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내내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퍼붓던 비가 마침내 그쳤다. 그리고 일요일 오후가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태양은 거침없이 다시 하늘을 장악했다.
바람까지 부드럽게 스며드는 오후. 페달을 밟던 루틴을 오늘만큼은 쉬기로 했다. 대신 창문을 열어 두고 따스한 햇빛을 책상 위로 들여왔다.
그렇게 눈과 귀로 영상을 통해 한 권의 책을 만났다. 롭 다이얼의 <행동은 불안을 이긴다>였다.
“처음에 낯설고 어렵지만
계속 실천하면 행동이 익숙해지고
공포는 서서히 사라진다.
결국 당신은 그 공포를 넘어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공포가 당신을 멈춰 세웠다면
이제 그 공포를 발판 삼아 뛰어 올라야 한다.
당신은 부서지지 않는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
무너져도 다시 회복할 수 있다.
잊지마라.
공포는 당신의 적이 아니다.
당신을 흔들어 깨우는 아주 오래된 신호일 뿐이다.
하와이 대저택 제공
공포.
책에서는 ‘공포’에 대해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원초적 공포와 지적 공포. 원초적 공포는 생명을 위협하는 실질적인 위험에서 비롯되는 본능적인 감정이다.
이를테면 차가 갑자기 달려들 때, 높은 곳에서 떨어질 뻔했을 때처럼 몸이 반응하는 위기의 순간에 나타나는 감정이다. 반면 지적 공포는 실제 위협이 없는 상황에서 우리의 뇌가 만들어낸 상상과 해석에서 비롯된다.
현실이 아닌 가능성에 대한 공포.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예측이 자라나면서, 실제보다 훨씬 더 강하게 우리를 마비시키는 공포다.
공포라는 단어는 지금의 나를 정확히 정의하는 감정이었다.
지난 5월 23일. 처음 내과에서 진료를 받고 목 안에 자리잡은 이상한 그림자의 존재를 들었을 때, 정확히 한 달간 나를 휘감은 감정을 돌이켜보면, 그것은 분명 ‘지적 공포’였다.
의사는 아직 아무것도 확정되지 않았다고 했지만, 나의 뇌는 그것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나는 이미 가장 나쁜 시나리오를 상상했고, 가장 불행한 결말을 예측했고, 이미 그 감정 안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다.
생각이 불안을 낳고 불안이 나를 마비시켰다. 지적 공포는 그렇게 나의 일상을 천천히 갉아먹기 시작했다.
공포는 나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떠오른 감정이었고, 밤에 눈을 감을 때까지도 내 곁에 머물렀다.
때로는 잠을 깨워 가슴을 조였고, 때로는 나의 계획과 의욕을 무기력으로 변질시켰다. 그 감정은 내 존재를 가둔 감옥이었고, 미래를 단절시키는 두꺼운 벽이었다. 하지만 그 벽 앞에서 나는 멈추지 않았다.
책 속 문장처럼 처음엔 낯설고 어려웠지만 나는 매일의 실천을 선택했다. 반복과 루틴. 그저 눈을 뜨고 스트레칭을 하고 명상을 하고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매일의 생각을 기록하는 일.
그것은 어쩌면 너무도 소박한 일상이었지만, 나를 어제보다 덜 흔들리게 만들어준 버팀목이 되었다. 지적 공포가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 생각을 멈추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행동이었다.
움직이는 순간, 생각의 흐름은 끊기고 감정은 조절되기 시작했다. 행동은 두려움의 길을 막아서는 경계선이었다. 나는 공포를 단순히 감정으로 내버려두지 않고, 그것을 관찰하고 다루는 방법을 조금씩 익혀 나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이 공포라는 감정이 단지 나를 무너뜨리려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공포는 나의 깊은 곳을 흔들어 깨웠고, 살아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자각하게 만들었다. 나의 몸과 삶의 방향을 다시 돌아보게 했고, 무엇보다 내가 진짜로 지키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들여다 보게 해주었다.
그 감정은 나를 ‘죽음의 상상’으로 내몰았지만, 반대로 ‘더 나은 삶의 실천’으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나는 이제 공포를 내면의 경보음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나를 멈추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시 나아가게 하기 위한 하나의 신호로.
내가 정말로 두려워했던 것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준비되지 않은 이별과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삶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러니 내가 해야 할 일은 그 공포를 부정하거나 애써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인정하고 함께 걸어가는 일이다. 나는 여전히 완전하지 않다. 앞으로도 공포는 또 다른 얼굴로 나를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오늘 이 한권의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나는 부서지지 않는다. 무너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 그렇게 오늘도 아주 조금씩, 공포의 벽을 넘어서는 중이다.
나는 오늘 ‘공포’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공포란 나를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나아가게 하기 위한 신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