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흐려진 세상에서 스스로의 존재와 삶
무라타 사야카
1979년 일본 지바현에서 태어났다. 다마가와 대학교 문학부 예술학과를 졸업했다. 어린 시절 ‘이야기’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도달할 수 없는 곳에 가보고 싶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2003년 <수유(授乳)>를 통해 군조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2009년 <은색의 노래>로 31회 노마 문예 신인상을, 2013년 <적의를 담아 애정을 고백하는 법>으로 26회 미시마 유키오 상을 받았다.
2016년 <편의점 인간>이 시대의 초상을 독특하고 재치 있게 담아냈다는 극찬을 받으며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고, 일본에서만 100만 부 이상 판매되며 무라타 사야카 신드롬을 일으켜 30여 개 언어로 번역되는 등 현대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이후로도 “소설은 내 신앙이자 계속될 실험”이라는 신념으로, 규격화된 삶을 강요하는 사회를 날카롭게 찌르는 상상력이 돋보이는 문체를 통해 정상성 바깥의 이질적인 존재들을 드러내는 작품들을 써왔다.
국내에 출간된 작품으로는 소설 <지구별 인간> <멀리 갈 수 있는 배> <살인 출산> <소멸 세계>, 에세이 <아 난 이런 어른이 될 운명이었던가>, 아시아 작가들과 함께 쓴 앤솔러지 <절연> 등이 있다.<신앙>은 현대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환기하는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 지구라는 사회, 다가올 미래에 대해 우리가 암묵적으로 믿어온 것들에 질문을 던지는 작품집으로, 단편소설 여섯 편과 에세이 두 편이 담겨 있다. 표제작 〈신앙〉은 2020년 셜리 잭슨 상 단편소설 부문 후보에 올랐다.
며칠 전 읽었던 책 <시대 예보: 호명 사회)에서 송길영 작가가 앞으로 닥칠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이 책 속에 담긴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태어나는 순간 자신의 생존율이 결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삶은 그 생존율을 높기에 위해 치열하게 투쟁하듯 살아가고 있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었습니다.
작가의 말을 듣고 잠시 책을 덮고 바로 장바구니에 이 책을 담았습니다.
자신의 생존율이 태어나는 순간 결정된다는 것의 의미가 어쩌면 소설 속의 허구적인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도 생존율이라고 표현하지는 않지만 다른 의미로 생존율을 대체하며 태어나는 것은 아닌지 또한 그 다른 의미의 늘리는 것에 삶을 소비하듯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졌습니다.
송길영작가의 이 책에 대한 언급은 몇 줄에 지나지 않았지만 내게 그 몇 줄은 너무나 큰 궁금증으로 다가왔습니다. 과연 자신의 생존율이 정해진다면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될지 무라타 사야키의 시선이 궁금해졌습니다.
무라타 사야카의 <신앙>은 여섯 편의 단편소설과 두 편의 에세이로 구성된 일종의 작품집입니다. 2018년부터 2021년에 걸쳐 각종 지면에 발표된 짧은 글들을 두 가지의 큰 줄기로 묶은 작품입니다.
신앙
완벽한 현실주의자로 살아가던 나가오카는 동창 이시게로부터 사이비 종교를 함께 창설하자는 황당한 제안을 받습니다. 그 자리에서 미지의 동창 사이카와를 만나 묘한 끌림을 느끼게 된 그는, 점차 자신의 신념에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현실주의에 지쳐 있던 나가오카는 결국 그들과 함께 미스터리한 세미나에 참석하며 새로운 세계로 발을 들여놓습니다.
생존
태어날 때부터 생존율이 등급별로 결정되는 미래 사회. 65세 이전에 사망할 확률이 높은 "D"등급으로 태어난 구미는, 친구들과 사회 구성원들의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점점 그녀는 이러한 삶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하고, 생존 자체가 철저히 관리되는 이 세계에 의문을 품게 됩니다.
토맥 윤기
세 명의 동성 친구와 동거하는 주인공은 전통적인 가족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려 합니다. 정자은행을 통해 아이를 갖기로 결심한 그녀는 임신 전 언니를 만나러 갑니다. 사회를 떠나 산에서 살아가는 "야인"이 된 언니와 하룻밤을 보내며, 그녀는 가족의 의미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관계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그들의 혹성에 돌아가는 일
무라타 사야카의 에세이 <그들의 혹성에 돌아가는 일>은 남들과 조금 다른 성격을 가진 사람이 사회에서 받는 시선을 다룹니다. 어린 시절, 저자는 주변과 자신이 마치 다른 행성에서 온 존재처럼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혹시 지구 어딘가에 외계인이지만 정체를 숨기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흥미로운 상상을 펼칩니다.
