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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부자 Dec 21. 2024

직장동료들과 마지막 자리에서

욕심이 내 잠재의식을 넘기 전에 더 높은 울타리를 쌓아야 한다.

팀원들이 간단한 송별회 자리를 만들었다. 수성구청에 위치한 중식당에 예약을 했다고 해서 집에 차를 두고 지하철로 이동을 했다.코스요리로 주문을 하고 중국 음식이니까 연태 고량주 두 병에 소주 약간을 마시며 직원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누구나 이런 상황에서는 시원섭섭하다는 표현을 쓸 것 같다. 이 중 한 명은 나와 16년을 함께 일해왔으며 그의 첫 조직의 리더가 나였으니 정말 오래도록 함께 일한 친구다. 그 친구의 성공에 내가 더 많은 도움이 되질 못하고 떠나는 것이 너무 아쉽지만 내 능력의 한계이니 그저 미안하다고 수고했다는 말뿐 해줄 말이 없었다. 건강들 하라고 그리고 오래도록 잘 버티라고 버티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흔하디흔한 말들은 하지 않기로 했다.


사방이 막힌 방에 흐릿한 조명 아래서 쓴 술잔을 부딪치며 하는 남자들의 건배 소리가 오늘은 어색한 분위기와 함께 어우러져 이 공간에서 메아리처럼 계속 귓가에 맴도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속된 말로 잘린 것도 아닌데 분위기가 왜 이렇게 침울할까? 불편한 자리였다. 그렇다고 아쉽고 서운한 그런 분위기도 아닌 아주 묘한 분위기 속에 맛있는 요리들의 맛을 모른 채 술만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일이 평일이기 때문에 직원들은 운전을 해야 해서 많은 술을 마시지 못하는 것과 한동안 계속된 술자리에 피곤한 것이 겹쳐서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악수를 하고 고생했다는 인사말을 나눈 뒤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송별 선물이라고 직원들이 선물한 꽃다발과 양주 한 병을 손에 들고 인적이 드문 지하철 플랫폼에 앉아서 생각을 했다.


어떤 조직이나 직장에서 오래도록 리더로 일을 하다 보면 매너리즘이 오기도 하지만 착각에 의한 자신감이 찾아오는 시기가 있는 것 같다.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 꼭 회사가 아닌 나와 일한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이 찾아오는 것 말이다. 직원들이 나를 보고 일한다는 이 엄청난 오해와 자신만의 착각 속에 빠지게 되면 감당하지 못할 치명적인 실수를 하게 된다. 바로 욕심에 기반한 선택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순간부터 거침없이 커지는 착각의 불길을 잠재울 수 없게 된다. 나 없으면 이 회사는 어쩔까? 쓸데없는 생각이 쌓이다 보면 극단에는 나 없으면 이 회사는 망할 것이라는 생각의 끝에 다다르게 된다. 그리고 그 마지막에 기다리던 내 욕심이 내 맘속에 활화산을 터뜨리며 불길을 더욱 크게 만든다. 


사장님과 단판을 지어볼까? 팀원들이 회사가 아닌 나를 보고 일하고 있는데 나에 대한 처우가 개선해 달라고 만약 내가 퇴사를 한다면 최소한 팀원 중 몇 명은 나와 함께 조직을 퇴사하고 다른 일을 찾아볼 것이고 그렇다면 회사의 미래가 불투명 해질 것이다.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자리를 잡게 된다. 종국에는 이럴 바에는 나를 보고 일하는 이 친구들을 이 답답한 회사에서 벗어나게 해주기 위해서 내가 독립을 해서 회사를 차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내가 독립을 한다면 아마도 다수는 나를 따를 것이다.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부딪치게 되면 주변의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지도 묻지도 않게 된다. 그리고 나중에 서야 알게 된다. 이 모든 것이 나만의 착각이었다는 것을… 직원들이 나를 보고 일한 것이 아니라 회사를 보고 일한 것이며 나는 그저 이들과 함께 일했던 동료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한때는 나도 그런 착각 속에 살았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런 감정을 생기지 않았다. 요즘 독서를 좀 해서 그런지 인생을 살면서 알아야 할 제일 중요한 한 가지를 머릿속에서 잊지 않으면 그런 어처구니없는 착각이 불러오는 매너리즘을 차단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을 알라” 말이다.


아마 내가 몇 년 정도 더 근무를 했다면 충분히 그런 착각을 할 수 있는 시기가 올 것이란 것을 난 안다. 그리고 내 잠재의식 속에 숨어서 내 신념을 무너뜨리기 위해 숨어있는 욕심이란 녀석이 살고 있는 것도 안다. 아직은 나 스스로가 그 녀석을 잠재의식 깊은 곳 어두운 울타리 안에 가두고 있지만 언젠가는 그곳을 벗어나 나를 잠식할 때가 올 것을 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그 울타리의 벽을 높이 쌓아 그 욕심이란 녀석이 나오지 못하게 만들려고 결정을 내린 것이다. 다시 한번 생각하지만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집에 오니 와이프가 아직 나를 기다리고 있다. 손에 들린 꽃다발과 양주병을 보더니 무슨 송별회 선물을 그런 걸 가져왔냐고 웃으며 핀잔을 준다. 뭐 쓸데없이 주는 상패보다는 훨씬 실용적이고 좋지 않으냐고 술김에 한마디 던지고 침대에 떨어지듯 쓰러져 잠을 청하며 하루를 마감했다. 그렇게 지난 몇 년간 가족보다 더 가족 같았던 친구들 과의 송별회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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