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by 마부자


병실로 돌아와 앉은 책상위로 창밖에서 밀려든 초여름 햇살과 가려진 커튼을 뚫고 들어오는 뜨거운 열기.


병실 창문은 닫혀 있었지만, 그 사이로 들려오는 폭염 그리고 귀가 따가울 정도로 울어대는 매미소리. 세상의 소리는 여전히 여름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었다.


오늘도 나는 어제처럼 그리고 그제처럼 뇌에 관한 책을 다룬 영상을 틀었다.

조 디스펜자의 <꿈을 이룬 사람들의 뇌>. 익숙한 제목.


이미 여러 번 접했던 내용이지만 다시금 반복되는 문장 속에서 오늘은 이전과는 다른 단어 하나가 내 안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외부세계에서 당신에게 말하는 것을 믿기보다 당신 스스로 어떤 결과를 믿고, 신뢰할 때 신념이란 게 작동한다. 신념을 가진 자에게 진실한 것은 내 생각을 믿고 있는 나의 생각뿐이다.”

하와이 대저택 제공



신념.

신념이라는 단어는 마치 돌처럼 단단하고 무거운 어감을 가진 단어다. 그러나 이 문장 속에서 신념은 단단함보다는 오히려 고요한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감각에 가깝다.


외부의 말, 세상의 소음, 타인의 평가가 아닌 ‘내가 믿는 생각’을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힘. 그것이 신념이라면 신념은 내가 나에게 말하는 문장이다.


그것은 행동의 기초이자 망설임 속에서 흔들리지 않게 붙잡을 수 있는 무게 중심이다. 신념은 개념적으로 ‘믿는 바’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더 구체적으로 '반복해서 생각한 끝에 의지로 선택한 믿음'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신념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떠밀려 생기는 것도 아니다.


고통을 지나서 의심을 뚫고, 한 번이 아니라 몇 번이고 돌아와 ‘나는 이것을 믿는다’고 자신에게 말하게 될 때 비로소 태어나는 것이다.


그렇게 신념은 확신을 품은 감정이 아닌 결단을 품은 의지에 가깝다.


지금 내 삶은 병이라는 이름의 낯선 동반자와 함께 하는 시간이다. 많은 이들이 말한다. 항암 치료는 힘들다고. 방사선은 고통스럽다고. 병실은 외롭고 두렵다고. 그 모든 말이 사실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내 생각을 믿기로 했다. 외부의 목소리를 참고하되 그 목소리가 내 생각을 대신하게 하지는 않기로 했다.


‘괜찮다’고 말하는 나의 목소리를 스스로 더 신뢰하기로 한 것이다. 그 작은 믿음이 오늘의 나를 움직이게 하는 유일한 동력이다.


신념은 감정이 아니다. 그래서 흔들리지 않는다. 신념은 판단이 아니다. 그래서 비교하지 않는다. 신념은 어떤 방향으로 나를 이끄는 나침반과 같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그 방향이 어디든 끝까지 가보겠다는 실천이다. 치료의 결과가 보이지 않아도 몸이 점점 지쳐가도 내가 믿고 선택한 이 길이 결국 나를 회복으로 데려다 줄 것이라는 믿음.


그 믿음이 무너지지 않게 오늘도 나 자신에게 조용히 되뇐다. ‘나는 이 과정을 반드시 견뎌낼 것이다’라고.


가장 외로운 순간에 나를 버티게 하는 문장은 언제나 남이 아닌 내가 나에게 건네는 말이었다. 그것이 신념이다. 그것은 단순한 다짐이 아니라 매일의 선택을 통해 쌓여가는 나만의 진실이다.


세상이 말하는 논리와 다를지라도 나는 나의 병을 이겨낼 수 있다는 생각을 믿는다.

그리고 그 생각을 믿고 행동하는 내가 결국 변화의 증거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오늘 ‘신념’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신념은 반복적인 믿음에 기초한 흔들림 없는 실천의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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