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에서 밀려든 늦여름 햇살과 서재 안에 들어온 바람을 느끼며 더위는 조금 무거웠지만 오늘은 오히려 내 호흡이 천천히 가라앉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서재 책상 위에 놓인 존 소포릭의 <부자의 언어>를 다시 펼쳐 들며 형광펜이 그어져 있던 문장을 따라 눈길을 멈추었다.
“조바심은 절대 돈을 증식시키지 못한다.
부는 인내하는 자에게 찾아오는 달콤한 꿀이다.”
존 소포릭의 부자의 언어 중에서
인내.
나는 이 문장 속에서 ‘인내’라는 단어를 붙잡았다. 조바심은 당장의 결핍을 메우려는 몸부림이다.
불안과 초조 속에서 내일을 끌어오려 하지만 그 속도는 오히려 오늘을 무너뜨린다. 반대로 인내는 시간을 받아들이는 힘이다.
나의 부족함과 아픔을 안은 채 기다릴 줄 아는 태도다. 지금 이 투병의 과정도 마찬가지다. 치료가 언제 끝날지, 회복이 언제 찾아올지 조바심을 내기 시작하면 내 마음은 곧장 무너지고 만다. 그러나 인내라는 단어를 붙들면 오늘도 견딜 수 있다.
인내는 단순히 참고 버티는 것이 아니다. 고통을 마주하면서도 의미를 찾으려는 능동적 태도다.
비록 목의 통증으로 침 삼키는 일조차 고난이 되더라도 나는 그것이 회복으로 가는 과정의 일부라는 해석을 스스로 내릴 수 있다.
그 순간 고통은 단순한 짐이 아니라 의미 있는 통과의례가 된다.
삶을 돌아보면 나는 조급한 성격으로 살아온 시간이 더 길었다. 성과를 빨리 확인하고 싶었고 결과가 눈앞에 오지 않으면 불안해했다.
그러나 병상과 치료의 시간은 내가 원한다고 해서 단축되지 않는다. 이 불가항력의 시간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인내뿐이다.
오늘 문장속에서 달콤한 꿀이라는 비유가 와닿았다. 꿀은 한순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수많은 벌이 작은 꽃의 꿀을 모아 끊임없는 왕복을 반복해야만 얻어진다.
인내는 바로 그 반복의 힘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날갯짓이 쌓이고 쌓여 어느 날 단맛으로 바뀌는 것. 그것이 내가 지금 지나고 있는 투병의 과정과 닮아 있다.
치료의 날들은 얼핏 보면 끝없는 고통의 연속이다. 아침마다 삼키는 침이 바늘처럼 목을 찌르고, 입안 가득 퍼지는 금속성의 맛은 음식을 거부하게 만든다.
병실의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조차 때로는 지나친 강렬함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 고통의 순간들도 결국은 작은 날갯짓처럼 차곡차곡 쌓인다.
오늘을 견딘다는 사실 자체가 내일의 회복을 위한 꿀방울이 되는 것이다.
인내는 단지 시간이 흘러가기를 기다리는 수동적 자세가 아니다. 치료라는 긴 여정을 묵묵히 받아들이면서도 매일의 고통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태도다.
링거 바늘을 맞으며 “이것은 내 몸이 살아가려는 몸부림이다”라고 해석했던 순간, 고통은 단순히 나를 짓누르는 짐이 아니라 살아있다는 증거가 된다.
나는 그 증거를 하루하루 모았고 지금 회복의 길로 가고 있다.
그래서 내 투병은 결국 꿀을 만드는 과정과 같다. 지금은 달콤함과는 거리가 먼 쓴맛과 무력감의 시간일지라도.
이 시간이 충분히 모이고 응축된다면 언젠가 내 안에 새로운 단단함과 달콤함으로 남을 것이다. 내가 인내한 만큼 삶은 나에게 또 다른 선물을 준비해 줄지도 모른다.
언젠가 다시 건강을 되찾아 평범한 일상의 식탁에 앉게 될 때 나는 오늘의 고통조차 꿀처럼 소중하게 느낄 것이다.
나는 오늘 ‘인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인내란 지배할 수 없는 시간속에서 마음의 질서를 세우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