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희성 작가의 아름다운 책! 다 읽기 전까지 도저히 멈출 수 없었다.
백희성 -작가이며 건축 디자이너.
장 누벨 건축사무소를 비롯해 프랑스에서 10여 년간 건축가로 활약하였으며, 현재 KEAB 건축 대표이다. '기억을 담은 건축'을 모티브로 하여 사람들의 추억과 사랑으로 완성되는 공간을 만들고 있다. 지은 책으로 에세이 <환상적 생각>이 있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바로 '공간'이었습니다.
요즘 들어 하루의 4분의 3을 차지하는 제 방 서재, 이 작은 공간이 문득 답답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아침이면 같은 자리, 같은 조명, 같은 공기 속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해가 저물어도 여전히 같은 곳에 머물러 있는 기분. 공간이 나를 감싸는 것이 아니라, 나를 가두고 있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곧 겨울이 가고 봄이 오기 전에, 커튼을 바꾸고 바닥의 카펫을 정리하면서 서재의 분위기를 조금 바꿔볼까 하는 마음이 솔솔 피어올랐습니다.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하고 싶다기 보다는 지금 내가 있는 공간을 좀 바꾸고 싶었을 뿐이었고 그래서 혹시 공간에 관련 된 책이 있지 않을까? 하고 찾아보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공간과 건축에 대한 책을 찾아보니, 대부분 자격증 또는 인테리어에 관련된 전문 서적들이었습니다. 가볍게 읽을 만한 책을 찾다가 얼마전 어렴풋이 관련 책의 리뷰를 본 것 같은 기억이 났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두 분의 블로그 중 한 분 일 것이라고 나 확신했습니다.
늘 좋은 책을 소개해주는 두분 “여르미도서관” 아니면 ‘희망꽃’ 일 것이라고, 역시 제 예상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희망꽃”님의 블로그에서 서평을 찾을 수 있었고 전 주저없이 책을 선택 한 책이 바로 백희성 작가의 <빛이 이끄는 곳으로>였습니다.
서평과 제목에서 이미 제가 원하는 그런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공간의 미학, 자연과 조화스러운 건축물, 빛이 이끄는 시선등의 내용은 기술적인 것을 필요한 것이 아니라 감성적인 공간의 변화가 필요한 제가 원하는 책임을 확신하며 첫 장을 넘깁니다.
백희성 작가의 <빛이 이끄는 곳으로>는 건축가의 삶을 살고 있는 주인공 뤼미에르의 이야기다. 파리 중심가에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장소를 알아보고 있지만 그는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근 부동산에 저렴한 가격에 나온 집을 알아봐 달라고 했으나 그는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급하게 자신이 원했던 금액에 파리 중심가에 있는 매물이 나왔다는 연락을 받게 된다.
자신이 제시한 금액에는 도저히 구할 수 없는 파리 중심가에 위치한 오래된 주택, 집 주인은 피터 왈츠란 사람이며 그의 대리인을 통해 들은 집의 매입 조건은 질문에 통과해야 한다는 뜬금없는 조건에 주인공은 이 집에 대한 의문은 커져만 간다. 질문에 대한을 들은 대리인은 한 단계 나아가 집주인 피터 왈처는 현재 요양 시설에 있으며 그를 만나 직접 대화를 나누고 최종 결정을 하는 조건에 뤼미에르는 늦은 밤 요양원이 위치한 스위스 루체른의 기차에 오른다.
요양원에 도착한 뤼미에르의 눈에 들어온 요양원은 한눈에 보기에도 신비스러움이 가득한 곳이며 그곳에서 만난 원장과 환자 그리고 간호사들 또한 비밀을 간직한 것 같은 모습에 두려움마저 느껴진다. 피터 왈처만 만나서 이야기를 마치고 돌아가려는 주인공에게 원장은 피터가 현재 의식이 없는 상태이며, 언제 다시 의식이 돌아올지는 알 수 없다는 소식을 듣고 파리로 돌아가려 하지만 이미 늦은 시각 돌아갈 수는 없다.
그리고 무언가 비밀이 가득해 보이는 오래된 요양병원에서 뜻하지 않은 하루를 보내게 된 주인공이 병원 속 공간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는 여정을 함께 하며 책은 시작한다.
지금까지 세상에서 찾아낸 가장 아름다운 디자인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하늘'이다. 하늘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똑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한 번도 같은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사람들을 위로해 온 하늘이다.
