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30.선택을 한다는 건
다른 가능성을 내려놓는 일

by 마부자

입원 31일차, 항암 4회, 방사선 치료 21회.


방사선 치료가 깊어질수록 목의 통증도 깊어지고, 그 통증이 깊어질수록 잠은 점점 얕아진다. 새벽이면 목마름에 눈을 뜬다.


입안은 이미 한 방울의 침조차 남아 있지 않은 황량한 땅 같았다. 마치 한여름 가뭄에 메말라 버린 논바닥이 갈라져버린 것처럼.


그럼에도 밤은 지나고 새벽은 온다. 시끄럽게 울어대는 매미와 까치, 까마귀가 엮어내는 어딘가 묘한 화음을 들으며 몸을 일으킨다.


준비를 마치고 치료를 위해 병원을 향해 걸어가는 길 위에서, 오늘도 이렇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고맙게 느껴졌다.


아침 일찍 치료를 마치고 돌아와 진통제와 보조 약을 삼킨다. 신기하게도 약을 먹고 나면, 몇 시간 전 아파서 잠을 설쳤던 사람이 맞나 싶을 만큼 몸이 한결 가벼워진다.


약 때문인지, 아니면 몸이 깨어나면서 침이 조금은 더 돌아서인지 모르겠지만 목마름도 한결 덜하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세탁 날.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어제 잠시 소란이 있었던 휴게실에 가보았다.


그러나 오늘은 아무도 없었다. 어제와는 전혀 다른 풍경. 이유야 어찌 됐든 휑해진 그 자리에 서니 미소도, 씁쓸함도 아닌 묘한 감정이 스며들었다.


병실로 돌아와 링거를 꽂고 TV를 켜니 세상은 여전히 같은 뉴스만을 되풀이한다. 결국 TV를 끄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고 점심 시간이 되어 4층 식당으로 향했다. 계단을 올라 식당 문을 여는 순간,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병원에 입원한 지 한 달이 되는 동안 이렇게 식당에 사람으로 붐비는 것은 처음이었다. 줄을 서서 기다리며 다른 사람들 모두가 오늘은 유독 사람이 많다는 말들은 했다.


곰곰이 이유를 생각하다 보니 답은 의외로 가까이에 있었다. 평소라면 각 층의 휴게실에서 삼삼오오 모여 밥을 먹던 사람들이 이제는 휴게실이 아닌 식당으로 올라온 것이다.


세 개 층의 사람들이 한 곳에 모였으니 식당이 붐빌 수밖에. 편의를 위해 내린 선택이 또 다른 불편을 만드는 아이러니였다.


어제만 해도 네 명짜리 식탁에 혼자 앉아 조용히 식사하던 나는 오늘은 네 명이 꽉 찬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었다. 그리고 식당을 나서며 생각했다.


내일부터는 식사시간을 20분쯤 늦춰야겠다고.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하려는 마음은 없다. 다만 오늘 식당의 이 작은 풍경 속에서 인생의 한 단면을 본 듯한 기분이었다.


결국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선택은 없다. 한 가지를 선택한다는 건 다른 가능성을 내려놓는 일이고, 그 포기의 무게는 늘 우리를 조금씩 단단하게 만든다.


이 병원이라는 작은 세계 안에서 나는 그것을 다시 배운다. 불편을 피하려다 또 다른 불편을 만나고, 조용함을 원하다가 뜻밖의 소란 속에서 웃음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렇게 예상치 못한 상황 속에서 하루하루가 내게 작은 깨달음을 안겨준다.


어쩌면 이것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포기와 선택 사이에서 흔들리며, 그럼에도 여전히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


오늘도 나는 그 마음을 배우며 조금 더 단단해지고 있다.