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 32일차, 항암 5회, 방사선 치료 22회.
입원 32일차, 항암 5회, 방사선 치료 22회.
지난 5월 말, 52년의 삶을 살면서 단 한 번도 마주해본 적 없던 어두운 존재가 내 몸속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6월 30일, 아내와 딸과 함께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SRT에 올랐던 순간을 떠올린다. 한 달 동안의 치료를 과연 잘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막막함 속에서 시작된 7월이었다.
하지만 7월의 마지막 날, 낯설던 병실의 창가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와 매미 울음은 이제 내 아침을 깨우는 가장 익숙한 알람이 되었다. 창문을 열고 베란다로 나와 산바람을 맞으며 눈앞의 풍경을 바라본다.
온 세상은 폭염과 집중호우로 시끄러웠던 한 달이었다. 그런데 나에게 지난 31일간은 그 어느 시간보다 조용한 한달이었다. 마치 나와는 다른 메타버스의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그렇다고 시간이 더디게 갔던 것은 아니다. 돌아보면 가장 더디고 고통스러웠던 시간은 치료가 시작되기 전의 6월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기다림의 시간들 이었다.
불안과 초조가 켜켜이 쌓여 하루하루가 버거웠던 시기였다. 몸은 아프지 않았지만, 마음이 가장 아팠던 때였다.
그래서인지 치료가 시작된 7월은 오히려 단숨에 지나가 버린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지만 치료는 생각보다 느리고, 고통은 예상보다 더 치밀하게 찾아왔다. 때로는 잠을 이루기 어려운 밤을 견디며 새벽의 고요 속에서 혼자 나를 붙들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나는 이 한 달 동안 점점 더 ‘살아있다’는 감각을 배워가고 있었다.
몸의 변화는 분명하다.
양쪽 목의 혹은 이제 유관으로도 보이지 않고 손으로도 만져지지 않는다. 그리고 1년 전부터 나를 괴롭히던 오른쪽 어깨의 찌릿한 통증도 신기하게 완전히 사라졌다.
의사의 말대로 그 통증은 혹이 목의 신경을 눌러 생긴 증상이었다. 결국 어깨 통증이 시작될 무렵 이미 내 목속에서는 이 ‘암’이라는 존재가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잃은 것도 있다.
미각은 완전히 사라졌고, 입 안에는 하얀 염증들이 마치 제 집을 차지한 듯 자리 잡고 있다. 독한 가글의 흔적이 혓바닥을 퍼렇게 물들였고, 21번의 방사선 치료로 목 주변의 피부는 검게 그을렸다. 체중은 65kg을 향해 빠르게 내려가고 있다.
7월의 한 달 동안 나는 두려움과 친해지는 법도 배웠다. 처음에는 암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두려웠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존재를 외면하기보다 마주 보는 편이 더 편안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것을 데리고도 살 수 있는 힘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
7월의 끝자락에서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되뇌였다.
“이제는 이기는 법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이지만, 이 한 달이 내게 가르쳐준 것은 분명하다. 가장 힘든 시간조차도 언젠가는 익숙해지고, 견딜 수 있고 결국은 지나간다는 것.
처음에 섰던 낯선 두려움은 이제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변해가고 있고 그 희망의 믿음을 발판삼아 버티고 있다. 아니, 그저 버티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씩 앞으로 미래를 향해 힘찬 걸음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안다.
길게만 느껴지던 7월 한 달이 지나갔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하루가 한 달 같았다. 그러나 치료가 시작되고 나니 이상하게도 시간은 점점 빠른 속도로 흐르기 시작했다.
오늘이 지나면 어느새 남은 항암은 단 한 번, 그리고 방사선 치료는 8번뿐이다. 치료가 끝나는 날, 8월 12일이라는 날짜를 머릿속에 그려보며 오늘 하루를 시작한다.
준비를 마치고 병원으로 향했다. 그렇게 5번째 항암주사를 3시간 30분 동안 천천히 혈관에 흘려보냈고, 22번째 방사선 치료를 마치고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
익숙해진 듯 반복되는 치료지만, 그 속도에 맞춰 마음을 다잡는 일은 여전히 매번 새롭다.
늘 그랬듯이 항암주사를 맞은 당일의 컨디션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나는 이제 이 감각이 잠시뿐이라는 것도 안다. 내일쯤이면 몸이 무겁게 내려앉고, 입맛은 더 사라지고, 피로는 밀려올 것이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아직 괜찮다. 그래서 나는 이 잠깐의 평온을 기록해 두고 싶었다. 몸이 허락하는 한에서만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남긴다.
이 작은 기록들이 쌓여 나를 지탱해줄 것이라 믿으면서 치료가 내 몸을 바꾸듯, 이렇게 하루하루를 써 내려가는 일도 내 마음을 조금씩 단단하게 만든다.
8월은 마치 마지막 언덕을 남겨둔 오르막길 같다. 숨은 차오르지만, 저 끝에 내려다보이는 평지를 떠올리면 다시 발걸음을 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이제 두려움보다 기대가 더 크다. 남은 12일 후, 치료를 마치고 창문 너머로 불어오는 산바람을 오늘과는 전혀 다른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병원으로 향하기 전 7월의 마지막 아침에 나는 오늘도 나에게 말한다.
“조금만 더 버티자. 이제 정말 끝이 보인다.”
이 여름의 끝자락에서, 나는 다시 살아갈 계절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