다른 하나는 '생각'이다. 사람의 생각은 경계가 없고 끝을 알 수 없는 바다와도 같다. 그리고 그 생각을 잘 정제해 실현하면 위대한 작품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인간의 생각은 위험한 도구이기도 하다. 선악과처럼 잘 쓰면 이롭지만 잘못 쓰면 죽음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 116 page
미스터리한 비밀을 품은 병원과 오래된 주택,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흔적들. 이야기는 하나씩 열쇠를 찾아가는 과정처럼 전개되었습니다. 눈앞에 펼쳐지는 공간 속에서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고, 잊혔던 기억들이 빛을 따라 조용히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저는 주인공과 함께 그 문들을 열어 보며 그 속에 스며든 이야기들을 조심스럽게 따라갔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단순한 미스터리를 넘어 공간이 품고 있는 감정과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기억들이었습니다. 빛이 스며드는 창문 너머로 오래된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들이 쌓여 하나의 거대한 퍼즐이 완성될 때쯤, 저는 책을 덮고도 한동안 그 여운 속에 머물렀습니다.
백희성 작가의 빛이 이끄는 곳으로는 단순히 눈으로 보고 손으로 짓는 건축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이 책에서 건축이란, 머리로 보고 가슴으로 짓는 것에 가까웠습니다.
자연과 함께 숨 쉬는 건축물. 일상 속에서 스쳐 지나갈 법한 공간들이 빛과 만나 조화를 이룰 때, 얼마나 경이로운 자태를 드러낼 수 있는지를 작가는 섬세한 시선으로 포착했습니다. 그의 문장은 마치 햇살이 천천히 스며들 듯 독자의 마음속으로 들어와, 건축이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시간을 품고 이야기를 간직한 존재임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그가 묘사하는 공간에는 기술적 지식이나 경험을 뛰어넘는 감각이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 쌓아온 깊이와 통찰이 없다면 결코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죠. 빛이 머무는 자리, 그 빛이 만들어내는 그림자,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흔적까지, 작가는 건축을 단순한 형태가 아니라 감각으로 경험하게 만들었습니다.
책을 덮고 나니, 평범해 보였던 일상의 공간들이 조금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문득 창가로 스며드는 빛을 따라가 보고 싶어졌고, 그 빛이 닿는 벽과 바닥의 질감을 손끝으로 느껴보고 싶어졌습니다. 공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는 순간, 저는 비로소 ‘머리로 보고 가슴으로 짓는 건축’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습니다.
이 책에는 단 한 장의 사진도 없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면 머릿속에 선명한 이미지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왈처 요양원의 고즈넉한 풍경,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종탑, 빛이 쏟아지는 살롱 내부, 비밀의 문을 열 수 있는 작은 열쇠, 중세의 도서관, 파리의 주택을 오르는 낡은 계단까지, 마치 실제로 본 듯한 생생한 장면들이 펼쳐졌습니다.
빗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나무 실로폰 소리, 아나톨의 손길이 스쳐 간 흔적, 그리고 조용히 흔들리는 의자까지. 이 모든 것이 머릿속에 떠오를 때, 이 책이 단순한 텍스트가 아니라 하나의 공간이 되어 내 안에 자리 잡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사실 나는 누구보다 건축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27년 동안 건설 관련 회사에서 일하며, 거대한 빌딩부터 작은 전원주택까지 수없이 많은 현장을 다녔습니다. 땅을 파고 기초를 놓고, 철골이 세워지고, 마침내 건물이 완성되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모여들었고, 그렇게 도시가 형성되었습니다. 나에게 건축은 늘 그런 것이었죠.
그런데 빛이 이끄는 곳으로를 읽으며, 문득 부끄러움이 밀려왔습니다. 나는 정말 건축을 이해하고 있었던 걸까요? 지난 27년 동안 나는 그저 ‘눈에 보이는 건물’만 바라보며 살아온 것은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건설업을 그만두고 완전히 다른 분야에 관심을 돌리게 된 지금에서야, 나는 비로소 건축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건축은 단순히 공간을 만들어내는 기술이 아니라, 빛과 시간, 그리고 사람이 함께 어우러지는 하나의 ‘이야기’였습니다.
백희성 작가는 건축을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머리로 보고 가슴으로 짓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말을 되새겨 보니, 이제야 그 의미가 조금은 와닿았습니다. 건축이란, 우리가 그 안에서 어떤 기억을 쌓아가고,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는 이제야 건축을 다시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숫자로 계산된 도면이 아니라, 빛이 스며들고 시간이 머무는 공간으로서 말이죠.
이 책을 나에게 한마디로 평가하라면 난 망설이지 않고 말할 것입니다.
"아름답다, 이 책은 정말 아름다운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