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대한제국은 '저작권령'을 공포했다.
대한민국에 창작자의 권리를 지키는 약속이 처음으로 등장한 순간이었다.
그것은 세상을 바꾸는 목소리였다.
10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나는 조용히 노트북 앞에 앉아 있다.
수십 번 고쳐 쓴 짧은 문장을 올리기 위해 긴 시간을 보낸다.
내가 고민한 시간 만큼은 바라지도 않는다. 순간의 짧은 눈흘림으로 스쳐 지나가듯 보아도 좋다.
다만 그 짧은 시간에 나와 공감을 같이 하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사실.
난 그 사실만으로도 기쁨에 겨워 글을 쓴다.
세상에 누군가에게 작게 나마 울림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도 조금 담아가면서...
하지만 세상은 바뀌었다.
수없이 많은 시간 고민하며 써 내려간 글은 이제 클릭 한 번으로 복제된다.
거대한 정보의 세상에서 데이터 파도라는 물결을 타고 넘실 대며 세상의 컴퓨터 속으로 복제된다.
그리고 내 창작의 시간은 파도가 부서지듯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이제 우리에겐 파도가 아니라 AI라는 쓰나미의 물결이 밀려오고 있다.
AI가 인간의 창작물을 학습해 단어로 조합된 글을 만들어내는 시대에 우리는 또 다른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창작자는 작품을 세상에 내놓지만 그 결과물이 본인의 의도와 다르게 부서지고 조합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복제되고 왜곡되는 위험 속에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가 더 걱정해야 할 것은 복제가 아니다.
바로 인간이 인간을 믿지 못하는 세상이 도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도래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독자들의 판단 하나로 진심을 담은 창작물도 순식간에 복제품처럼 취급되는 현실이 도래했다.
이는 얼마전 내가 직접 경험한 사례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얼마 전, 나는 스레드에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짧은 감상문을 올렸다.
책을 덮은 뒤 남은 여운을 서툴지만 나름대로 내 단어들로 담아냈다.
그런데 돌아온 댓글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책도 읽지 않고 그냥 챗GPT로 돌렸구나. 책 좀 읽고 쓰지 그랬냐."
순간, 내가 쓴 글이 내 것이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내 글은 AI가 작성한 글이 되어버린 것이다.
과연 누가 내 창작물을 한 순간에 그렇게 만든 것일까?
내가 소비한 수많은 시간이 파도처럼 부서지는 순간을 경험했다.
내가 진심을 담아 쓴 문장들이 누군가에게는 단지 AI가 뱉어낸 복제품처럼 보였다는 사실.
만약 내 글이 그렇게 가볍게 여겨진다면 그들은 내 글을 죄의식 없이 복제하고 공유하고 왜곡할 것이다.
그렇게 저작권은 깨진다.
창작자는 사라진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저작권을 다시 생각하게 된 이유다.
저작권은 단지 글과 그림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다.
그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인간'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약속이다.
그리고 나는 그 약속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시 글을 쓰기로 했다.
그러나 나는 가끔 아니 계속 두려워진다.
내가 몇 시간을 고민해 쓴 문장이 인정받지 못하는 것도 그리고 몇 초 만에 복제되어 흩어지는 것도.
누구도 내 이름을 기억하지 않은 채 내 이야기가 AI라는 이름으로 둔갑해 떠돌게 될까 두렵다.
AI는 인간의 단어를 조합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느끼며 찍어왔던 머릿 속의 사진들을 바탕으로 손끝으로 전해지며 써 내려간 글들은 만들 수 없다. 바로 그것이 AI에게 창작이라는 말을 쓸 수 없는 이유다.
AI에게 창작자라는 수식어를 만들어주는 것은 누구인가? 바로 인간들이다.
자신들의 욕망을 기계라는 바람을 이용해 창작의 물결을 파도로 부숴버리는 것이 인간들이다.
그리고 새로운 물결에 자신들의 이름을 담아내는 것은 AI가 아닌 바로 우리 자신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작권은 단순히 지켜야 할 선의의 약속이 아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사유의 능력을 보존하기 위한 생존의 법칙이다.
저작권은 나를 지키는 약속이자 세상을 지키는 규칙이고
인류의 생존을 지키는 법칙이 되어야 한다.
나는 오늘도 조심스럽게 키보드를 두드린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오직 나만의 마음을 담기 위해.
복제할 수 없는 진심을 담아 나는 다시 쓴다.
그리고 나는 바란다.
누군가의 글을 공유할 때 그 이름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마음을 담아 만든 작품을 볼 때 '이건 누가 만들었을까?' 하고 물어보는 세상이 되기를.
우리가 작은 존중 하나부터 시작할 때 저작권은 법이 아니라 사람을 지키는 문화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