿐이고 나중에는 "아이고 추운데 고생하시네" 하며 그냥 떡꼬치 사 먹으러 가는 그런 자세를 가지고 있음은 물론이며, 못 보던 바바리맨이 나타나면 구역 분쟁 일어날까 봐 걱정까지 해주는 여유마저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날 피렌체의 바바리맨을 보았을 때에는 내 마음에는 공포보다는 놀라움(아 이거 우리나라만 있는 거 아니네) --> 분노(지금 감히 내 앞에서?)의 감정이 생겨났다.
바바리맨... 아니 피렌체의 추운 날씨에 고생하시는 그분은 내가 비명을 지르거나 도망치지 않고 자기를 빤히 쳐다보고 있자 내가 자기를 못 알아봤다고 생각했는지 조금 더 짜자잔~ 하고 자신을 표현했다. 나는 더욱더 화가 났다. 내가 너 따위를 알아보고 도망을 갈 거라고 생각했냐?
그래서 나는 (한국말로) 그 애쓰시는 분을 향해 외쳤다.
"야! 너 같은 놈 한국에도 졸라 많아!"
아직 K-POP 이 융성할 때가 아니어서 그런지 그분은 내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아저씨가 대답이 없으니 나는 어서 전망을 보러 가던 길을 갔다. 그분은 내 환대가 아쉬웠는지 몇 걸음 따라왔다. "칭칭칭!" 하는 걸 보니 내가 옆 나라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분은 몇 발자국 떨어져서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아저씨가 이 추운 날씨에 밖에서 고생하는 게 안타까워서 "아 나 중국사람 아니라고!" 하고 한국말로 외쳐 주었다.
안타깝게도 그분은 그 말도 못 알아듣고 계속 따라왔다. 문제는 이제 계단을 올라가면 광장이 나온다는 사실이었다. 광장 위에는, 나중에 올라가 보고 알았지만 대만 일본 관광객들을 실은 관광버스가 열몇 대가 와서 서 있었다. 거기는 사진 찍는 스팟이므로 다들 내려서 피렌체 전망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찍고 또 찍는 중이었다.
애쓰시는 분은 자기가 그 계단마저 올라가면 어떤 신세가 될지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었다. 여기야 인적이 없으니까 자기가 자신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지만, 수십 명의 관광객들이 서 있는 광장에 올라가서도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끝까지 고수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솔직히 궁금했다. 내 뒤를 따라 이 계단마저 올라와 저 수십 명의 다국적 관광객들 앞에서도 네가 그러고 있는다면, 진짜 네 패기 인정하지 않을 수 없고 우리나라 바바리들에게도 니들 선생님으로 모실 분이 나타났으니 어서 피렌체에 가보라고 얘기해 줄 참이었다.
그 러 나...
그는 계단을 흘끗 바라보더니, 도로 오던 길로 돌아가 버렸다.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포기해야만 했던, 정말로 안타까운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광장에서 피렌체 사진을 찍고, 사진 찍는 인간들도 찍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려고 아까 왔던 길로 도로 내려갔다.
애쓰시는 분은 아직도 그 길 중간쯤에 서서 누군가가 자신을 알아봐 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옆을 지나갔지만 그 양반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무래도 아까 전의 나의 소극적인 환대에 크게 실망한 것 같았다.
나는 집에 돌아와 친구에게 그 얘기를 해 줬다. 친구는 "내가 그 길 가지 말라고 했는데 왜 갔어?"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걔가 미켈란젤로 광장 갈 땐 어디 어디로 가라고 말해줬던 것 같았다. 귀담아 안 들은 게 잘못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후로도 피렌체를 떠올릴 때면 그 추운 피렌체의 12월에 누군가 자신을 알아봐 줄 사람을 기다리며 그 길에 서 있던 외국 바바리맨의 쓸쓸한 모습이 같이 떠오르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