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출장길에서 느낀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모래시계 속의 나 자신
어제부터 내린 비가 아침에도 내리고 있었다. 내린 비와 함께 찾아온 바람으로 인해 거짓말 같은 추위가 몰려왔다. 갑자기 찾아온 추위에 당황하며 집으로 다시 올라가 두꺼운 패딩 점퍼로 갈아입고 차에 올랐다. 자연스럽게 차량의 히터를 켜고 추위에 까칠해진 손을 히터 바람에 데운 후 출발했다. 어두운 새벽인 데도 불구하고 운전대를 잡은 손을 보니 까칠하고 하얗게 되어 있었다. 핸드크림을 꺼내 하얀 손을 매끄럽게 바르고 손보다 먼저 반응하는 달콤한 향기를 맡으며 생각했다. 진짜로 겨울이 왔다는 것을…
사무실에 도착을 하니 내리던 비가 서리 발로 변하고 있었다. 눈이라고 말할 정도도 아니고 그렇다고 우박도 아닌 그런 하늘을 한번 쳐다보니 사무실 앞 감나무가 이제는 정말 가지만 앙상하게 남아있었다. 뒤로 보이는 산에 알록달록 단풍이 들기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서릿발이 내리는 걸 보니 이제는 정말 가을은 짧게 스쳐가는 계절이 된 것 같다는 말이 실감 났다. 얼마 남지 않은 가을의 풍경을 눈에 넣고 출근을 했다.
뉴스를 보니 수도권과 중부지방은 대설주의보가 내려질 정도로 눈이 많이 왔다고 한다. 뉴스를 보고 얼른 창문을 열고 다시 한번 밖을 바라보았다. 생각해 보면 지금 대구에서 내리는 이 서리 발은 북쪽으로부터 내려온 같은 형질의 것이기 때문에 첫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게 올해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비록 수도권에 내리는 함박눈은 아니지만 퇴사 전에 이 공간에서 마지막으로 올 첫눈이 내리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마지막 출장을 다녀왔다. 프로젝트의 인수인계를 위한 자리다. 3년간 정말 내 모든 역량을 다해왔던 일이고 결과도 좋게 진행이 되고 있어서 홀가분한 자리였다. 함께 저녁을 먹으며 지난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쁜 추억보다는 좋은 추억이 더 많았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나도 그도 서로의 건승을 바라며 한잔 두 잔 마시다 보니 평소보다 많은 술을 마시고 말았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포옹을 하며 그와 작별 인사를 했다.
이제 이 거리에서 저녁을 보내고 이 호텔에서 잠을 자는 것은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니 아쉬운 감정이 들었다. 제법 많이 마신 술에도 불구하고 잠시 번화가를 걸었다. 인근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 사서 마시며 정신을 차리고 다시 오지 못할 거리를 눈에 넣었다. 한동안 매월 왔던 거리였는데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내가 늘 가던 식당만 갔기 때문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호텔에서 나와 맞은편 식당만을 다녀왔기 때문에 보지 못했던 많은 다른 식당과 가게들이 있다는 것을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알았다는 것에 후회를 했다.
그렇게 거리를 눈에 넣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남은 내 인생에서 오늘처럼 후회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동안 가보지 않은 다른 곳에 더 많은 그리고 더 좋은 식당들이 즐비해 있다는 것을 이제 다시 오지 못할 순간이 되어서야 알고 후회하는 그런 인생을 살지 말아야겠다.
27년을 늘 하던 대로 직장에서 주는 월급에 기대어 살며 모래시계 속에서 떨어졌다 쌓이기를 반복하는 일상을 살아왔지만 이제 그 모래시계 속의 세상에서 나는 빠져나와 먼 바닷가의 해변으로 가려 한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보지 못했던 더 많은 세상, 더 큰 세상을 향해 푸른 바다 물결에 몸을 실어 항해를 하려 한다.
마지막으로 온 출장을 마치고 술에 취한 상태에서 걸은 길목에서 바다를 향해 간다는 생각으로 마무리하는 뜻깊은 하루를 보내며 숙소에 들어와 잠을 청했다. 새로운 인생은 가보지 않던 다른 길에 더 좋은 곳이 많을 것이라는 기대를 꿈 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