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by 마부자


초여름의 기세가 본격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한 오후였다. 뜨거운 햇살이 창문을 두드리고, 그 햇살을 맞으며 창을 열었다.


방 안으로 들어온 빛은 따갑게 눈을 찌르기보다는 의외로 선명하고 또렷하게 나를 깨웠다. 그렇게 책상에 앉아 눈과 귀에 소리로 읽은 오늘의 책은 스티브 바틀렛의 <CEO의 다이어리>.


오전의 끝자락, 영상속에서 마음에 남은 한 문장을 오래도록 곱씹었다.


“회피로는 그 어떤 것도 해결 할 수 없다.
위기는 피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진짜 해결이 시작된다.”

하와이 대저택 제공


회피.

회피라는 단어는 언제나 묘한 울림을 갖는다. 그건 단순히 어떤 행동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다.


때로 회피는 무력한 선택이고, 때로는 지나치게 현명한 척하는 자기 기만이기도 하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불쾌한 감정, 고통, 두려움으로부터 거리를 두려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본능일 수도 있다. 하지만 회피는 언제나 대가를 요구한다. 일시적으로 숨었을 뿐, 사라지지 않은 문제가 시간이 흐른 뒤 더 단단한 형태로 돌아오게 만드는 힘. 그것이 회피의 본질이다.


회피는 자신의 감정과 마주하지 않기 위한 미루기의 결과가 아닐까. 마주하기만 하면 사실은 사라질 수도 있었을 문제를 스스로 증폭시키는 방식이다.


특히 위기의 순간, 회피는 문제를 잠시 보이지 않게 만들 뿐, 해결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상황에 대한 내성은 점점 약해지고, 두려움은 점점 커진다.


병을 마주했을 때도 그랬다. 나에게 닥친 질병이 현실이 아니라는 생각, 어쩌면 이건 오진일 수도 있다는 기대, 무언가 잘못되었을 것이라는 억측은 결국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나는 그 시간을 무기력 속에 보냈고, 몸은 그 사이 아무 말 없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병을 키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회피는 내게 일시적인 위로를 주었지만, 결코 해답은 아니었다.


회피의 방법으로는 그 어떤 문제로 해결할 수 없다. 진정한 해결은 문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순간 시작된다.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유한하고, 이 위기가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순간, 비로소 행동이 가능해진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회피는 부정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다다르게 된다. 또한 반대로 인정은 어떤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만드는 첫 번째 열쇠이다.


살아오면서 회피했던 수많은 감정들, 말하지 않은 불편함, 외면했던 두려움, 모두 해결되지 않은 채 마음속에 문 뒤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감정들과 마주했을 때, 나는 그 감정들이 생각보다 그렇게 거대하지 않았고, 그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들은 오히려 오랜 시간 외면당해서 녹슨 경첩으로 인해 열리지 않는 문이었다. 회피가 아니라 직면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었다.


그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감정이라는 문을 슬쩍 밀어보고 열리지 않는 다는 이유로 너무 자주 등을 돌린다.


삶은 정면을 응시하는 훈련이다. 때론 눈부시고, 때론 두렵지만, 그 빛과 그림자 모두를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비로소 인간은 온전 해진다.


오늘처럼 햇살이 거세게 쏟아지는 날에는 더욱 그렇다. 회피는 나를 어둠 속에 숨게 하지만, 직면은 다시 밖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준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내 감정이나 상황을 외면하지 않으려 한다. 두려워도, 불편해도, 힘들어도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가 보는 일. 그것이 진짜 해결의 시작임을 오늘 다시금 깨 달았다.


나는 오늘 ‘회피’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회피란 해결이라는 문에 달린 녹슨 경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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