컬처 쇼크
"균일"과 "컬처 쇼크"라는 두 세계만이 존재하는 사회. 주인공은 모든 것이 동일한 형태와 사고로 유지되는 "균일"의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어느 날,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컬처 쇼크"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됩니다. 익숙한 질서가 무너진 그곳에서 주인공은 혼란과 공포를 느끼며, 자신이 알고 있던 세계의 틀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기분 좋음이라는 죄
무라타 사야카가 생각하는 "개성과 다양성"에 대한 깊은 고찰을 담은 에세이입니다. 어린 시절 "미친 무라타"라는 별명까지 들으며 남들과 다르게 살아온 저자는, 사회가 규정하는 정상과 개인의 독창성 사이에서 느낀 갈등을 솔직하게 풀어냅니다. 그녀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과연 진정한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쓰지 않는 소설
자신과 똑같이 생긴 클론이 일상을 대신해 주는 사회. 주인공은 다섯 개의 클론을 구매해 함께 생활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경계가 흐려지기 시작합니다. 결국 그는 클론이 자신의 자리를 완전히 대체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고, 이를 해결할 방법을 찾으려 하지만 점점 더 깊은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마지막 전시회
자신의 별이 사라지기 전, 그곳에 있던 어떤 존재를 숨겨온 주인공 K.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그는 우연히 멸종한 지구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홀로 남겨진 로봇 마쓰카타를 만나고, 마쓰카타는 인류가 사라지기 전 자신의 몸속에 "예술"을 보관해 지켜왔다고 말합니다. K와 마쓰카타는 언젠가 찾아올 새로운 생명을 위해, 잊혀진 예술을 세상에 다시 선보일 마지막 전시회를 준비합니다.
수험 전쟁에서 이기고
좋은 직장을 찾아 내내 돈을 버는 삶.
오직 생존율만을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나날.
이래서야 그야말로 생존율을 위한 인생이 아닌가 싶어
갑자기 싫증이 나버린 것이다.
생존 중에서 - 72 page
무라타 사야카의 『신앙』은 여섯 편의 단편소설과 두 편의 에세이를 통해 현실과 상상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흥미로운 작품집입니다. 그녀의 상상에서 탄생한 이야기들이지만, 읽다 보면 마치 우리의 현실을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질 정도로 강한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작품 속 주인공들은 모두 다채롭습니다. 극단적인 현실주의자, 생존율이 정해진 사회에서 의미 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 야인이 된 언니와 동성의 아이를 가지려는 사람, 지구인처럼 보이기 위해 애쓰는 저자, 완벽한 균일 속에서 살아가는 아이, 개성을 잠식당한 세상에서 ‘미친 사람’이라 불리는 저자, 인간의 삶에서 예술의 존재를 찾으려는 사람, 그리고 속임을 통해 믿음을 만들어내려는 사람까지.
이들은 모두 허구 속 인물이지만, 그들의 고민과 갈등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결국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 깨달음은 마치 현실을 마주하는 공포처럼 소름 돋는 경험을 선사합니다.
<신앙> 속 이야기들은 모두 허구이지만, 그 안에 담긴 문제의식은 현실과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는 점점 감성보다 현실을 선택하며, 부를 좇아 경쟁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개성을 잃고, 높은 빌딩 숲속 정해진 공간에서 살아가는 모습은 마치 균일한 사회 속 인간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이 책에는 두 편의 에세이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혹성에 돌아가는 일>에서는 저자가 어린 시절 겪었던 낯섦과 사회 속에서 느낀 이질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녀는 자신이 마치 다른 행성에서 온 존재처럼 느껴졌으며, 이 경험은 결국 그녀의 작품 세계에도 영향을 미쳤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정말 같은 행성에서 살아가는 존재일까?
또한, <기분 좋음이라는 죄>에서는 개성과 다양성에 대한 저자의 솔직한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미친 무라타’라는 별명을 들으며 남들과 다르게 살아온 그녀는, 사회가 규정하는 정상성과 개인의 개성 사이에서 느꼈던 갈등을 이야기합니다. 사회는 진정으로 다양성을 포용하고 있는가?
무라타 사야카는 이 작품을 통해 독자들에게 ‘우리는 과연 우리의 삶을 살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익숙한 세계가 전부인지, 정해진 운명에 순응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그리고 개성을 잃어가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깊이 고민하게 만듭니다.
이 책을 덮고 나면, 우리는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흐려진 세상에서 스스로의 존재와 삶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될 것 입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