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23. 목요일의 회상

감사와 증오를 함께 선물 받은 50번째 생일

by 마부자

출장을 간다. 지난 출장 때 와이프의 이석증 때문에 다시 내려왔던 기억이 떠올라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빨리 도착하고 사전에 준비해 둔 자료들로 회의는 금방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쉬지 않고 내려와 최종 정리를 하고 보고 후 견적을 제출했다. 다음 주 미팅 일정까지 약속을 잡고 보니 어느새 시간이 3시가 넘어갔다. 본사에서 신사업 관련하여 담당 팀장이 교육을 한다고 내려와 직원들도 4시까지 모여 교육을 받고 회식을 하기로 했다.


신입 사원이 대구 필드에 복귀한 지 2개월이 지났는데 아직까지 환영회 비슷한 것도 하지 못해서 겸사겸사 교육을 마치고 집 근처의 식당을 예약하여 술자리를 가졌다. 다들 분위기가 좋아 보여 다행이다. 본사에서 직원이 내려왔을 때 보통같이 술자리를 하고 나면 본사 누군가에게 분위기를 전달한다.


그럴 때 안 좋은 소리가 들어가면 나중에 꼭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원래 분위기가 안 좋았다'는 둥 이상한 뒷말들이 나온다. 일부러 분위기를 좋게 조성하려고 하지는 않았으나 팀원들 모두 활기찬 모습에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기는 했다. 물론 내 생각뿐일 수도 있겠지만 지내온 경험을 고려해 보면 나쁘지 않은 분위기의 술자리라 좋았다.


"생일..... 오늘 생일이다. 나이 먹고 생일 챙기는 거에 의미 없이 지내는 거라고 생각하기에 조용히 지낸다. 와이프가 쓰러지고 병원에 있으면서 모든 SNS의 생일 알람을 꺼놓았더니 정말 조용히 생일을 보냈다. 조금 아쉬운 감정이 살짝 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잠시였다. 오늘 출장에서 오는 길에 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렸다.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말씀드렸더니 축하한다고 하기며 식구들하고 저녁이라도 먹으라고 용돈을 보내주신다고 한다. 뭐, 내가 그 정도 필요 없다고 할 수도 있으나 어머니가 주시는 마음을 봐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전화를 끊으려는데 어머니가 말씀하신다.'고마워 아들, 난 아들 때문에 살고 있어. 내 아들로 태어나서 너무 고마워'라고 하신다. 뭐 잘해드린 것도 없는데 고맙다는 어머니의 말에 마음이 울컥하며 더 신경 써드려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51년의 생일날 중 가장 조용한 생일이었지만 기억에 남는 하루였다. 오늘 본사 팀장이 내려오면서 두 통의 편지 봉투를 나에게 준다. 하나는 생일을 맞아 회사에서 나오는 상품권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정말 열어보고 싶지 않은 편지였다. 발신지가 충남 공주 법무 의료법인... 그의 편지다. 한동안 안 보내더니 다시 시작했다.


삐뚤삐뚤한 글씨체에 회사 이름도 잘못 쓴 편지를 뜯으면서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그냥 열어보지 말고 버릴까도 생각했지만 나도 모르게 편지를 보게 된다. 회사에 창피하고 정말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건만, 왜 이걸 직장으로 보내는지 집 주소도 다 알면서 화가 난다. 일부러 그러는 거다. 회사로 보내면 누군가 볼 거라고 생각하고 힘들어하라고 일부러... 그러니 더 밉다.


아직도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고 괴롭히려고 작정하는 이런 행동들을 하는 것 자체가 너무 싫지만 끊어 낼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이 더 마음 아프다. 편지 내용을 읽으면서 피가 거꾸로 솟아오른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내용이 안 좋다. 그곳 생활이 힘들겠지만 그래도 좀 치료가 되는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은가 보다. 예전 같았으면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올라 흥분하고 얼굴이 벌게진 정도로 울그락불그락했을 텐데 이제는 나도 이골이 났는지 별로 감흥이 없다. 이 사람이 아파서 헛소리를 하는구나라고 치부하고 넘겨버렸다.


생일... 내가 태어난 날... 아는 사람들은 말한다. 생일 축하해! 이 의미가 뭐지? 태어나서 축하한다는 말이다. 두 사람이 결혼을 해서 사랑을 하고 그 징표로 태어난 나다. 그리고 나를 아는 사람들은 축하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내가 태어날 수 있게 만든 두 사람이 오늘 나에게 전혀 다른 날은 선물해 주었다. 한 분은 태어나서 고맙다고 하고, 한 사람은 왜 태어나서 힘들게 하느냐고 하는 참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생각했다. 나는 절대로 이렇게 살지 말자고, 내가 낳은 아들과 딸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자고.

그리고 내가 원해서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내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다. 그러니 나만큼은 내 자식들에게 이런 고통을 주고 싶지 않다. 절대로 절대로. 그리고 내가 사랑해서 만난 와이프와 평생을 함께 웃으며 살자고...

keyword
작가의 이전글24.12.18.수요일의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