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 간 다니던 직장에 마지막으로 출,퇴근을 했다.
사무실 앞 가지만 남은 나무에 얼마 전부터 까치가 들락날락하더니 까치집이 지어져 있었다. 그런데 오늘 그 까치집에 까마귀 두 마리가 있는 것이 보였다. 까치가 집을 짓고 까마귀에게 빼앗겼나? 하고 생각할 무렵 부부로 보이는 까치 두 마리가 맹렬히 까마귀들에게 달려들었다. 자신들 보다 훨씬 몸집이 큰 까마귀들에게 전혀 밀리지 않고 날개와 부리로 쪼이며 싸움을 시작했고 그 싸움은 금방 까치의 승리로 끝나고 말았다.
새들은 흔히 부리로 싸우는 줄 알았는데 몸집이 작은 까치가 날개로 까마귀의 날개와 머리를 공격하고 달려드는 모습이 너무 신기했다. 볼 수 없는 새들의 싸움을 보며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하는 행동은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유전자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내가 느낀 그 대단함의 끝에 드는 불안감 같은 것은 그 까치집에 과연 알 또는 새끼 까치가 있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혹시 까치들이 너무 늦어 까마귀들에게 이미 불상사를 당한 것은 아닐까? 직접 볼 수가 없었기 때문에 알 수는 없지만 부부 까치가 싸움에서 이기고 난 후 조금 앉아 있다가 어디로 날아가 버리더니 1시간가량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평소 같았으면 내일 다시 와서 보면 알게 되겠지만 나에게 오늘 이 장소에서 더 이상 내일은 없다. 이제는 평생 다시 오지 않을 장소라는 생각을 하니 더욱 궁금했지만 난 생각했다. 그래 이런 것 하나 정도의 궁금증은 가지고 가라는 하늘이 뜻인가 보다 하고, 그리고 가끔 여기 사무실을 기억하게 되면 오늘 보았던 이 신기한 광경을 떠올리라고 하늘이 주신 소중한 경험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내일은 김장을 위해 어머니 집에 가야 해서 연차를 냈기 때문에 실질적인 근무는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그렇게 다가오지 않던 11월의 마지막 퇴근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일부 개인적으로 꼭 연락해야 하는 고객들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 인사를 하고 이 회사에 남아 있는 나와 오랜 친분이 있는 고참들에게 전화를 걸어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본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인사를 했다. 대기업에서 정년퇴임을 하고 우리 회사에 3년 전에 초빙되어 힘든 시기 많은 역할을 해준 분이고 이 분으로 인해 임원이 CEO와 직원들 사이에서 어떻게 중립을 잘 지키며 효율적인 관리를 할 수 있는지를 정말 많이 배웠다. 물론 나는 거기까지 가지는 못하고 퇴사하지만 큰 도움이 되었다.
퇴근 30분 전 마지막으로 사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로밍 중이라는 안내 멘트가 나오는 것을 보니 외국 출장 중 이신 것 같아 끊으려고 했으나 잠시 기다렸더니 전화를 받으셨다. 다른 말하지 않기로 마음먹었고, 또 사실 이제 다른 말을 하고 싶은 감정 또한 사라진지 오래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덕분에 오늘의 제가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정말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 말씀 드립니다’는 짧은 인사를 드렸다.
아쉬운 목소리가 저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고맙다, 몸조리 잘 하다가 곧 다시 연락할 테니 괜찮아지면 꼭 복귀해라, 후배 직원들이 어려워하면 연락할 테니 꼭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다.라는 물음이셨다. 물론 거절할 이유가 없으므로 흔쾌히 그러겠다고 약속을 드렸다. 몇 번의 같은 말로 인사를 드리고 전화를 갈무리했다.
챙긴 짐을 모두 들고 초저녁 이미 어둠이 물려 들어 어둑어둑 해진 사무실에 켜져 있는 전등을 끄고 사무실 현관에서 고개를 돌려 내 책상을 바라보았다. 책상 위의 짐도 없고 덩그러니 높여진 접힌 노트북 만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무실을 향해 인사를 했다. “고맙다, 그동안 수고했다. 나와 함께 했던 의자, 책상, 컴퓨터, 서랍장, 책꽂이, 가위, 호치키스, 볼펜, 형광펜 등등등, 지난 15년간의 추억을 뒤로하고 떠나는 발걸음이 그리 쉽지 많은 않다는 것을 오늘 새삼 깨닫는 시간이었다.
불을 끄고 사무실 문을 닫고 보안장치를 경비로 바꾼 뒤 차에 몸을 실었다. 이제 정말 마지막 퇴근을 하는 시간이다. 27년간 쉬지 않고 일했던 내 인생과 바꾸었던 그 회사에서 마지막 퇴근을 한다. 감회가 새롭다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사무실 입구 앞에서 알짱거리던 길냥이들이 내 마지막 퇴근을 배웅하듯 내 차 앞을 쏜살같이 지나간다. 창문을 내리고 그 녀석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늘 무심코 지나치던 모든 물건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지게차, 놀이공원, 게이트볼, 고속도로, 음식물 쓰레기통, 강아지, 식당, 파출소, 중국집, 주유소, 등등 내가 단 한 번이라도 말을 디딘 모든 것에 작별 인사를 했다. 언젠가 어떤 이유로 이곳에 다시 오게 될지 모르지만 그동안 나에게 보여준 그 변함없는 모습들에 감사 인사를 나누며 서서히 공간을 빠져나왔다.
마지막 퇴근이라는 의미를 자꾸 되새기다 보니 그냥 집에 들어가면 좀 서운한 감정이 들 것 같았다. 그렇다고 인생 마지막도 아닌데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나 오늘 퇴직했어요라고 말하는 것도 우습고 해서 가족들과 외식 겸 간단한 퇴임 회식을 하기로 했다.
인근 식당에서 와이프, 딸, 막내와 함께 나의 퇴직을 축하? 위로? 중 어떤 것을 해주어야 하는냐고 묻는 질문에 당연히 축하를 해달라고 이야기를 하고 난 오늘 퇴근하는 것은 그동안의 묵은 일상에서 퇴근하는 것이고 다음 주 월요일부터는 새로운 내 인생으로 출근을 할 것 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가족들에게 말했다.
내일 아침 일찍 어머니 집에 가는 일정 때문에 적당한 반주로 마무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제법 사무실처럼 꾸려진 내 서재 의자에 앉아 오늘 하루를 정리해 본다. 많은 생각들을 했던 하루였는데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까치와 까마귀의 싸움으로 결정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